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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우리의 중보자 (요한 17:9~19) (CBS)

colorprom 2016. 3. 18. 17:42

[65]우리의 중보자 2016년 3월 18일 금요일

 

요한복음 17:9~17:19

 

9 내가 그들을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

10 내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내 것이온데 내가 그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나이다

11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12 내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고 지키었나이다

그 중의 하나도 멸망하지 않고 다만 멸망의 자식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니이다

13 지금 내가 아버지께로 가오니

내가 세상에서 이 말을 하옵는 것은 그들로 내 기쁨을 그들 안에 충만히 가지게 하려 함이니이다

14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그들을 미워하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으로 인함이니이다

15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16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

 

17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18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고

19 또 그들을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그들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

 

 

성경 길라잡이

 

내가 비옵는 것은 …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9절):

예수님의 제자들과 세상은 대립한다.

그 대립관계를 지키고 세상에 물들지 않는 것이 궁극적으로 세상을 위한 것이 될 것이다.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9절):

세상은 죄와 타락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통칭하는 말이며,

동시에 하나님을 적대시하는 악한 질서와 가치를 의미한다.

내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10절):

아버지와 아들의 것이 하나이며 결코 분리될 수 없다.

이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나타냄과 동시에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 근거가 된다.

내가 그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나이다(10절):

아들은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셨고(1절), 제자들은 아들을 영광스럽게 한다.

 

다만 멸망의 자식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니이다(12절):

이는 가룟 유다를 뜻하며, 성경은 시편 41:9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내가 비옵는 것은 …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15절):

제자들은 세상에 속하지 않은 자로서 세상에 머물러야 하고, 그럼으로써 진리를 증거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때문에 세상의 유혹이 강력할 수밖에 없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제자들이 유혹을 이길 수 있도록 기도하시는 것이다.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17절):

제자들이 세상에 속하지 않고 거룩함을 지킬 수 있는 길은 말씀뿐이다.


우리의 중보자 2016년 3월 18일 금요일

 

예수님께서는 지금 제자들을 향하여 애끓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적대시하고 동시에 하나님을 따르는 자들마저 미워하는 세상 속에

남겨진 제자들을 염려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들을 안전하게 보호해달라고 요청하고 계시며,

제자들을 거룩하고 순결하게 보전해주실 것을 간구하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늘 우리를 위해서 기도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과 우리의 영원한 중보이십니다.

우리가 오늘 하루도 무사히 이 세상 속에서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아가는 자들을 위해 그리스도께서 간구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기억합시다.

이것이 우리의 영원한 위로가 됩니다.

SNS는 현대인들이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필수적인 도구가 되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더욱 인간을 고립시키고 불통하게 하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SNS를 통해 보이는 우리의 삶은 편집된 삶입니다.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보다 좀 더 행복하고 좋아 보이는 단면만 보여주려 합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상대적으로 우리의 어두운 단면이 더욱 우리를 힘들게 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위로가 되시는 그리스도께서는 그 누구보다 우리의 삶을 잘 알고 계십니다.

우리 내면의 깊은 곳까지 아시고 이해하시며 위로하시는 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한 단면만을 보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감추고 싶은 우리 안의 가장 어둡고 암울한 곳까지 밝히 보시며,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오늘도 하나님 우편에 앉으셔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며 우리를 보호하십니다.

 

삶으로

 

예수님의 기도는 제자들을 위한 기도로 나아갑니다.

특별히 예수님께서 구하시는 것은 제자들이 세상 속에서 악에 빠지지 않고 보전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세상을 떠나시고 나면 제자들만 세상에 남겨질 것인데,

그 세상이 제자들을 미워하고 배제하는 세상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이런 세상에서 진리인 말씀을 붙들고 그들의 거룩함을 지켜야 합니다.

물론 세상은 끊임없이 자신 안으로 들어오도록 제자들을 유혹하거나 아니면 강제로 압박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은 악에 빠지지 않도록 날마다 기도해야 합니다.

오늘날 세상은 기술의 발달을 힘입어 모든 사람을 철저하게 통제하고 관리하려 합니다.

나아가 그들의 통제와 관리를 벗어나면 살아갈 수 없을 것처럼 교육시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은 그런 통제와 관리 아래 들어갈 수 없습니다.

