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예수를 그리스도라 말하지 말라 2016년 2월 10일 수요일
요한복음 9:13~9:34
13 그들이 전에 맹인 되었던 사람을 데리고 바리새인들에게 갔더라
14 예수께서 진흙을 이겨 눈을 뜨게 하신 날은 안식일이라
15 그러므로 바리새인들도 그가 어떻게 보게 되었는지를 물으니 이르되
그 사람이 진흙을 내 눈에 바르매 내가 씻고 보나이다 하니
16 바리새인 중에 어떤 사람은 말하되
이 사람이 안식일을 지키지 아니하니 하나님께로부터 온 자가 아니라 하며
어떤 사람은 말하되 죄인으로서 어떻게 이러한 표적을 행하겠느냐 하여 그들 중에 분쟁이 있었더니
17 이에 맹인 되었던 자에게 다시 묻되
그 사람이 네 눈을 뜨게 하였으니 너는 그를 어떠한 사람이라 하느냐 대답하되 선지자니이다 하니
18 유대인들이 그가 맹인으로 있다가 보게 된 것을 믿지 아니하고 그 부모를 불러 묻되
19 이는 너희 말에 맹인으로 났다 하는 너희 아들이냐 그러면 지금은 어떻게 해서 보느냐
20 그 부모가 대답하여 이르되 이 사람이 우리 아들인 것과 맹인으로 난 것을 아나이다
21 그러나 지금 어떻게 해서 보는지 또는 누가 그 눈을 뜨게 하였는지 우리는 알지 못하나이다
그에게 물어 보소서 그가 장성하였으니 자기 일을 말하리이다
22 그 부모가 이렇게 말한 것은 이미 유대인들이 누구든지 예수를 그리스도로 시인하는 자는 출교하기로
결의하였으므로 그들을 무서워함이러라
23 이러므로 그 부모가 말하기를 그가 장성하였으니 그에게 물어 보소서 하였더라
24 이에 그들이 맹인이었던 사람을 두 번째 불러 이르되 너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우리는 이 사람이 죄인인 줄 아노라
25 대답하되
그가 죄인인지 내가 알지 못하나 한 가지 아는 것은 내가 맹인으로 있다가 지금 보는 그것이니이다
26 그들이 이르되 그 사람이 네게 무엇을 하였느냐 어떻게 네 눈을 뜨게 하였느냐
27 대답하되 내가 이미 일렀어도 듣지 아니하고 어찌하여 다시 듣고자 하나이까
당신들도 그의 제자가 되려 하나이까
28 그들이 욕하여 이르되 너는 그의 제자이나 우리는 모세의 제자라
29 하나님이 모세에게는 말씀하신 줄을 우리가 알거니와 이 사람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30 그 사람이 대답하여 이르되
이상하다 이 사람이 내 눈을 뜨게 하였으되 당신들이 그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는도다
31 하나님이 죄인의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경건하여 그의 뜻대로 행하는 자의 말은 들으시는 줄을 우리가 아나이다
32 창세 이후로 맹인으로 난 자의 눈을 뜨게 하였다 함을 듣지 못하였으니
33 이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아니하였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리이다
34 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네가 온전히 죄 가운데서 나서 우리를 가르치느냐 하고 이에 쫓아 내어 보내니라
성경 길라잡이
예수께서 진흙을 이겨 눈을 뜨게 하신 날은 안식일이라(14) :
예수께서 행하신 기적을 본 사람들은 즉시 그 놀라운 일이 이루어진 날이 안식일이라는 것에 집중했다.
일이라고 규정된 다른 많은 행위들과 더불어 치료행위는 안식일에 엄격하게 통제되었다.
생사가 달린 경우에만 치료행위가 허용되었는데, 나면서부터 소경된 사람의 경우는 이에 해당하지 않았다.
(LAB 인용)
이런 이유로 유대인들과 불화가 생긴 것은 요한복음 5장에 기록된 ‘베데스다 사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예수를 그리스도라 시인하는 자는 출교하기로 결의하였으므로(22) :
“출교하다(aposynagogos genetai)”는 단어는 ‘회당에서 내쫓기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단어는 신약성경 중 요한복음에만 나타난다.
유대인들의 규율은 2 종류의 파문을 정해두고 있다.
범죄한 자가 회복할 수 있게 30일 동안 출교하는 것과, 영구히 출교하는 것이다.
회당이 모든 삶을 관장하고 있었기 때문에 출교는 사회적 고립을 의미하는 최고로 무거운 시벌이다.
(LAB 인용)
당시에는 예수님을 그리스도, 곧 메시아로 인정하는 것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도와주는 행위까지도
유대교에서 출교 당하는 사유가 되었다.
너는 그의 제자이나 우리는 모세의 제자라(28절):
유대교 지도자들은 눈을 뜨게 된 사람에게 계속해서 그 경위를 물어보면서
자신들의 정통성을 모세의 율법에서 찾는다.
하지만 그들은 그들이 그토록 떠받드는 모세의 율법이 실상은 예수님에 관한 것임을 알지 못했다.
