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로! 2016년 4월 20일 수요일
스가랴 9:1~9:8
1 여호와의 말씀이 하드락 땅에 내리며 다메섹에 머물리니
사람들과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눈이 여호와를 우러러봄이니라
2 그 접경한 하맛에도 임하겠고 두로와 시돈에도 임하리니 그들이 매우 지혜로움이니라
3 두로는 자기를 위하여 요새를 건축하며 은을 티끌같이, 금을 거리의 진흙 같이 쌓았도다
4 주께서 그를 정복하시며 그의 권세를 바다에 쳐 넣으시리니 그가 불에 삼켜질지라
5 아스글론이 보고 무서워하며 가사도 심히 아파할 것이며
에그론은 그 소망이 수치가 되므로 역시 그러하리라
가사에는 임금이 끊어질 것이며 아스글론에는 주민이 없을 것이며
6 아스돗에는 잡족이 거주하리라 내가 블레셋 사람의 교만을 끊고
7 그의 입에서 그의 피를, 그의 잇사이에서 그 가증한 것을 제거하리니
그들도 남아서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유다의 한 지도자 같이 되겠고 에그론은 여부스 사람 같이 되리라
8 내가 내 집을 둘러 진을 쳐서 적군을 막아 거기 왕래하지 못하게 할 것이라
포학한 자가 다시는 그 지경으로 지나가지 못하리니 이는 내가 눈으로 친히 봄이니라
성경 길라잡이
여호와의 말씀이 하드락 땅에 내리며(1상반절):
1장부터 8장까지가 성전 재건 전에 주어진 반면,
9장부터 14장까지는 성전 재건 후에 주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9장부터 14장까지는 성전 재건에 대한 보다 거시적인 관점, 즉 참 성전이신 그리스도께 주목한다.
1, 2절의 수리아(하드락, 다메섹, 하맛), 2절부터 4절까지의 버니게(두로, 시돈), 5, 6절의 블레셋은
모두 이스라엘의 이상적인 경계 안에 있었으나(신 1장 7절)
이스라엘이 실질적으로 소유하지 못하고 상실한 지역들이다.
이들에게 임한 ‘말씀’은 하나님께서 지워주신 ‘짐’으로, 경고의 성격이 있다.
실제로 언급된 지명의 순서는 알렉산더 대왕의 정복 여정과 일치한다.
그러나 어떤 이방인들은 여부스(8절)와 같이 언약 백성으로 편입될 것이다.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눈이(1하반절): ‘눈’은 두 가지로 해석이 가능하다.
개역개정대로 ‘여호와를 바라보는 이스라엘의 눈’일 경우, 이 눈은 구원을 향한 간구이다.
한편 히브리어 본문은 ‘사람들과 이스라엘을 바라보는 여호와의 눈’으로도 볼 수 있다. 이 경우 심판의 눈이다.
눈이 여호와를 우러러봄이니라(1절):
아람으로 인하여 고통을 받는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를 향하여 구원을 기대하며 바라봄을 의미한다.
두로와 시돈(2절): 두로는 ‘바위’라는 뜻의 성읍이고, 시돈은 ‘노략물’이라는 뜻의 성읍이다.
이 두 도시들은 나무, 금속, 석재, 염료 등으로 유명했고, 교역을 통해 엄청난 부를 누렸다.
남아서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와서(7절):
더러운 우상숭배를 하며 교만한 이방인조차 하나님의 은혜를 받게 되며,
심지어 하나님의 백성의 지도자 자리에 설 자들도 있을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다.
이들은 주권자이신 하나님에 의해 남겨지게 되는 은혜를 얻게 될 것이다.
내 집(8절):
일차적으로는 예루살렘 성전을 염두에 둔 표현이나,
더 나아가 하나님의 백성들과 그의 나라를 모두 지칭하는 표현이기도 하다.
묵상과 삶
성전재건은 단순히 종교적인 건물 하나를 짓는 것 이상의 사건입니다.
성전은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고백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스가랴는 재건된 성전을 통해 하나님께서 이루실 위대한 일들을 보다 넓고 길게 바라봅니다.
그 시작은 마땅히 언약 백성의 소유가 되었어야 했으나
언약 백성들의 비겁함과 이방 민족들의 교만으로 정복되지 않은 지역에 대한 심판과 구원입니다.
이 지역들은 200년 뒤에 알렉산더 대왕을 통해 교만의 대가를 치를 것입니다.
동시에 이방인이더라도 겸손히 하나님을 고백하는 ‘남은 자’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입니다.
비록 이방인이 거부하고 언약 백성조차 불신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것을 반드시 회복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은 반드시 하나님께 돌아오기 마련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이 아닌 땅이 없으며, 하나님의 것이 아닌 사람도 없으며, 하나님의 것이 아닌 영역이 없습니다.
그러나 죄로 얼룩진 세상은 하나님의 형상인 사람을 하나님 없는 ‘자기’로 변질시켰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땅을 불의한 피로 더럽히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공의로운 정치를 불의한 폭압으로, 공평한 경제를 탐욕의 수탈로 왜곡했습니다.
자신의 것을 되찾아야만 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또한 성령님께서 거하시는 성전인 성도들을 이 땅에서 세우시고
그들로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이루셨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고백하는 교회는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의 것을 되찾는 구원역사에 동참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것으로 살아가는 언약 백성의 삶입니다.
돈과 권력, 쾌락이 우리를 주장할 수 없습니다.
삶으로
‘동전의 양면’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어떠한 상황이나 사물에 존재하는 서로 반대되는 두 가지 성질을 말할 때 쓰이는 표현입니다.
물론 서로 상반되지 않더라도, ‘절대로 양립 또는 공존할 수 없는 경우’를 일컬을 때도 사용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나라들의 현재와 미래가 바로 이 같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습니다.
즉 비록 현재에는 막강한 부와 힘을 자랑하지만, 조만간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해 멸망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지파들과 열방 중에 남은 자들은
비록 현재는 초라하지만, 미래에는 하나님의 구원을 얻게 될 것입니다.
십자가에도 구원과 심판이라는 양면이 존재합니다.
즉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는 구원이 되지만, 예수님을 믿지 않는 교만한 사람에게는 심판이 될 것입니다.
물론 지금은 구원받은 자와 구원받지 못한 교만한 자가 함께 어울려 있지만,
마지막 때, 곧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는
전자는 영원한 생명으로, 후자는 영원한 죽음으로 극명하게 갈릴 것입니다.
이 둘 사이에 중간지대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잘사는 악인들을 부러워하거나, 반대로 어렵게 사는 의인들을 불쌍하게 볼 이유가 없습니다.
그들의 결국은 정 반대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묵상질문
9장 1절부터 6절까지에 등장하는 세 지역은 어떤 의미가 있는 곳입니까?
이들 지역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무엇입니까?
또한 이들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주변 국가들을 심판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나는 잘사는 악인을 부러워하나요, 어렵게 사는 의인을 부러워하나요? 어떤 삶을 꿈꾸나요?
기도
하나님의 주권을 고백하며 하나님의 것으로 살게 해주십시오.
잃어버린 사람과 영역을 회복하는 구원역사에 헌신하게 해주십시오.
이스라엘의 주변 나라들처럼 영원히 멸망 받을 수밖에 없는 삶에서 저를 구원해주신 것에 감사하며,
이 세상의 헛된 것들에 소망을 품지 않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품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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