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금식의 참된 목적 2016년 4월 15일 금요일
스가랴 7:1~7:6
1 다리오 왕 제4년 아홉째 달 곧 기슬래월 사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스가랴에게 임하니라
2 그 때에 벧엘 사람이 사레셀과 레겜멜렉과 그의 부하들을 보내어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고
3 만군의 여호와의 전에 있는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에게 물어 이르되
내가 여러 해 동안 행한 대로 오월 중에 울며 근신하리이까 하매
4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5 온 땅의 백성과 제사장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70 년 동안 다섯째 달과 일곱째 달에 금식하고 애통하였거니와 그 금식이 나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 한 것이냐
6 너희가 먹고 마실 때에 그것은 너희를 위하여 먹고 너희를 위하여 마시는 것이 아니냐
성경 길라잡이
기슬래월(1절):
유대인의 월력으로는 9월인데, 현대의 태양력으로 계산하면, 11월 말에서 12월 초순에 해당한다.
가나안 땅에서 이 시기는 보리농사에 필요한 이른 비가 내리는 때이다.
오월 중에(3절): 예루살렘 성전과 성곽이 바벨론 공격으로 불타고 함락된 시드기야 11년 5월 7일을 가리킨다. 유대인은 이 고통과 슬픔의 날을 기억하기 위해 이 날을 금식일로 선포했다.
근신하리이까(3절): 원뜻은 ‘구별하여 바치다, 봉헌하다’인데,
여기서는 ‘거룩한 금식일로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리리이까?’라는 뜻이다.
포로의 대표들이 금식에 관해 질문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왔다.
이들은 포로 귀환 이후 벧엘에 거주한 사람들을 대표하는 사람들로 보인다.
이들은 ‘금식’을 ‘울며 근신한다’라는 단어로 표현하고 있다.
이들이 금식을 지속해야 하는지 묻는 이유는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기 위해서였다(HOW 주석).
일곱째 달(5절): 예루살렘 멸망 후 임시 총독으로 있던 그달리야가 이스마엘에 의해 암살된 날로,
이 날 역시 금식일로 선포되어 대대로 지켜졌다.
묵상과 삶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식을 지속할 것인지 알고자 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이 금식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반문하심으로 답을 대신하셨습니다.
금식을 한다는 것은 생명을 거는 행위로, 매우 중요한 사안을 마음에 품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중요한 종교적 의미를 담고 있는 금식조차 자기 자신을 위한 것으로서
형식만 남은 빈껍데기가 될 수 있습니다.
자신을 괴롭게 하는 금식이 어떻게 자기를 위한 것이 될 수 있을까요?
그러나 이런 일이 가능합니다.
겉으로는 우리 몸을 괴롭게 하는 것 같은 종교적 삶조차도,
우리의 영적 허영과 만족을 위한 일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행하는 모든 일은 하나님을 위한 일이 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 마음에 존재하는 거짓된 마음, 영적 허영심을 잘라내야 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웃을 위해, 복음 사역을 위해 일한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자신의 이름을 내고 재정적 이익을 얻기 위해 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처음에는 순전한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명성을 얻고 부를 얻으면서 달콤한 유혹에 빠져드는 것입니다.
결국에는 세속의 기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도덕성이 드러나 부끄러움을 당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한국 기독교가 세상 사람들에게 조롱당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복음 사역을 사사로운 이익의 도구로 전락시키고,
교회를 개인의 부를 축적하는 기업처럼 운영하는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교회는 사사로운 이익을 추구하도록 세워진 기관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심각한 위기 앞에 서 있습니다.
교회의 사명을 재확인하고, 그 사명에 헌신하는 직분을 회복해야 할 때입니다.
삶으로
흔히 사람들은 교회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을 보고 ‘믿음이 좋다’라고 표현합니다.
물론 그 일이 힘들면 힘들수록, 그 믿음의 가치는 더 높이 평가됩니다.
그런데 이런 기준에서 보면,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벧엘 사람들’이야말로 믿음이 좋은 사람들임에 틀림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율법이 정한 대속죄일에는 물론이거니와 다섯째 달과 일곱째 달에도
어김없이 금식하고 애통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조금 다른 관점에서 보십니다.
그리고 오히려 그들을 향해 이렇게 물으십니다. “그것이 나를 위하여 한 것이냐?”
벧엘 사람들의 금식은 형식적인 종교 활동에 불과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경건함을 자랑하기 위해 금식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그들의 불순한 동기와 목적을 아시고 꾸짖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단순한 종교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그들의 진실된 마음을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우리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참된 경건이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참된 믿음입니다.
묵상질문
이스라엘 백성들의 금식을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평가하고 계십니까?(6절)
하나님께서 벧엘 사람들에게 “금식이 나를 위하여 한 것이냐?”고 물으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을 위한 삶을 살기 위해 나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기도
우리가 경건의 모양 뿐만이 아니라 경건의 능력을 가진 자가 되게 해주십시오.
이 땅의 교회가 복음 사역의 본질을 회복하게 하시고, 사사로운 이익을 추구하는 죄를 떠나게 해주십시오.
나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는 교만하고 형식적인 신앙을 버리고,
삶의 작은 부분까지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그리스도인이 되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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