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림돌입니까? 머릿돌입니까? 2016년 1월 27일 수요일
요한복음 6:60~6:71
60 제자 중 여럿이 듣고 말하되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 한대
61 예수께서 스스로 제자들이 이 말씀에 대하여 수근거리는 줄 아시고 이르시되
이 말이 너희에게 걸림이 되느냐
62 그러면 너희는 인자가 이전에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본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64 그러나 너희 중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있느니라 하시니
이는 예수께서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누구며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처음부터 아심이러라
65 또 이르시되 그러므로 전에 너희에게 말하기를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 하였노라 하시니라
66 그 때부터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67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
68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69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한신 자이신 줄 믿고 알았사옵나이다
70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 열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의 한 사람은 마귀니라 하시니
71 이 말씀은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를 가리키심이라 그는 열둘 중의 하나로 예수를 팔 자러라
성경 길라잡이
제자 중 여럿이 듣고 말하되(60절): 60절의 ‘제자’는 예수님을 따라다녔던 보다 큰 집단을 의미한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어려워했는데, 이는 예수님의 말씀이
그들이 가지고 있던 사고와 가치를 전폭적으로 바꾸라고 요구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이들은 자기 욕망을 따라 예수님을 떠나고 말았다(66절).
이 말씀은 어렵도다(60절): 이는 이해하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당시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신다는 것은 충격적인 것이었다.
걸림(61절): 원래는 걸려 넘어지게 하는 장애물이나 범죄하게 하는 요소를 가리키나,
여기서는 심령이 절망에 빠진 상태를 뜻한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63절): 영과 육은 관점의 문제이다.
육, 즉 욕망의 관점으로는 결코 예수님을 알 수 없다.
대신 영, 즉 성령의 안목으로만 예수님을 믿을 수 있다.
영의 관점은 하나님 아버지만이 주실 수 있는 선물이다.
많은 사람이 떠나(66절): 예수님은 이미 제자가 된다는 것의 의미를 충분히 밝히셨다.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이 가르치신 방법에 따라 생명을 얻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68절):
예수님이 누군가에게는 걸림돌이었지만 또 다른 사람에게는 생명을 걸만한 머릿돌이다.
누구든지 예수님 앞에서는 중립적일 수 없다.
생명을 걸고 그분을 따르던지, 그분을 죽이려 하든지 둘 중 하나이다.
마귀(70절): ‘거짓말로 고발하는 자’란 뜻으로,
인간을 유혹하여 죄에 빠뜨리고 하나님께 고소하기를 즐기는 사탄의 별명이다.
묵상과 삶
복음서는 예수님을 만난 많은 사람들을 소개합니다.
그런데 그 많은 사람들을 두 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온 힘을 다해 예수님을 죽이려 하는 다수와, 온 힘을 다해 예수님과 함께 죽으려하는 소수입니다.
이상하게도, 한껏 예의범절을 따지던 사람도 예수님 앞에만 서면 숨겨둔 욕망과 폭력성을 노출하곤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의 실상을 드러내 보이는 거울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언제나 예수님에 대한 호불호는 극명합니다.
누군가에게는 가고자 하는 욕망 실현의 길을 방해하는 걸림돌에 불과하며,
또 다른 누군가에는 생명과도 바꿀 수 없는 머릿돌입니다.
지금도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찾아와 자신이 걸림돌인지 머릿돌인지 물으십니다.
그분을 밟고 가시겠습니까? 아니면 그분과 함께 걸어가시겠습니까?
이 시대는 무조건 빨리 달려가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앞서 나가기 위해서라면 편법과 불의도 그저 좋은 수단일 뿐이라고 합니다.
멈추어 서는 것은 곧 경쟁에서 도태되는 것이며, 사형선고와 같이 여깁니다.
그래서 이 시대는 멈추어서는 법을 망각했습니다.
심지어 삶에 무엇인가 문제가 있다는 느낌이 들어도,
이미 달려온 길을 부정하는 것이 두려워 더 빨리 달려갑니다.
그런 사람에게 예수님께서는 지금도 큰 걸림돌처럼 찾아오십니다.
더 빨리 달리는 것보다, 바른 방향을 향하고 있는지 물으십니다.
자신의 잘못과 실패를 인정하는 것이 두려워 예수님을 밟고 지나가지 마십시오.
그 대신, 돌아가는 것 같아도 예수님을 머릿돌 삼아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십시오.
이 여정은 한 사람이 내 딛는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이 내딛는 한 걸음을 더욱 소중히 생각하는 여정입니다.
삶으로
성경을 읽다보면 때로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가령 비과학적인 부분을 만나거나 전설 같은 데서나 들을 법한 이야기를 만날 때가 그렇습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이성과 믿음 사이에서 갈등하게 됩니다.
이성을 따르자니 믿음이 없어 보이고, 그렇다고 믿음을 따르자니 너무 말이 맞지가 않는,
이러한 고민을 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그 같은 반응을 보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로 인해 어떤 제자들은 예수님을 떠났고, 어떤 제자들은 예수님을 팔 계획까지 세웠습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어떤 제자들은 끝까지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믿는 자들과 믿지 않는 자들을 이미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끝까지 그들을 가르치신 것은 그들에게도 생명의 말씀을 받을 기회를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하지만 끝까지 이를 거부한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은 결국 구원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반면 믿음으로 반응한 사람들은 구원에 이르렀습니다.
때로 우리의 이성으로 믿기 힘든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라도 먼저 믿음으로 반응한다면, 유한한 이성을 넘어선 또 다른 이해에 이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구원은 이성이 아니라 믿음으로 얻어지는 것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묵상질문
예수님을 떠난 이들은 왜 예수님을 떠났을까요? “
이 말씀은 어렵도다!”라는 불평에 담긴 의미는 무엇일까요?(60절)
예수님께 머물러 있었던 이들은 왜 머물러 있었을까요?(68절)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제자들은 각각 어떤 반응을 보였나요?
나는 이성의 한계를 인정하고 말씀에 대해 먼저 믿음으로 반응하고 있나요?
기도
우리의 실패를 인정하며 멈추어 설 수 있는 용기를 주십시오.
홀로 뛰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걷는 신앙의 여정에 참여하게 해주십시오.
오늘날처럼 이성의 합리성을 절대화하는 시대에서 오히려 이성이 가진 한계를 잘 깨닫고,
하나님의 은혜와 믿음으로 그 너머에 있는 또 다른 이해와 진리에 이를 수 있도록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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