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한]

그리스도를 받아먹으라! (요한 6:47~59) (CBS)

colorprom 2016. 2. 21. 15:20

그리스도를 받아먹으라! 2016년 1월 26일 화요일

 

요한복음 6:47~6:59 

 

47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48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다

49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50 이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51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

 

52 그러므로 유대인들이 서로 다투어 이르되 이 사람이 어찌 능히 자기 살을 우리에게 주어 먹게 하겠느냐

5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54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55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56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57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

58 이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59 이 말씀은 예수께서 가버나움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하셨느니라

 

성경 길라잡이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47절):

47절은 ‘진실로 진실로’라는 표현을 통해 요한복음 전체의 주제(20장 31절)을 반영한다.

영생은 단순히 시간적으로 긴 생명을 넘어,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백성의 질적으로 다른 삶을 의미한다.

 

믿는 자는(47절): 여기서 믿는다는 것은 단순히 일회적인 믿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계속해서 지속적으로 믿는 믿음을 일컫는다.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51절):

‘내 살’은 단순한 성찬의 예식을 넘어 사람으로서의 삶 전체를 의미한다.

그분의 탄생과 성장, 공생애, 십자가에서의 죽음과 부활 모두가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었다.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51절):

이는 인류의 구원을 위해 친히 십자가를 지시고 그 위에서 찢기신 예수님의 몸을 상징한다.

결국 이 같은 예수님의 몸을 먹는다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믿는다는 뜻이요,

예수님을 자신에게 생명을 주시는 분으로 인정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이 서로 다투어 이르되(52절):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기에 그분의 말씀을 이해할 수 없었다.

도리어 예수님을 말씀을 문자적으로만 이해할 결과 논쟁이 발생했다.

이에 예수님은 53절부터 58절까지를 통해 ‘내 살’을 먹는다는 것의 영적인 의미를 밝히신다.

그것은 곧 예수님을 주인으로 고백하는 믿음이다.

 

회당(59절): 유대인들의 학교, 법정, 집회, 예배의 중심 처소로서,

바벨론에서 포로로 생활할 때 생겨나서 신약 당시 팔레스타인과 주변의 여러 나라에 많이 산재해 있었다.

 

묵상과 삶

 

예수님께서 주시려는 것과 유대인들이 바라는 것 사이에는 큰 간극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주실 수 있는 최고의 것, 즉 자기 자신을 주려 하십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예수님께 고작 썩어 없어질 양식을 찾고 있습니다.

자신들이 기대했던 것보다 더욱 좋은 것을 주시려는 예수님께 오히려 불평합니다.

 

이에 예수님은 다시 한 번 자신이 주시려는 것이 무엇인지, ‘만나’를 예로 들어 설명하십니다.

광야의 만나는 그 자체로 기적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늘에서 내려온 만나를 먹은 이들도 죽음은 피할 수 없었습니다.

이제 하늘에서 새로운 ‘산 떡’이 내려왔습니다.

‘산 떡’은 그 자체가 ‘살아있는’ 떡인 동시에, 그 떡을 먹는 자도 ‘살리는’ 떡이었습니다.

입을 열고, 마음을 열어 그 떡을 받아 드십시오.

당신이 기대했던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습니다.

자극적인 화학조미료에 길들여진 입맛이 다시 천연조미료의 맛을 누리기란 쉽지 않습니다.

신체의 입맛도 그러하거늘, 내면의 입맛은 어떠하겠습니까?

 

세상은 언제나 사람들의 저열한 욕망을 자극하여 사람들의 행동을 조작합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복음의 생명력을 잃어버린 교회들도 종종 성도들의 그러한 욕망을 자극해

원하는 대로 조작하려 한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최고의 음식을 맛본 사람이 그 이하의 것에 만족할 수 없듯이,

산 떡이신 예수님을 맛 본 자들은 감히 다른 것으로 만족할 수 없습니다.

 

아직 그 생명의 맛을 누리지 못하셨다면, 겸손하게 마음을 열고 그리스도를 구하십시오.

만일 그 맛을 누리셨다면 감히 다른 맛에 현혹되지 마십시오.

그리고 다른 지체들에게 그런 욕망에 따르라고 권하지도 마십시오.

그리스도의 생명만이 우리를 만족하게 할 수 있습니다.

 

삶으로

 

신앙생활을 하면서 특히 주의해야 할 것은 ‘하나님을 나만의 방식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을 계시된 대로(말씀대로) 믿거나 예배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과 주관에 따라 믿고 예배하는 것은 우상을 숭배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2계명을 어기는 죄).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그러한 오류에 빠진 사람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서로 다투면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믿으려 하지 않았는데,

이는 그들이 지금껏 배워왔던 율법이나 관습과는 전혀 다른 말씀이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들은 그러한 편견에 빠져 구원에 이르는 기회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살과 피를 마시는 자가 영생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친히 십자가에서 자신의 몸을 찢으셨고 피를 흘리셨습니다.

곧 자신을 희생하시면서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믿음으로 예수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심으로써

그분과 한 몸이 되는 놀라운 사랑의 관계 속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이룬 사랑의 관계는 세상 끝날까지 아니 그 너머 영원까지 지속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이러한 은혜가 모든 사람에게 미칠 수 있도록 힘쓰고 기도해야 합니다.

 

묵상질문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왜 알아들을 수 없었을까요?

그들의 관심은 처음부터 어디에 있었습니까?

광야의 만나와 ‘살아 있는 떡’은 어떤 차이점이 있습니까?(50~51절)

예수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라는 말씀에 사람들의 반응은 어떠했으며,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예수님과 연합의 신비를 누리는 자에게 요구되는 삶을 무엇일까요?

 

기도

 

‘산 떡’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만족을 맛보게 해주십시오.
욕망을 권하는 사귐에 저항하는 용기가 있게 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