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한]

[62]그 고통을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요한 16:12~22) (CBS)

colorprom 2016. 3. 15. 14:37

그 고통을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2016년 3월 15일 화요일

 

요한복음 16:12~16:22

 

12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리라

13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14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

15 무릇 아버지께 있는 것은 다 내 것이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그가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하였노라

 

16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시니

17 제자 중에서 서로 말하되

우리에게 말씀하신 바 조금 있으면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시며

또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하신 것이 무슨 말씀이냐 하고

18 또 말하되 조금 있으면이라 하신 말씀이 무슨 말씀이냐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알지 못하노라 하거늘

 

19 예수께서 그 묻고자 함을 아시고 이르시되

내 말이 조금 있으면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므로 서로 문의하느냐

2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겠으나 세상은 기뻐하리라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21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 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이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으로 말미암아 그 고통을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느니라

 

22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

 

 

성경 길라잡이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13절):

예수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성령님께서 ‘진리의 영’으로 소개되고 있다.

그분의 역할은 예수님의 그것과 똑같이 하나님께서 이루어가시는 진리를 드러내는 것이다.

이를 통해 성령님 역시 하나님과 동일한 분이심을 알 수 있다.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14절):

성령님께서 하시는 일은 그분 자신의 영광이 아니라 성자 예수님의 영광을 나타내시는 것이다.

즉 성령님께서는 성자 예수님의 진리, 곧 그분의 삶과 사역, 가르침을 넘어 다른 것으로 인도하시 않는다.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16절):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실 것과 그 후에 부활하실 것을 언급하신다.

제자들은 여전히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이해하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분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제자들은 슬퍼할 것이지만,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제자들의 기쁨은 충만해질 것이다.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겠으나 …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20절):

제자들의 근심은 세상의 기쁨이 된다. 하지만 제자들의 근심은 곧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

그러면 이번에는 세상이 근심하게 될 것이다.

 

그 고통을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2016년 3월 15일 화요일

 

앞이 보이지 않아서 어떤 일이 일어나거나 어떤 상황을 마주하게 될지 알지 못할 경우

누구라도 두려움을 느낄 것입니다.

반대로 걸어가야 할 길이 분명하고, 마주하게 될 현실을 전망할 수 있다면 발걸음은 한결 가벼울 것입니다.

그 길의 끝이 성공으로 이어졌다면, 머뭇거리던 발걸음은 기쁨의 행진으로 바뀔 것입니다.

 

이처럼 막연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제자들의 마음에 드리웠지만,

제자들을 찾아온 미래에 대한 막연함은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사라져버릴 것입니다.

진리의 성령님께서 오셔서 어두운 터널 뒤에 있는 미래에 빛을 비추실 것입니다.

제자들 앞에는 슬픔과 고통이 도사리고 있지만, 그것이 제자들을 삼키지 못할 것입니다.

오히려 진리의 성령님께서 찾아오심으로써 제자들은 기쁨을 회복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약속입니다.

예수님을 따라 나선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에는 풍파가 찾아옵니다.

세상 권세는 늘 우리가 결코 어울릴 수 없는 어둠의 세력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진리의 성령님께서 오셨기에, 우리는 대담하게 우리 앞에 놓인 어둠의 터널 속을 달려갈 수 있습니다. 그분께서 우리의 눈물을 환희로 바꾸어주실 것입니다.

진리의 성령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셔서,

고통을 곱씹는 자리가 아니라 고통을 초월하는 자리 이끌어 가십니다.

 

그 어느 시대보다 불안정한 시기를 지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정말로 진리의 성령님을 의지하는 믿음이 꼭 필요합니다.

막연한 전망과 현실의 두려움 가운데서도 주님의 명령에 순종할 때,

고통을 기쁨으로 바꿔주시는 성령님의 위로와 인도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오늘도 불안과 두려움으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는 성령님의 인도를 구합시다.

 

삶으로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떠나시는 게 좋다고 하신 것은

성령님께서 오시어 제자들을 진리로 인도하실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진리는 예수님과 관련된 것입니다.

성령님께서는 예수님에게서 비롯되는 진리를

풍성하면서도 자유로운 상상력을 동원하여 깨닫게 하실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예수님의 진리가 세상과 사람들에게 의미가 있고 또 소망을 줄 수 있음을

분명하게 보이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는 무엇보다 성령님을 믿고 의지하여 예수님의 진리를 깨닫고,

나아가 그것이 지금 여기서도 진리임을 삶으로 실천하며 증거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한편 예수님께서는 그분의 죽으심과 부활을 암시하는 말에 대해 제자들이 근심하는 것을 아시고

그들을 위로하십니다.

