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표적을 지나 그리스도께로! 2016년 1월 23일 토요일
요한복음 6:26~6:35
26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27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니라
28 그들이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2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30 그들이 묻되 그러면 우리가 보고 당신을 믿도록 행하시는 표적이 무엇이니이까, 하시는 일이 무엇이니이까
31 기록된 바 하늘에서 그들에게 떡을 주어 먹게 하였다 함과 같이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나이다
32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모세가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떡을 준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참 떡을 주시나니
33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
34 그들이 이르되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
3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성경 길라잡이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26절):
사도 요한은 오병이어의 사건을 단순한 기적이 아니라 표적이라고 부른다.
표적으로 번역된 헬라어 ‘세메이온’은 일종의 표지판으로, 다른 대상을 지시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즉 오병이어의 사건은 더욱 중요한 진리를 드러내기 위한 ‘표지판’이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오병이어가 의미하는 진정한 의미는 깨닫지 못하고,
여전히 표지판이 서있는 곳에만 머물러있었다. 이러한 갈등은 앞으로도 계속 등장한다.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28절):
여기에는 영생이 그리스도의 선물이라는 점을 모른 채,
경건한 일들을 통해 그것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하나님의 일(29절):
예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필요불가결한 ‘일’로서, 그것만이 우리를 영생으로 인도할 수 있다.
만나(31절): 유대인들은 메시아가 오셨을 때 만나를 다시 내리게 하실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군중들은 예수님께서 모세에 비해 작은 일을 했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오천 명을 먹이셨지만 모세는 이스라엘 전체를 먹였고,
예수님은 한 번 먹이셨지만 모세는 40년 동안 먹였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모세는 일반적인 떡이 아닌 ‘하늘로부터 내려온 떡’을 주었다.
나는 생명의 떡이니(35절):
예수님께서는 대화를 나누셔서 여전히 오병이어에만 머물러있는 무리의 시선을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 하나님의 떡으로 옮기신다.
그리고 그 정점에서 ‘나는 생명의 떡이다’라고 말씀하심으로써 그 표적이 가리키는 것이 자신이심을 밝히신다.
무리는 예수님께서 주시는 선물이 아니라, 선물을 주시는 예수님께 주목해야 했다.
한편 요한복음의 ‘나는…이다’라는 표현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계시하시는 것이다.
표적은 하나님을 드러내는 도구이다.
묵상과 삶
그저 백성들을 배불리 먹이는 것만이 목적이었다면,
예수님께서는 초라한 오병이어가 아니라 화려한 산해진미를 베푸셨을 것입니다.
물론 백성들은 예수님께 더욱 열광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백성들은 그것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오병이어는 더욱 중요한 것이 남아있다고 백성에게 가르쳐줍니다.
바로 자기 자신을 생명의 떡으로 주시려는 예수님이십니다.
백성들은 배불리 먹는 것에서, 그저 하나님이 주신 선물까지에서 멈추어 서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런 백성들을 이끌고 배부름 이상의 가치, 곧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께로 이끄십니다.
이런 점에서 신앙은 하나님께 이르기까지 나아가는 긴 여정입니다.
때때로 우리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결정은 우리의 몫이 아닌 하나님의 몫입니다.
신앙의 최종적인 목표는 세상이 말하는 행복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닮도록 성숙하는 것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시작하셔서,
하나님께서 동행하시며, 하나님께로 이르는 이 여정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때때로 우리는 그 여정의 무게와 어려움을 생각하며 멈추려고 합니다.
그리고 세상 역시 그만하면 되었으니 이 정도에서 멈추라고 합니다.
더 나아가 죄와 사단은 그리스도인들에게서 성숙이라는 최고의 가치를 빼앗는 대신
나름대로의 행복이라는 것을 주겠다고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결코 멈추실 생각이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도 이 여정을 어설프게 만족하며 멈추어선 안 됩니다.
혹 피곤하고 지치셨다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음식을 받아 먹읍시다.
그리고 배불리 먹었다면, 다시 일어나 우리가 가던 길을 함께 갑시다.
삶으로
먹고 사는 문제는 우리에게 있어서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우리는 그야말로 사는 게 사는 것이 아니게 됩니다.
이것은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욕구요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오늘 본문에 모인 사람들도 이 문제 때문에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앞서 5천명을 먹이신 예수님의 표적을 봤기 때문에,
그들은 예수님께서 이 문제를 해결해주실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기대와 달리 예수님은 그들에게 단순히 썩어 없어질 양식을 위해 살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보다 예수님은 자신을 가리켜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명의 떡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이 떡이야말로 썩어 없어질 양식과 달리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할 양식이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이 같은 양식을 얻기 위해서는 한 가지가 요구되는데, 그것이 바로 예수님에 대한 믿음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 믿음이 우리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엡 2:8),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이 생명의 떡이신 것을 믿고,
그 믿음으로 생명을 얻어 썩어 없어질 양식이 아닌 생명의 떡을 위해 사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묵상질문
‘표적’의 기능은 무엇입니까? 오병이어의 사건이 표적이라면, 무엇을 위한 표적입니까?
우리는 멈추고자 하나, 하나님께서 더 가자고 하신 경험이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생명의 떡과 세상의 썩어질 양식은 무엇이 다른가요?
나는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을 믿고 생명의 떡을 위해 살고 있나요?
기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을 넘어 하나님을 사랑하게 해주십시오.
온 힘을 다해 하나님을 닮아가는 신앙의 여정에 참여하게 해주십시오.
예수님에 대한 참된 믿음을 가지고 썩어질 양식을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을 위해 일하는 자가 될 수 있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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