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얼중얼...]

법정스님의 '봄`여름`가을`겨울'에서

colorprom 2016. 6. 14. 14:43

2016년 6월 14일, 화요일

 

우리가 애써 정진하는 것은 새삼스럽게 깨닫기 위해서가 아니라

본래의 깨달음을 드러내기 위해서입니다.

 

깨닫기 위해서 닦는 것과 깨달음을 드러내기 위해서 정진을 한다는 입장은

그 방향이 아주 다릅니다.

 

어떤 바탕 위에서 닦을 것인가는 각 자의 수용능력에 달렸습니다. - '봄 여름 가을 겨울' (법정) p 188

 

 

 

법정스님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의 거의 끝자락, 편지부분을 읽고있다.

그야말로 잔잔한 일상사, 집 주위 풍경, 나무와 꽃, 새 등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 책이다.

쉬고 싶음...사람들과 피해 혼자이고 싶음을 이 책으로 대신하는 느낌이다.

 

거의 끝부분에서 이 대목을 만났다.

- 깨닫기 위해서 닦는 것과 깨달음을 드러내기 위해서 정진을 한다는 입장은 아주 다릅니다.

 

보고 자라는 아이와 살피고 보여주는 부모의 입장은 다르다!

배우는 아이와, 가르치는 선생님의 입장은 다르다!

듣고자 하는 신도와 들려주는 목사님, 성직자의 입장은 다르다!

지도 받는 학생과 지도하는 교수의 입장은 다르다!!!

 

나도 너와 같은 입장이야...라고 겸손한 척, 말하는 어른이 수없이 많은 세상에서,

[다릅니다]라고 단호히 말 할 수 있는 법정스님을 어른으로 존경한다.

 

'하늘 아래에서는 모두 다 도토리 키재기'라며 뭉뚱그려버리는 어른답지 않은 어른이나

'다 거기서 거기'라며 세상을 다 조막만 하게 보는 쿨(?!)한 젊은이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내가 오르막 길에 있는지, 내리막 길에 있는지도 모르는 경우 또한 얼마나 많은가.

 

그래서 위고 아래고, 애고 어른이고 다 뒤엉켜 시끄러운 것이 요즘 세태 아닌가 싶다.  (평등???)

 

입장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기 전에, 내 위치와 입장을 안다면 질서가 잡히지 않을까.

지금 설 때인가, 앉아 있을 때인가 알 수 있지 않을까. 

누가 뭐라 할 필요도 없이.

그게 질서이고 예의이고 평화 아닐까.

 

오르막 길의 과정인지 내리막 길의 과정인지를 스스로 알고,

마구마구 먹으며 잎을 무성히 할 때인지, 슬슬 멈추고 하나하나 떨굴 때인지를 알고,

그 모든 과정을 감사하며 열심히 수행하는 것이 겸손임을...알려주신 어른을 생각합니다.

 

오늘, 그것이 임무요 책임임을 알고 행하다가 돌아갈 수 있기를,

조용하나 치열한 혼자의 삶을 보여준 스님의 책을 읽으며 다시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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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217 에서 이 구절을 또 만났다.

 

도원 선사의 법문에 공감한다니 반갑습니다.

본중 묘수, 불염오 의 정신을 명심하시오.

새삼스럽게 깨닫기 위해 닦는 것이 아니라

본래의 밝음 (깨달음)을 드러내기 위해 닦음이고,

닦지않으면 더럽히니까 항상 정진하는 것이오.

그래서 좌선을 일러 큰 안락의 법문이라고 한 것이오.

 

휴정 선사도 말했듯이 자기 자신의 근본인 진심을 지키는 것으로써 첫째가는 정진을 삼아야 합니다.

한때의 기쁨과 축복의 체험에 만족하지 말고 더욱 분발하기를 바랍니다.  (p 217)

 

배우는 과정이 있고, 알고 난 후에는 잘 살아야 한다고 이해한다.

꼭 선생으로서, 선생노릇을 하기 위해서, 샘플로서만이 아니라 이미 안 자로서 살아야 한다고. 

가르칠 사람이나 보여줄 사람이 있어서가 아니라, 안 자로서, 다시 더러워지지 않기 위해서.

 

문득, [칭의] 이후의 [성화]를 말하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시민증을 받은 것으로 끝이 아니라, 이제 시민권자로서 잘 살아야 한다는!

 

아, 앞 페이지에 그런 내용이 있다.

 

[능엄경] 마치고 [기신론]으로 들어간다니, 배운 것만큼 신앙의 세계도 함께 심화되어야 한다.

종교는 학문적인 이론보다는 일상적인이 보다 값있는 일이다.

경전에 밝힌 법문이 현재의 내 삶과 연결되어야만 살아있는 말씀일 수 있을 것이다.

부처님 당시의 일로 보지 말고, 오늘 내 자신과 부처님과의 대화로 보라는 뜻이다.

 

그리고 어떤 배움이든지 그때그때 배우는 일 그 자체가 알차게 사는 일로 이어져야 한다.

 

불임암은 내가 있을 때나 마찬가지로 정갈하게 정리정돈을 잘하고 있다니 고맙다.

수행자의 삶은 맑고 빛이 나야 자기 자신과 둘레를 정화할 수 있다.

예불 끝에 항상 중노릇 잘하라고 축원한다. (p 209)

 

으흠...중노릇 잘하라...네!  기독교인으로 잘 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때가 타서 더러운 모습으로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일이 없도록 노력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