곧 비록 지금은 제자들이 근심하나 조만간 그들은 보다 큰 기쁨,

아니 빼앗길 수 없는 기쁨을 얻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물론 이것은 일차적으로는 예수님의 부활을 뜻합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성령님을 통해 알게 되는 예수님의 진리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예수님의 진리를 알게 된 제자들은 기쁨의 공동체를 이룰 것이지만,

세상은 그로 인해 커다란 근심에 쌓이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은 그들을 감당하지도, 통제하지도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기다리는 삶 (2018년 5월 16일 수요일) (요한 16:22~24)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고 하셨습니다.(요16:16)

이는 당신의 십자가 죽음 부활이 있은 후에 아버지께로 돌아갈 것이고,

그리고 재림의 주로 다시 오실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주신 말씀의 뜻을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여성이 아기를 낳는 것에 비유하여 다시 말씀합니다.

여자가 해산에 이르러 근심하고 산고를 겪게 될 것이나

정작 아기를 낳게 되면 생명을 얻은 그 기쁨으로 모든 고통을 다시 기억하지 않는다면서

그에 비추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요16:22) 그리고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고 덧붙이셨습니다.(요16:24)

 

우리는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종말적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종말적 삶이란,

주님이 언제 오실지 모르니 슬기로운 다섯 처녀처럼 등잔의 기름을 비축해놓는 삶을 말합니다.

늘 깨어있는 삶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종말적 삶이란, 주님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간구하는 삶을 말합니다.

주님을 기다리는 소망으로, 그리고 구하는 자에게 반드시 주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며 살아가는 믿음의 백성이 되기를 바랍니다.

 

+ 하나님, 주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소망, 기도의 응답을 확신하는 믿음을 우리에게 주소서. 아멘.

 

기쁨이 충만하리라 (2020년 5월 20일 수요일)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나누신 후 마지막으로 당부의 말씀을 전하는

고별설교의 일부입니다.

고별설교가 끝나면 이제 곧 예수님은 가룟 유다가 이끌고 온 무장한 무리에게 붙잡힐 것이고,

재판을 받은 후 십자가를 지실 것입니다.

죽음을 앞두고 어찌 보면 유언과도 같은 말씀을 전하는 예수님의 모습에서 비장함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죽음의 그늘이 드리워진 그 자리에서 오히려 기쁨을 이야기합니다.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요16:20)


우리가 사는 세상은 기쁨보다는 탄식과 한숨이 가득한 세상입니다.

시편 기자는 "그의 노염은 잠깐이요 그의 은총은 평생이로다"라고 말하지만,(시30:5)

실제 우리가 사는 세상은 노여움이 평생인 것처럼 보입니다.

고통과 고난이 끊이지 않는 우리의 현실, 그런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를 향해서

성경은 “항상 기뻐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살전5:16)

어떻게 해야 항상 기뻐하는 인생을 살 수 있을까요?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요16:24)

예수님의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받을 것이기에

너희 안에 기쁨이 충만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항상 기뻐하며 살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주시기 때문입니다.

기쁨의 근거는 세상의 조건이 아니라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기쁨이 가득한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기도하지 못한 나의 연약함을 고백합니다.

내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주시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기쁨이 가득한 인생을 살게 하소서. 아멘.

 

 

묵상질문

 

오시기로 약속하신 진리의 성령과 예수님의 모습을 비교해 봅시다.

성령님의 이름이 "진리의 성령"으로 불리운 이유는 무엇일까요?

제자들의 기쁨과 세상의 기쁨이 극명하게 대비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나는 진리와 기쁨으로 이끄시는 성령님을 믿고 의지하고 있나요?

 

기도

 

진리의 성령님, 우리를 예수님과 하나가 되는 자리로 인도해주십시오.
우리의 슬픔을 바꾸어 기쁨이 되게 하시고, 눈물이 변하여 소망이 되게 해주십시오.

 

참된 진리와 기쁨을 잃어버린 채 세상이 가르치는 대로 끌려가지 않게 하시고,

성령님을 믿고 의지하여 예수님의 진리와 그로 인한 기쁨을 얻고,

그럼으로써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자가 되게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