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한]

[8]빛의 삶 (요한 3:14~21) (CBS)

colorprom 2016. 1. 11. 13:54

빛의 삶 2016년 1월 9일 토요일

 

요한복음 3:14~3:21

 

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15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18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19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20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21 진리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성경 길라잡이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14절): 민수기 21장의 사건을 말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출애굽하여 가나안으로 향하던 중 에돔 땅을 우회하는 것 때문에 불평하자,

하나님께서는 불 뱀들을 보내어 백성들을 물게 하셨다.

이에 모세가 기도하고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놋 뱀을 만들어 장대에 달았고,

이것을 쳐다본 사람들은 목숨을 구했다.

인자도 들려야 하리라(15절):

들려야 한다는 표현은 요한복음에 세 번 등장한다.  

이는 곧 십자가에 달리는 것과 죽음에서 부활하시는 것, 승천하시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16절): 이 말씀은 당시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놀라운 말씀이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대상은 이스라엘(유대인)뿐이었지, 이방인이나 세상을 사랑하신다는 개념은

생소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하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자신을 보내셨고,

또한 누구든 자신을 믿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게 하셨다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18절):

이는 하나님 나라는 니고데모 등의 유대인들이 생각했던 이방인들의 심판이 아니라

그들을 향한 사랑과 구원에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빛의 삶 2016년 1월 9일 토요일

 

믿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영생을 주시는 이유는,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영생을 주시는 방법으로 독생자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 독생자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심판받지 않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에는 반드시 조건이 따랐는데, 바로 독생자이신 그리스도께서 들리셔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들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어두운 곳에서 밝은 빛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대속하시는 이 사역으로 받은 놀라운 일들을 깊이 감사합니다.

한편으로 그리스도께 나아오지 않는 삶은, 그 자체로 이미 심판을 받은 삶입니다.

여전히 어두운 그곳에서 그리스도 없이 소망 없는 삶을 사는 것은,

최후의 심판에 앞선 심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학자들은 율법의 용도를 3 가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처벌에 대한 두려움을 통해 사회가 혼돈에 빠지지 않도록 인간사회의 질서를 유지하는 역할.

두 번째 용도는 인간의 죄악을 비추는 거울과 같은 역할로 죄를 깨닫게 하고, 죄를 저주하게 하는 역할.

이로써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돌아오게 합니다.

또한 세 번째로는,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의무가 아니라 감사와 자발적인 순종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도록 인도하는 역할을 합니다.

 

성령님의 도움과 함께, 성도로 하여금 하나님을 섬기며 거룩한 삶을 살게 하는 것

율법의 중요한 용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별히 신학자 칼빈은 율법의 세 번째 용도를 강조하였습니다.

빛으로 드러난 우리는 감사함으로 율법이 가리키던 삶, 곧 빛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삶으로

 

복음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요한복음 3장 16절이 잘 말하고 있듯이,

하나님은 니고데모 등의 당시 유대인들의 생각과 달리, 유대인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셨고,

그래서 그들을 심판하시고자 함이 아니라 구원하시고자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때문에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것입니다.

하여 이제는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반면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는 빛을 싫어하고 어둠을 사랑하므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고,

그것으로 이미 심판을 받은 것과 다름없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을 동전의 양면처럼 다룹니다.

곧 믿고 순종하는 자에게는 구원이 되는 것이, 불신하고 불순종하는 자에게는 심판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사실 구원과 심판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과거 유대인들과 같이 이방(또는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에 관심을 왈가왈부하는 것은

도를 지나친 것입니다.

 

그보다 우리에게 주어진 몫은, 다만 요한복음 3장 16절과 17절이 말하듯이,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에 관심을 갖고

이를 위해 기도하며 싸워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진리를 따르는 행위 2016년 7월 16일 토요일 (요한 3:16~21)


오늘 본문은 예수께서 율법교사 니고데모를 만나주신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가난한 사람만 만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환자들만 찾아다니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말 그대로 사람을 가리지 않고 만나주셨습니다.


그런데, 니고데모를 만나신 예수님은 안타까운 마음과 슬픈 마음을 가지게 되셨습니다.

그가 유대인의 지도자이자 교사이면서도 영적인 진리를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내내 안타까워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처음부터 영적인 사건으로서 '거듭나는 기적'은,

그 발생이나 그 결과에 사람이 끼어들어가 조작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이야기하셨습니다.

 

그러나 니고데모는, 거듭남의 사건을 사람이 어떻게 조절해볼 수 있는 일로 여겼습니다.

니고데모의 질문들이 그 같은 그의 인간중심적 사고방식에서 나왔기 때문에 어리석은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니고데모가 예수께 했던 질문들을 하나하나 되새겨봅시다.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요3:4)

"어찌 그러한 일(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요3:9)

 

흔히 우리는 성령을 내려주십사 기도하면 성령충만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방언하게 해달라고 매달리면 방언의 은사를 받게 되리라 기대합니다.

영적인사건을 인간이 조절해볼 수 있다고 생각한 니고데모와 우리가, 얼마나 가깝고 얼마나 멉니까?


독생자를 보내신 까닭은 (2019년 8월 17일 토요일)


기독교신앙고백의 핵심을 가장 명확하게 요약한 것이 요한복음 3장 16절입니다.

주일학교 시절에 요절로 암송했고 복음성가로도 많이 불러보아서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말씀입니다.

너무 익숙해서 자칫 그 말씀의 중요성과 소중함을 놓치기도 하는 말씀입니다.

무엇이든 익숙해지면 어딘가 모르게 진부하게 느껴지게 되거든요.

엄밀히 말하면 말씀이 진부한 게 아니라 우리 자신이 진부하게 된 것이지만요.

그런 점에서 이 말씀은 우리 스스로의 믿음이 진부해질 때

반드시 새롭게 곱씹으며 새겨봄직한 은혜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태초에 세상을 창조하신 후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여러 차례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았던 세상은

인간의 탐욕과 무지와 분노 등으로 인해 죄와 사망이 지배하는 흉측한 곳으로 변질되었습니다.

이렇게 변질된 세상을 회복하시고자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말씀이 육체가 되어 우리에게 오셨습니다.(요1:14)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세상을 사랑하시되 대충 사랑하신 것이 아니라

당신의 독생자를 보내어 구원과 생명을 얻을 수 있게 본질적으로 사랑하신 하나님을 묵상합시다.

그 사랑을 하나님은 결코 철회하지 않으십니다.

무한책임, 무한리필의 의지로 이 세상을 사랑하셔서 구원해주십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이야말로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새찬송가 304장 3절)

다 기록할 수 없는 무한하고 영원한 은혜의 상징입니다.


+ 십자가에서 죽으시기까지 세상과 인류를 향한 사랑을 살아내신 주님의 길을 우리도 따라 걷게 하소서. 아멘.





묵상질문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나에게 주어지는 가장 큰 유익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에게 주어진 심판은 무엇인가요?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구원이 임하도록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기도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시고 그래서 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그 하나님의 구원이 내 삶과 증언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임하도록 기도하며 싸워갈 수 있게 해주세요.

 

우리를 빛으로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빛의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해 주십시오.


하나님, 우리에게 진리를 따르는 '믿음'과 '행함'을 주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