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주님을 따르려면 2016년 1월 5일 화요일
요한복음 1:35~1:51
35 또 이튿날 요한이 자기 제자 중 두 사람과 함께 섰다가
36 예수의 거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37 두 제자가 그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거늘
38 예수께서 돌이켜 그 따르는 것을 보시고 물어 이르시되
무엇을 구하느냐 이르되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 하니 (랍비는 번역하면 선생이라)
39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보라 그러므로 그들이 가서 계신 데를 보고 그 날 함께 거하니
때가 열 시쯤 되었더라
40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는 두 사람 중의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라
41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하고 (메시야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
42 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
43 이튿날 예수께서 갈릴리로 나가려 하시다가 빌립을 만나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44 빌립은 안드레와 베드로와 한 동네 벳새다 사람이라
45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46 나다나엘이 이르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이르되 와서 보라 하니라
47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이르시되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48 나다나엘이 이르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노라
49 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5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 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
51 또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성경 길라잡이
또 이튿날(35절), 이튿날(43절):
요한은 앞 29절(이튿날)부터 예수님의 공생애 초기의 사역을 6일에 걸쳐 진술하고 있는데,
이는 공생애 마지막 6일과 비교할 수 있다.
자기 제자 중 두 사람과(35절): 여기서 두 사람 중 한 명은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이다.
그리고 또 한 명의 이름은 나오지 않지만, 이 복음서를 기록한 사도 요한으로 볼 수 있다.
때가 열 시쯤 되었더라(39절): 열 시는 오후 네 시쯤으로, 해가 지기 두 시간 전이다.
게바(42절): 게바는 바위를 뜻하는 아람어이다.
요한의 말을 듣고 …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라(40절):
아마도 다른 제자는 사도 요한일 것이다.
그들은 세례요한의 증언에 따라 예수님을 따라가 오후 늦게까지(39절) 함께 머물렀다.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45절):
나다나엘이 누군지는 분명치 않다. 혹자는 바돌로매라고도 하는데,
다른 복음서에서는 항상 빌립과 함께 바돌로매가 언급되기 때문이다.
굳이 그를 12사도 중 하나와 연결시킬 필요는 없다.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49절):
나다나엘은 자신에 대한 예수님의 통찰(47-48절)에 놀라 이렇게 고백했지만,
이 고백의 참 뜻은 몰랐던 것 같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가 더 큰 일을 보고 비로소 이 고백의 참 뜻을 알게 될 것이라 말씀하신 것이다.
묵상과 삶
본문은 예수님이 제자들과 만나는 장면입니다.
예수님의 처음 제자들인 안드레와 또 다른 제자(요한)가 예수님을 따르기로 했을 때,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무엇을 구하는지 질문하십니다.
그러나 무엇을 구하느냐는 주님의 질문에 제자들은
“선생님, 어디 계시오니까”라고 현명하게 대답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항상 목적을 가지고 주님을 따릅니다. 신앙을 가지면서 다양한 이유와 목적을 가지고 주님을 따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을 따르는 목적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그 자체입니다.
그리스도만이 우리가 주님을 따르는 목적이며 이유인 것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주님만이 우리의 목적이 아니라, 헛된 것들을 주님을 통해 얻으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러한 모든 시도들은 어리석은 것임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오직 주님이 어디 계시는지 찾아야 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종교의 가장 기본적인 기능을 ‘욕구충족’이라고 말합니다.
병을 고치기 위해, 재물을 많이 벌기 위해서, 때로는 내가 가진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
종교에 의지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지는 신앙은 궁극적으로 그리스도와 인격적으로 만남을 통해서 주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곧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제자로서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뜻과 비전을 꿈꾸고 소망하며 이루어나가는 것이
기독교 신앙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가 내 삶의 주인이 아니라 주님이 중심이 되는 신앙으로 이 땅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늘도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강력하게 요청하십니다.
우리는 ‘와서 보라’하시는 주님의 요청에,
주님을 따르며 주님과 함께 모든 것을 경험하기를 원하시는 주님의 요청에 응답할 준비가 되어있습니까?
삶으로
이튿날 세례요한의 말을 듣고 그의 제자들(요한, 안드레)이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 중 안드레는 곧바로 그의 형제 시몬에게 예수님을 메시아라 소개했고, 예수님은 그를 게바라 불렀습니다. 그 이튿날 예수님은 빌립을 만나 제자로 불렀고,
빌립은 곧바로 나다나엘에게 예수님을 율법과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라고 소개했습니다.
이에 나다나엘은 의심했지만, 곧 자신에 대한 예수님의 통찰을 보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에게 더 큰 일을 보게 될 것이고,
그 때 예수님이 누구신지 보다 분명하게 알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마치 시몬이 게바가 되는 것처럼, 예수님을 만나는 것은 인생을 송두리째 뒤바꾸는 놀라운 사건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만날 때, 사람들은 그분을 통해 비로소 세상을 바르게 보고,
또한 인생의 참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그들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세상과 인생을 꿈꾸게 됩니다.
그렇다면 대체 왜 예수님을 부르는 사람들 중 많은 수는 여전히 변하지 않고 이전과 똑같은 것일까요?
그것은 예수님을 만나지 않고 듣기만 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들음에만 머물지 않고 만남을 위해 한 걸음을 떼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한 때입니다.
묵상질문
주님이 어디 계시는지 질문하는 제자들에게 주님께서 와서 보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본문에서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어떻게 변하였나요?
예수님을 들음에만 머물지 않고 만남을 위해 한 걸음을 떼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기도
항상 주님의 소원이 나의 소원이 되게 해주시고, 주님의 요청에 응답하는 자가 될 수 있게 해주십시오.
예수님을 만나는 사건을 경험하게 하시고,
그럼으로써 세상을 바르게 보고 인생의 참 의미와 가치를 깨닫고
전혀 다른 세상과 인생을 꿈꾸는 자가 되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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