네가 온전히 죄 가운데서 나서 우리를 가르치느냐 하고 이에 쫓아내어 보내니라(34절):
이 소경은 이미 고침을 받았으므로 더 이상 소경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바리새인들을 비롯한 유대교 지도자들은 여전히 이 사람을 죄인으로 규정하고
그가 소경된 것을 그의 죄 때문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묵상과 삶
예수님 당시 유대교는 예수를 그리스도라 말하는 지식을 억압했습니다.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지식은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지위를 위협하는 요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의 종교적 지도력을 위협하는 예수에 대한 유대 지도자들의 일차적 조치는
예수를 그리스도라 시인하는 자들을 출교하기로 결정하는 것입니다.
두려움으로 진리에 대한 고백을 억제하려 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행하신 놀라운 이적으로 인해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르는 것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보지 못하는 자를 보게 하셨다는 소문은 신속하게 사람들 사이에 퍼져나갔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을 범했다는 죄목으로 예수님의 거룩함을 훼손하려 했지만 효과가 없었습니다.
드러난 일이 예수님의 거룩함을 증거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신 것은 그 행하신 일로 드러났으며, 그 가르치심으로 확증되었습니다.
진리를 믿고 따르는 삶을 억제하기 위해 세상은 종종 두려움을 사용해왔습니다.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을 소외시키거나 고립시키는 것은 역사 속에 흔히 드러나는 방법입니다.
사회적 고립은 견디기 힘든 처벌입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세상의 위협에 굴복하여 믿음을 저버리거나, 아니면 자신이 가진 믿음을 은폐합니다.
세상에서 성공적인 경력을 쌓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을 감추거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을 숨겨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것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는 것이죠. 그 현실 앞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제자가 되기를 주저하고 있습니다. 세상에 드러내지 못하는 믿음을 은밀하게 가지고 살면서 세상과 하나님 나라를 다 가지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에게 제자의 삶에 헌신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삶에 드러난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 우리를 인도하고 있습니다.
주를 향한 믿음으로 살아가는 하루가 되도록 기도합시다.
삶으로
유대의 종교지도자들은 조상들의 율법에 근거한 편견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정작 메시아(그리스도)로 오신 예수님을 거부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메시아로 시인하는 자는 누구든지 유대교에서 출교하기로 결의했습니다.
이렇게 해서까지 일반 유대인들을 예수님에게서 떨어뜨려 놓으려고 애썼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실제로 예수님을 만나 치료를 받은 소경의 입까지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비록 그의 부모조차 출교가 두려워 그 아들에게 책임을 전가하지만,
예수님으로 인한 변화와 그 증거의 물결은 누구도 막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전하자니 부끄럽거나 어색하고, 반면 전하지 않으려니 예수님을 믿는 의무를 다하지 않는 것 같고, 그래서 그냥 착하게 사는 것에 만족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으로 인해 죄와 어둠에서 건짐을 받고, 그럼으로써 그 안에 자유와 기쁨이 넘치는 사람이라면, 그 자유와 기쁨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거나 나누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전하지 못하는 것은 예수님으로 인한 자유와 기쁨을 바르게 알지 못하고,
또 바르게 누리지 못하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여전히 소경된 자로 남아 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사실과 경험에 기초한 믿음의 증언과 의심과 편견으로 가득 찬 불신의 대화가 계속됩니다.
바리새인들은 소경을 심문해서 예수님을 모함할 꼬투리를 잡고자 했지만, 결국 말문이 막힌 채 돌아가게 됩니다. 반면 소경에서 고침을 받은 사람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참된 아들임을 확신하면서
그의 능력이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자 질병을 ‘죄’ 때문이라고 여겼던 바리새인들은, 이미 소경에서 고침을 받았는데도 계속해서
그에게 빈정거립니다. 이는 그들의 편견의 골이 얼마나 깊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새로운 사람들입니다.
새로운 사람이 되었다는 말은 환경의 지배에서 벗어나
비극적인 운명론과 그늘진 사슬에서 해방되었다는 말입니다.
즉 쉽게 말해 더 이상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집안이 부요하거나 지식에 출중하거나 환경과 형편이 좋거나 하지 않더라도,
그가 지닌 진리와 자유, 정의 때문에 그는 세상의 어떤 권세에도 굴복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언제 어디에서라도 세상의 권세가 지닌 허상을 깨뜨리고 그가 지닌 자유와 진리, 정의를 세워갑니다.
묵상질문
예수께서 보지 못하는 자를 보게 하신 것에 대해 유대인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나요(18)?
그 눈을 뜨게 한 이가 예수라는 사실을 말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22)?
소경과 그의 부모가 예수님에 대해 다른 태도를 보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나는 예수님으로 인한 자유와 기쁨을 바르게 알고 또 바르게 누리고 있나요?
소경이 바리새인들에게 반박할 수 있는 지혜는 어디에서 생긴 것일까요?
내가 예수님으로 인해 새 사람이 되었다는 증거는 무엇인가요?
기도
하나님 우리 주이시며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삶이 되게 하소서.
세상 가운데서도 주의 신실한 제자로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에게 담대함을 허락하소서.
세상이 주는 자유와 기쁨은 알지만 예수님으로 인한 자유와 기쁨은 모르는 영적 소경이 되지 않게 하시고,
예수님으로 인해 눈을 뜨고 하나님 나라의 참된 자유와 기쁨을 알고 누릴 수 있게 해주세요.
거짓과 속임수, 의심과 편견으로 가득 찬 세상, 돈과 권력으로 사람들을 옭아매려는 세상에서
예수님으로 말미암는 자유와 진리, 정의를 배우고 실천함으로써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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