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극적인 변화를 이루는 길 2016년 1월 8일 금요일
요한복음 3:1~3:13
1 그런데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지도자라
2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이르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4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6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7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8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9 니고데모가 대답하여 이르되 어찌 그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10 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것들을 알지 못하느냐
11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우리는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언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의 증언을 받지 아니하는도다
12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13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성경 길라잡이
유대인의 지도자라(1절):
유대인의 지도자란 유대인들을 통치하는 기구인 산헤드린 공의회의 일원이었다는 의미이다.
산헤드린 공의회는 사두개인(제사장), 바리새인(서기관) 및 귀족사회의 장로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숫자는 70명이며 대제사장의 지시를 따랐다.
그가 밤에 예수께로 와서(2절):
니고데모가 밤에 온 것은 바리새인으로서 주위의 시선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요한은 밤과 낮을 부정적이고 긍정적인 상징적 의미로 곳곳에서 사용하고 있다.
가령 사마리아 여인은 여섯 시(정오)에 예수님을 만났다.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2절):
니고데모는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이 행하시는 표적들을 보고,
예수님을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선지자이자 스승으로 믿었다.
하지만 그는 예수님에 대해 더 알고 싶어 밤에 몰래 예수님을 찾아왔다.
사람이 늙으면 …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4절):
니고데모는 예수님의 말씀(3절)을 듣고 큰 혼란에 빠졌다. 왜냐하면 그는 ‘거듭남’의 개념도 몰랐을 뿐더러, 무엇보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그의 이해를 송두리째 뒤바꿔야 했기 때문이다.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 어떻게 믿겠느냐(12절):
여기서 ‘땅의 일’이란 지금 여기서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고 또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말하며, ‘하늘의 일’이란 하나님 나라가 완성되는, 또는 니고데모를 비롯해 유대인들이 생각했던
하나님의 승리와 최후 심판이 있는 마지막 날과 관련된 것을 말한다.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13절):
성경은 오직 그리스도께서만이 ‘스스로 하늘에 올라갔다’고 말하고 있다.
에녹은 옮겨졌다는 표현을, 엘리야는 회오리바람으로 하늘에 올라갔다고 말하고 있다.
궁극적인 변화를 이루는 길 2016년 1월 8일 금요일
지혜로운 랍비이자 산헤드린 공의회의 유력자 중 하나인 니고데모는
예수님과의 대화를 통해 생명을 얻는 방법이 무엇인지 듣게 되지만, 깨닫지는 못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거듭나야 하며,
거듭나는 것은 물과 성령으로 가능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물은 세례를 의미한다기보다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내적정화 내지는 말씀을 상징하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으리라’(4장 14절), ‘
생수의 강이 흘러나올 것’(7장 38절)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생명을 얻고 거듭나기 위해서는 성령님의 도움과 말씀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여기서 우리의 구원과 영생, 하나님 나라는 특별히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만 우리에게 주어진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널리 읽히는 수많은 자기계발서들이 인간의 변화 가능성을 확신하는 내용으로 되어있습니다.
효율적으로 시간을 관리하고 에너지를 잘 분배하며,
자신의 한계를 보완하고 장점을 극대화시켜 능력을 계발하면 인간은 충분히 변화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처럼 인간을 긍정적으로 인식하여,
인류가 계속적으로 발전하여 마침내 유토피아를 건설할 수 있다는 착각이 현대사회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문명의 발전이 우리를 자유롭게 할 것이라고 인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한계가 뚜렷한 자신의 능력이나 힘으로는 결코 근원적으로 변화할 수 없습니다.
오직 성령의 도우심과 능력에 의지할 때만 우리는 궁극적으로 변화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변화는 성령님으로 충만한 삶으로 가능합니다.
삶으로
유대의 지도자 그룹에 속했던 니고데모가,
예수님이 행하시는 표적들을 보고 하나님 나라에 대해 질문하기 위해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하지만 그는 예수님에게서 원하는 대답을 듣기는커녕 오히려 큰 혼란에 빠지고 맙니다.
왜냐하면 그는 사람이 성령님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런 사람들만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전혀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고 또 그 행하시는 표적들이 증거하는 것은 다름 아니라 모두 이것이었습니다.
거듭남은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다시 태어나는 것이요,
그것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존재, 곧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 된 자들은 세상과는 다른 법과 가치를 따르고,
그럼으로써 세상 가운데서 틈과 균열을 만들어내 그 가운데로 하나님 나라가 침투하도록 만듭니다.
그런데 사실 이런 일은 누가 봐도 불가능한 일입니다.
더군다나 죄인인 우리에게서는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하지만 성령님이 이것을 가능케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님을 의지해 우리들 가운데서 이런 일들이 지속되도록 기도하며 싸워야 합니다.
성령체험 (2018년 2월 7일 수요일) (요한 3:1~8)
우리는 주기적으로 병원에 가서 건강검진을 받습니다.
검진결과 내 몸에서 이상이 발견되면 조기에 치료할 수 있고 더 큰 질병으로 번지는 것을 예방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인의 믿음도 '검진'할 수 있을까요?
결론적으로 말하면, 우리 믿음은 성령을 통하여 '검진'이라기보다는 검토하고 확인할 수 있습니다.
본문의 예수님 말씀에 따르면 성령은 '바람'입니다.
바람은 눈에 보이거나 손으로 잡을 수 없지만 몸으로 '체험'됩니다.
성령도 그렇습니다. 공부해서 알게 되는 게 아니라 체험으로 알게 됩니다.
성령체험은 회개를 일으킵니다.
예수님은 보혜사 성령이 와서 죄에 대하여, 또 의에 대하여, 그리고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리라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체험한 그리스도인은 회개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한편 성령체험은 성령과의 계속되는 동행 속에서 유지됩니다.
성령은 한 번 불어오고 난 다음 사라지는 게 아닙니다. 성령은 바람과 같아서 언제나 불어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등지지 않는 한, 우리가 성령을 소멸시키지 않는 한,(살전5:19)
성령의 바람은 멈추지 않습니다. 그것이 하늘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인 까닭입니다.
믿음은, 다만 교회 출석률로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봉사활동으로 믿음을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믿음은 타인의 눈에 확인되는 어떤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체험 속에서 확인됩니다.
우리 모두, 바람 같은 성령체험을 사모할 수 있기 바랍니다.
+ 주님, 성령체험을 사모합니다. 성령이여 내게 오소서. 아멘.
묵상질문
니고데모가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니고데모는 왜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없었을까요?
나는 성령님을 의지해 거듭난 자, 새로운 존재,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 살아가고 있나요?
기도
성령의 충만함을 힘입어 날마다 변화되는 삶을 살게 해주십시오.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거듭난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 되게 하시고,
그럼으로써 세상과 다른 법과 가치를 따르고
그것을 통해 세상의 모든 익숙하고 당연한 것들이 사실 그렇지 않음을 보일 수 있는 자가 되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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