우리를 통제하고 관리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세상이 가르치는 진리와 가치가 아니라 예수님이 가르치는 진리와 가치를 따르는,

세상의 통제가 아니라 예수님의 통제에 따르는 삶을 구상하며 실천해 가야 합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 하나님께 간구해야 합니다. 세상의 악에 빠지지 않게 해달라고 말입니다.

 

구별된 삶을 삽시다 2015년 4월 14일 화요일


'그리스도인'이라는 명칭이 어디에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아십니까?

 

바나바사울안디옥 교회에서 1년간 큰 무리를 가르쳤는데,

그때 제자들이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불리우게 되었답니다.(행 11: 26)

말하자면 그리스도인이란 명칭 안에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이라는 의미가 담겨져있는 것입니다.

제자들의 삶을 보고 있으면, 예수님이 생각나기 때문에 그렇게 작명된 것이겠지요?

그렇습니다. 예수께 속한 자, 예수님 닮은 사람들이 곧 그리스도인입니다.


신약성경에서 '거룩'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하기오스'입니다.

그 단어의 뜻은 "구별되다, 나뉘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의 가르침과 그분의 길을 따라 살다 보면,

어느새 세속적인 가치관을 따라 움직이는 세상과 점점 멀어져서,

자연스럽게 세상으로부터 구별된 존재로서 거룩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렇게 '구별된 존재'가 되는 것이죠.

'구별된 존재'가 되어야겠다고 작심하고서 의식적으로 세상과 담을 쌓고 속세를 떠나야만

구별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는 아닌 것 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그들에게 아버지의 말씀을 주었는데, 세상은 그들을 미워하였습니다.

그것은, 내가 세상에 속하여있지 않은 것과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여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14절, 새번역)


세상 속에 있어도 세상에 속해있지 않다는 이야기입니다.


구원의 기쁨 (2018년 2월 5일 월요일)


13지금 내가 아버지께로 가오니 내가 세상에서 이 말을 하옵는 것은

그들로 내 기쁨을 그들 안에 충만히 가지게 하려 함이니이다

14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그들을 미워하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으로 인함이니이다


예수님이 주시는 기쁨은 구원의 기쁨입니다.

오늘 본문을 읽으며 우리는 구원의 기쁨을 세 가지 면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첫째말씀의 기쁨입니다.

인간에게 말씀이 들어오면 그 말씀이 인간 안에서 살아움직입니다.

그 말씀대로 인간의 삶이 진행되어나갑니다.

인간인 내가 말씀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내 삶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말씀이 기쁨의 근원입니다.


둘째는, 예수님의 기쁨입니다.

"지금 내가 아버지께로 가오니 내가 세상에서 이 말을 하옵는 것은

그들로 내 기쁨을 그들 안에 충만히 가지게 하려 함이니이다."(요17:13)

예수님의 기쁨이 인간 속에 들어와 생동합니다.

예수님은 태초부터 계셨던 말씀 자체이십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기쁨은 말씀의 기쁨에 다름 아닙니다.


셋째, 부활의 기쁨입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요11:25-26)


구원의 기쁨이란 말씀의 기쁨, 말씀이신 예수님의 기쁨, 예수님의 부활의 기쁨을 그 내용으로 합니다.

그와 같은 구원의 기쁨이 지금 내 안에 있습니까?

예수님께서는 그 기쁨을 우리에게 주고자 하셨습니다. 그 기쁨을 누릴 수 있기 바랍니다.


+ 말씀의 기쁨, 예수님의 기쁨, 부활의 기쁨을 누리게 하소서. 아멘.


묵상질문

 

살아서나 죽어서나 당신의 유일한 위로는 무엇입니까?

세상이 제자들을 미워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나를 통제하고 있는 것은 세상인가요, 하나님인가요? 하나님의 통제에 따라는 삶은 어떤 것일까요?

 

기도

 

우리의 위로자이시며, 보호자이시며, 중보이신 그리스도께 감사하는 삶을 살게 해주십시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로서 세상에 속하지 않도록, 그럼으로써 세상의 통제와 관리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통제와 관리 아래 있는 삶을 구상하고 실천해갈 수 있게 해주세요.


세상을 닮은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을 닮고, 예수님을 생각나게 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되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