아침묵상 10/5(수)
누가복음 15:17~24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아들이 이르되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하나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
<묵상>
모든 관계가 깨지고 모든 소유가 바닥이 났을 때 그제서야 아들은 아버지의 존재를 떠올려 봅니다.
아버지와 자기 사이에 끊어지지 않는 생명이 있음을 깨닫고 아버지에게로 돌아갑니다.
아버지는 아들의 설명도 죄의 고백도 상관하지 않고 그저 품에 안아줍니다.
찢긴 누더기는 제일 좋은 옷으로, 바닥까지 드러난 신발은 새신발로,
품꾼의 거친 손이 되어버린 손에는 가락지를 끼워줍니다.
마르고 수척한 몸은 따뜻하고 깨끗한 물로 씻어주고
살진 송아지의 최고급 요리로 그의 건강을 회복시켜줍니다.
아버지의 사랑은 아들을 또 다시 상속자로, 그 사회적 신분까지 즉각적으로 회복시켜줍니다.
아버지를 떠난 작은 아들의 모습은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한 사람들의 영적상태입니다.
겉으로는 화려하고 안락한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이나
그 영적 내면은 누더기를 걸치고 먹어서는 안 될 것을 먹는 비참한 삶입니다.
문제는 자기가 얼마나 비참한지 깨닫지 못하고 모른다는데 있습니다.
그보다 더 딱한 것은
하나님은 우리를 완전히 복권 시켜주셨는데
우리는 아직도 아들로서의 삶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는데 있습니다.
✞주님.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을 당당하게 살도록 도와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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