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한]

흘러가는 시간을 의미 있는 사건으로 (요한 7:1~13) (CBS)

colorprom 2016. 2. 21. 15:56

흘러가는 시간을 의미 있는 사건으로 2016년 1월 28일 목요일

 

요한복음 7:1~7:13 

 

1 그 후에 예수께서 갈릴리에서 다니시고 유대에서 다니려 아니하심은 유대인들이 죽이려 함이러라

 

2 유대인의 명절인 초막절이 가까운지라

3 그 형제들이 예수께 이르되 당신이 행하는 일을 제자들도 보게 여기를 떠나 유대로 가소서

4 스스로 나타나기를 구하면서 묻혀서 일하는 사람이 없나니

이 일을 행하려 하거든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소서 하니

5 이는 그 형제들까지도 예수를 믿지 아니함이러라

 

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때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거니와 너희 때는 늘 준비되어 있느니라

7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지 아니하되 나를 미워하나니 이는 내가 세상의 일들을 악하다고 증언함이라

8 너희는 명절에 올라가라 내 때가 아직 차지 못하였으니 나는 이 명절에 아직 올라가지 아니하노라

9 이 말씀을 하시고 갈릴리에 머물러 계시니라

 

10 그 형제들이 명절에 올라간 후에 자기도 올라가시되 나타내지 않고 은밀히 가시니라

11 명절 중에 유대인들이 예수를 찾으면서 그가 어디 있느냐 하고

12 예수께 대하여 무리 중에서 수군거림이 많아

어떤 사람은 좋은 사람이라 하며 어떤 사람은 아니라 무리를 미혹한다 하나

13 그러나 유대인들을 두려워하므로 드러나게 그에 대하여 말하는 자가 없더라

 

성경 길라잡이  

 

그 후에 예수께서 갈릴리에서 다니시고(1절): 1절은 예수님께서 왜 갈릴리에 머무셨는지를 설명한다.

예루살렘을 기반으로 한 기존의 종교인들과 정치인들은 예수님께 적대적이다.

 

그 후에(1절): 6:4에서는 유월절을, 7:2에서는 초막절에 대해서 말하고 있으므로

그 간격은 약 6개월 정도 된다.

유대인의 명절인 초막절이 가까운지라(2절):

6장의 시간적 배경이 유월절이었다면 7장의 시간적 배경은 초막절이다.

6장 이후로 약 6개월의 시간이 지난 상황이다.

초막절은 유대인의 3대 명절 중 하나로, 광야 생활 가운데 하나님께서 보호하셨음을 기념하는 절기이다.

초막절(2절): 유대인의 큰 축제 중 하나로서,

추수를 축하하고, 광야생활 동안 하나님이 백성들에게 베푸신 선하심을 기념하는 절기이다.

절기의 이름은 백성들이 축제가 계속되는 7일 동안 머물렀던 잎사귀로 만든 은신처에서 따온 것이다.

이는 그 형제들까지도 예수를 믿지 아니함이러라(5절):

예수님의 형제들은 예수님께 스스로 드러내기를 요구한다.

형제들의 이런 태도는 예수님을 불신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가장 가까운 형제들도 예수님께서 누구시며, 무엇을 하시려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내 때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거니와(6절): ‘내 때’와 ‘너희 때’가 구별된다.

사람들은 스스로 때를 주장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시간’의 주인이심을 고백한다.

 

내 때 … 너희 때 … (6절):

예수님의 형제들은 언제든 마음대로 오갈 수 있었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시간표에 따라서만 행동하셨다.

세상(7절): 이는 하나님께 대적하는 사람들 또는 인간의 제도를 뜻한다.

예수님은 이러한 세상을 꾸짖으셨고, 따라서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으셨다.

은밀히 가시니라(10절): 자신을 드러내라는 형제들의 요청을 거부하신 것이다.

 

묵상과 삶  

 

예루살렘의 지배세력은 예수님을 죽이려 하고, 갈릴리의 형제들은 예수님을 유혹합니다.

이런 점에서 예루살렘이나 갈릴리나, 모두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진정한 정체도, 그분의 소명도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6장에 기록된 예수님의 활동 이후로 시간이 꽤 지났지만,

그들에게는 자기 욕망을 채우기 위한 시간일 뿐이었습니다.

그러니 다시 돌아온 초막절이 그들에게는 무의미합니다.

 

하지만 오직 한분 예수님께서는 묵묵하게 자신에게 맡겨진 소명을 따라,

자신에게 주어진 일정표에 따라 살아가십니다.

초막절을 맞아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되

형제들의 욕망을 순응하지도, 지배세력의 위협에 물러서지도 않으셨습니다.

다시 찾아온 초막절은 이제 예수님 안에서 무의미하게 흘러가는 시간이 아니라,

생명이 가득한 사건으로 거듭날 것입니다.

우리의 삶을 가만히 살펴보면, 때와 시간을 통제하려는 사람의 욕망이 곳곳에 가득합니다.

시간을 규제할 수 있다면, 자신의 미래를 자신의 뜻대로 움직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 방법은 과거의 미신적인 방법에서 현재의 과학기술까지 다양하지만, 그 근본은 동일합니다.

그래서 현대인들은 저마다 자신의 인생에 관한 나름대로의 설계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은 본래 우리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피조물이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입니다.

시간을 대하는 태도는 조작이 아니라 감사이어야 합니다.

선물로 주어진 시간을 통제하면 할수록 무의미하게 흘러갑니다.

그러나 그 시간을 감사함으로 받으면 결코 사라지지 않는 의미 있는 사건으로 남아 있게 됩니다.

우리 앞으로 다가온 오늘을 감사함으로 받아, 영원한 사건으로 남기십시오.

 

삶으로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어떠한 일을 앞두고, 서두르거나 초조해함으로써 일을 그르치게 할 위험이 있을 때, 이런 표현을 쓰곤 합니다. 또한 이는 그만큼 기다리는 것이 힘들고 어려운 것임을 보여줍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예수님의 형제들이 그러했습니다.

그들은 유대인들이 모이는 초막절에 예수님이 모습을 나타내기를 원했습니다.

그렇게 하면, 예수님이 메시아란 사실이 보다 확실하게 드러날 것이라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그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의 때를 전혀 생각하지 못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대신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지만,

하나님의 때가 이르기까지 기다리셔야 했습니다.

그래서 명절에 예루살렘에 가야할지도 온전히 하나님의 뜻에 따르셨습니다.

이렇듯 예수님은 하나님의 시간표대로 움직이신 분이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해야 할까요?

비록 모든 일에 그렇게 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적어도 우리 삶의 중심은 예수님과 같아야 합니다.

설령 세상의 속도보다 늦더라도, 우리는 끝까지 인내하며 온전히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그것이 가장 지혜롭고, 가장 빠른 길입니다.

 

묵상질문  

 

예루살렘의 지배세력은 예수님께 어떻게 반응합니까?(1절)

갈릴리의 형제들은 예수님께 무엇을 권합니까?(3~5절)

두 세력의 요구에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행동하십니까? (10절)

예수님의 형제들이 예수님에게 요청한 것은 무엇이고, 이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무엇인가요?

세상의 때와 하나님의 때는 어떻게 다를까요? 또 하나님의 때를 어떻게 분별할 수 있을까요?

 

기도

 

선물로 주어진 오늘을 감사함으로 받게 해주십시오.
때와 시기를 하나님께 맡기고 염려하지 않게 해주십시오.

 

온전히 하나님의 시간표대로 하나님의 때를 사신 예수님처럼,

세상의 때와 다른 하나님의 때를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시고,

그 때를 기다리며 사는 자가 되게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