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7월 31일, 일요일
가톨릭 다이제스트 2016년 7월호
- 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마침내 그 꿈을 닮아간다. - 앙드레 말로
- 오만한 이에게는 수치가 따르지만, 겸손한 이에게는 지혜가 따른다. - (마음에 새기는 하늘의 소리)
부자 동네 사는구나 - 안병영 전 교육부 총리 (74~80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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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럼 타는 성격은 나를 소극적으로 만들고, 행동반경을 좁게 만들지만
스스로 이런 성향을 그리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부끄럼을 아는 마음을 잘 가꾸면 매우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기 때문이다.
부끄러움과 연관해서 내가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한 가지 어릴 적 기억이 있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늦가을,
열한 살 소년이었던 나는 대구에서 '서울피난 대구 남산국민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말이 학교지 피난 온 아이들만 모아 화장터 옆 산등성이에서 큰 나무메 칠판을 걸고 노천수업을 했으니
그 형편이 말이 아니었다.
겨울이 다가오자 당장 추위를 막아 줄 판잣집이라도 마련하려고 선생님들이 집집마다 가정방문을 하셨다.
내가 담임선생님을 모시고 며칠간 여러 집을 돌았는데,
피난민들의 사는 모습이 하나같이 차마 눈뜨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비참했다.
대부분 빈민촌 판잣집 신세였고, 끼니를 잇기 어려운 집도 허다했다.
선생님도 아무 말씀 못하고 발걸음을 돌리셨다.
그런데 우리 집은 비록 셋방살이였지만 그나마 남산동 중산층 동네에 살고 있었다.
나는 평소에도 그 점이 그렇게 부끄러웠다.
나 혼자 잘 사는 것 같아 죄스럽기 짝이 없었다.
무엇보다 선생님께 그 모습을 보여 드린다는 것이 생각할수록 부끄러웠다.
그래서 가정방문 첫 날부터 걱정이 태산 같았다.
마침내 마지막 날 마지막 차례, 우리 집 앞 골목에 이르렀다.
내 다리는 천근만근이 되었다.
이윽고 선생님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부자 동네구나" 하시자 가슴이 철렁했고,
금방이라도 땅속으로 기어 들어가고 싶었다.
나는 모기 같은 소리로 "동네만 그렇지 저희도 셋방인 걸요" 했다.
나는 제발 엄마가 다른 엄마들처럼 허름한 옷차림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늘 깨끗하고 단정한 모습의 엄마가 밉고 부끄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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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탓인지, 나는 부끄럼을 아는 사람, 수줍음이 있는 사람을 좋아한다.
그래서 얼마 전 돌아가신 박완서 선생의 그 미소를 무척 좋아했다.
그분은 팔순에도 언제나 소녀의 부끄러움을 간직하고 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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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선생은 글이나 언행 모두 바르고 당당하셨던 분이다.
나는 그분이 자신의 강직하고 올곧은 속내를 수줍고 따뜻한 미소로 감싸고 계셨기에
더 좋아했던 것 같다.
<간디 자서전>을 보면 간디도 꽤나 부끄럼을 많이 탔던 사람같다.
영국서 공부하고 돌아와서 변호사 일을 시작했는데,
첫 변론에서 눈앞이 캄캄해져 아무 말도 못하고 한참이나 머뭇거리다가 주저앉는다.
스스로 자질이 부족하다고 생각했고,
자신의 개인적 이득을 위해 다른 사람 앞에 나서는 일이 부끄럽고 떳떳하지 못하다고 느껴
결국 생계 수단인 변호사직을 포기했다.
그러던 그가 남아프리카에서 벌어지는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 정책에 분노하면서
결연히 인종차별 반대에 앞장선다.
공공선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천성적인 부끄러움을 극복한 것이다.
그의 비폭력저항운동의 근간이 되었던 [사티아그라하 (진리에 대한 헌신) 정신]은
비폭력, 극기, 금욕을 바탕으로 하는데,
나는 이 원칙들이 모두 부끄럼을 아는 마음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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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는 "두 가지 깨끗한 법 (二淨法) 이 있는데,
그것은 자기 자신에 대해 부끄러워하는 것과 남에게 부끄러워하는 것이며,
이 두 법에 의해 세상이 보호된다"고 설파했다.
우리는 흔히 남에게 부끄러워하는 것만을 생각하기 쉬운데,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자기 자신에게 부끄러워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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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 조금 낫게 사는 것을 무척이나 부끄럽게 생각하던 그때의 어린 소년을
대견하게, 그리고 아름답게 추억한다.
그 당시 소년의 마음속에서 싹텄던 염치와 연민의 정이
훗날 내가 평생 골프를 치지 않게, 또 교육부장관을 하면서 '대안학교'와 'EBS 수능'에 빠져들게,
그리고 돈푼이나 있다고 으스대거나 알량한 권력을 자랑삼는 이들을 딱하게 생각하고
그들과 멀리하는 품성으로 만들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부끄러움은 우리의 피폐한 마음을 정화시키는 실로 보배 같은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을 노래했던 윤동주의 시심이 우리의 가슴을 울리는 것도
바로 '염치'를 갈구하는 우리 내면의 순수한 욕구 때문이 아닐까.
박완서 선생은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에서
중년여성인 주인공을 통해 모처럼 찾아온 '부끄러움의 통증'과
그것을 만인에게 공유하고 싶은 간절한 심경을 다음과 같이 술회하고 있다.
"처음엔 나는 왜 내가 그 말뜻을 알아들었을까 하고 무척 무안하게 생각했다.
그러다가 차츰 몸이 더워오면서 어떤 느낌이 왔다. 아아, 그것은 부끄러움이었다.
그 느낌은 고통스럽게 왔다.
나는 마치 내 내부에 불이 켜진듯이 온몸이 붉게 뜨겁게 달아오르는 걸 느꼈다.
나는 각종 학원의 아크릴 간판의 밀림 사이에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라는 깃발을 펄러덩펄러덩 훨훨 휘날리고 싶다."
<기억 속의 보좌신부님> 안병영 전 교육부총리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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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모처럼 서선생님을 만나뵈었다.
가장 위험했던 시기, 중년의 위기를 같이 넘어가 주신 분이시다. (나랑 꼭 11살 위시다!)
(세상에서 어른으로서 만난 서선생님께 진정 "감사합니다!!!")
이런 얘기, 저런 얘기를 하다가 [염치] 이야기로 넘어갔다.
여학교 때, 급훈이 [염치를 아는 사람이 되자]였다고 하셨다.
그러고 보니 지난 달 [가톨릭다이제스트]가 생각났다.
안병영 교수님의 글을 읽으며 가슴이 뜨거웠던 것이 생각났다.
다 읽고 교회 안의 한 권사님에게 전해주던 가톨릭다이제스트를 가지고 왔다.
전해 주기 전에 옮겨 보관하고 싶어서.
그리고 지금, 교회 끝나고 오자마자 거의 전문을 그대로 옮겼다.
여전히 아름답고 감사하고 감동이다!!!
역시 한 어른의 이름을 알고 있음은 참 감사한 일이다. (그분이 나를 모르는 것이야 당연한 일이고~*^^*)
나는 참 복이 많은 사람입니다.
이 [복값]을, 김미경씨 표현대로 [운값]을 하며 살아야 하는데...부끄럽습니다~노력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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