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거꾸로 흐르는 하나님 나라의 시간 2016년 4월 19일 화요일
스가랴 8:14~8:23
14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전에 너희 조상들이 나를 격노하게 하였을 때에
내가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기로 뜻하고 뉘우치지 아니하였으나
15 이제 내가 다시 예루살렘과 유다 족속에게 은혜를 베풀기로 뜻하였나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지니라
16 너희가 행할 일은 이러하니라
너희는 이웃과 더불어 진리를 말하며 너희 성문에서 진실하고 화평한 재판을 베풀고
17 마음에 서로 해하기를 도모하지 말며 거짓 맹세를 좋아하지 말라
이 모든 일은 내가 미워하는 것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18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19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넷째 달의 금식과 다섯째 달의 금식과 일곱째 달의 금식과 열째 달의 금식이 변하여
유다 족속에게 기쁨과 즐거움과 희락의 절기들이 되리니 오직 너희는 진실과 화평을 사랑할지니라
20 만군의 여호와가 이와 같이 말하노라 다시 여러 백성과 많은 성읍의 주민이 올 것이라
21 이 성읍 주민이 저 성읍에 가서 이르기를
우리가 속히 가서 만군의 여호와를 찾고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자 하면 나도 가겠노라 하겠으며
22 많은 백성과 강대한 나라들이 예루살렘으로 와서 만군의 여호와를 찾고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리라
23 만군의 여호와가 이와 같이 말하노라
그 날에는 말이 다른 이방 백성 열 명이 유다 사람 하나의 옷자락을 잡을 것이라
곧 잡고 말하기를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하심을 들었나니 우리가 너희와 함께 가려 하노라 하리라 하시니라
성경 길라잡이
성문(16절): 당시 성문 앞 광장은 많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공공의 장소였고,
또 그곳에서 재판이 행해졌기 때문에 성문은 곧 ‘재판정’의 대명사가 되었다.
너희는 이웃과 더불어 진리를 말하며(16절):
이 세 가지는 구체적으로 법정에서의 정직한 증언과 공정한 재판을 통해 평화를 이루는 것을 의미한다.
공의로운 재판을 통해 억울한 이들의 억울함이 해결될 때, 진정한 평화가 이루어진다.
따라서 공의로운 재판은 평화를 유지하는 마지막 보루이다.
넷째 달의 금식과 다섯째 달의 금식과 일곱째 달의 금식과 열째 달의 금식이(19상반절):
스가랴 7, 8장을 여는 질문이 금식이었다(7장 5절).
5월은 성전파괴, 4월은 예루살렘의 성벽의 붕괴, 7월은 유다 총독 그달리야의 피살(왕하 25장 25절),
10월은 느부갓네살의 예루살렘 포위(시드기야 9년 10월 10일)를 애도하는 금식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아직 과거 속에서 현재를 살고 있다.
유다 족속에게 기쁨과 즐거움과 희락의 절기들이 되리니(19하반절):
고통을 기억하는 금식은 기쁨을 누리는 잔치의 자리로 변할 것이다.
언약 백성들은 미래의 희망 속에서 현재를 산다.
강대한 나라들이 예루살렘으로 와서(22절): 여기서 ‘강대한’은 ‘수많은’이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이것은 아브라함 언약 안에서 이방인에 대한 축복의 약속이 성취될 것을 예견하는 것이다.
열 명(23절): 히브리어에서 큰 수 또는 완전수를 나타내는 수이다.
묵상과 삶
예루살렘 성벽이 무너지고 성전이 불탄 지 70년 가까이 흘렀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전히 과거의 기억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흘러가는 시간은 그저 과거의 반복이었을 뿐입니다.
오히려 고통의 기억은 더욱 강력해져서 이스라엘 백성의 현재까지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함께 거하시는 하나님’께서 이 모든 상황을 바꾸셨습니다.
언약 백성은 이제 과거의 기억 속에서 현재를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관한 희망 속에 현재를 살아갑니다.
생명이 죽음을 삼키었고, 미래의 영광이 과거의 아픔을 지웠습니다.
과거의 이방인들은 예루살렘을 정복하기 위해 찾아왔지만,
미래의 이방인들은 더불어 하나님을 믿기 위해 찾아올 것입니다.
현재를 변화시키는 미래의 희망은 오직 하나님께서만 주실 수 있습니다.
세상 나라의 시간은 과거에서 현재로 흐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언제나 과거를 통해 현재를 판단하고, 현재의 위기를 극복할 지혜를 찾습니다.
또한 한 사람을 평가하는 일에서도 그의 과거는 중요한 정보입니다.
과거로 구성한 현재가 바로 ‘이력서’입니다.
이러한 현재는 연장된 과거일 뿐이며, 과거로부터 진정한 변화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시간은 성령 하나님 안에서 미래에서 현재로 흘러옵니다.
하나님께서는 장차 완성될 우리의 모습을 미리 보시고 현재의 우리를 용납하십니다(칭의).
또한 우리는 종말에 완성될 공동체를 현재 누리며(교회), 그날에 누릴 만찬을 현재도 맛보고 있습니다(성찬). 그러므로 언약 백성에게 ‘오늘’은 지루한 과거의 반복이 아닌 새로운 미래의 창조입니다.
희망 속에서 사람을 용납하고, 공동체를 누리십시오.
삶으로
금식에 대한 질문을 가지고 온 벧엘 사람들은 이제 확실한 답을 얻게 되었습니다.
비록 그들은 형식적인 금식으로 인해 하나님께 책망을 받긴 했지만,
사실 그들이 금식에 대한 질문을 가지고 오게 된 배경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포로생활에서 돌아와 성전재건이라는 역사적 상황을 맞고 있는 지금,
굳이 금식으로 슬퍼할 이유가 없어 보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이에 대해 더 이상 그러한 금식은 없을 것이라고 분명히 대답해주셨습니다.
따라서 이제 유다 족속들은 슬픔의 금식이 기쁨과 희락의 절기로 변하는 은혜를 누리게 될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슬픔 대신 기쁨과 희락이 가득한 곳입니다.
거기서는 이웃과 더불어 진리를 말하며, 진실하고 화평한 재판이 있으며, 연약한 자들까지도 긍휼을 얻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나라에 유대인들만이 아니라 이방인들까지 초대하셨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유대인들만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셨다면,
이방에 속한 지금의 우리는 구원에서 제외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무한한 사랑으로 아무 자격 없는 우리까지 그분의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따라서 오직 은혜로 하나님 나라의 백성된 우리로서는
슬픔이 변하여 기쁨과 희락이 되는 삶을 꿈꿔야 합니다.
묵상질문
네 차례의 금식 절기들은 각각 무엇을 기념하기 위한 것입니까?(19절)
과거를 애도하는 금식은 희망 속에서 무엇으로 바뀌었습니까?(19절)
미래의 희망 속에서 현재를 사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16절)
회복된 유다 백성들은 어떤 복을 누리며, 이에 대해 다른 민족들은 어떤 반응을 보이나요?
슬픔이 변하여 기쁨과 희락이 되는 삶을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기도
미래에 대한 희망 속에서 과거의 고통을 치유해주십시오.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정의와 평화를 위해 살게 해주십시오.
아무 자격이 없는 저를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삼아주신 은혜에 감사하며,
이제 그 나라의 백성으로서 슬픔이 변하여 기쁨과 희락이 넘치게 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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