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한]

[1]우리와 동행하시는 그리스도 (요한 1:1~18) (CBS)

colorprom 2016. 1. 5. 15:08

[1]우리와 동행하시는 그리스도 2016년 1월 1일, 금요일

 

요한복음 1:1~1:18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 1:14)

 

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6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

그가 증언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언하고 모든 사람이 자기로 말미암아 믿게 하려 함이라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언하러 온 자라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한이 그에 대하여 증언하여 외쳐 이르되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하니라.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성경 길라잡이

 

말씀이 계시니라(1절): 여기서 ‘말씀’으로 번역된 ‘로고스’는 ‘정의, 이성’ 등의 의미가 있다.

칼빈에 따르면, 하나님의 아들을 말씀으로 부르는 이유는 그분이 하나님의 영원하신 지혜이자 의지이며,

하나님의 계획을 분명하게 나타내신 형상이시기 때문이다.


이 말씀은 하나님이시니라(1절):

‘말씀’으로 번역된 헬라어 ‘로고스’는 그리스 철학자들이 만물의 근원이자 원리라고 보았던 것인데,

요한은 이 단어를 차용해 구약에 나오는 지혜의 말씀에 관한 유대사상과 연결시켰다.

여하튼 요한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창조에 참여했을 뿐 아니라(3절),

그 자체로 하나님이신 말씀과 동일하신 분으로 진술한다.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라(12-13절):

세상을 지은 참 빛이 세상에 왔을 때 그를 믿고 영접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언약 백성, 곧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이들은 새로 태어난 자들인데, 그것은 육체적인 출생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한 것이다.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13절):

요한은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난 자들이라고 말하고 있다.

유대인들이 혈통으로 거룩하다는 주장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되었다.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14절): ‘거하신다’라는 단어는 ‘장막’을 가리키는 단어에서 나왔다.

이는 구약시대에 성막에 임재하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함께 계시는 것을 연상케 한다.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17절):

모세로 말미암은 율법과 달리 예수님으로 말미암은 은혜와 진리는 우리를 하나님을 아는 ‘충만함’으로 이끈다.

 

우리와 동행하시는 그리스도 2016년 1월 1일, 금요일

 

사도 요한은 그리스도의 행적을 기록하면서,

서론적으로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이시며,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만물을 함께 지으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존재는 논증의 대상도, 질문의 내용도 되지 않습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스스로 계신 것처럼, 그리스도 또한 태초부터 계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만물을 지으신 것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의 역사 가운데 많은 이들이 그리스도의 ‘존재’와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해서 의문을 표하였습니다.

하지만 성경이 증언하는 바대로,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이시며 하나님과 동등하시다는 말씀을 그저 받아들이는 것이 바른 신앙입니다.

하나님이신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가 무엇인지,

우리 가운데서 행하신 일들이 의미가 무엇인지 고민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누군가 나의 옆에서 나와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우리에게 매우 큰 위로가 됩니다.

나를 신뢰하며, 나의 고통을 나누며, 나의 기쁨을 함께하는 사람이 옆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든든한지 모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인간이 되셔서 우리 가운데 거하시며 우리와 함께 동행하십니다. 우리는 비로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우리의 생명을 생명답게 하시며, 우리를 빛의 소망으로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가득하다는 것은, 참된 은혜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것입니다.

 

밝아오는 새해에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래서 그 나라의 참된 위로가 우리로 하여금 감사의 노래를 부르게 할 것입니다.

형용할 수 없는 찬란한 소망이 우리로 하여금 평화의 입맞춤을 하게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시다

 

요한복음의 시작은 다른 복음서들(마태, 마가, 누가)처럼 예수님의 역사성에서 시작하지 않고,

예수님의 하나님 되심에 대한 고백에서 시작합니다.

곧 예수님은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세상을 창조하신 분으로서, 그분 또한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하나님께서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것도 어떤 초월적인 존재나 모양이 아닌 사람의 육신으로 말입니다.

 

세례요한은 이 일의 증인으로 세움을 받은 자였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백성이라 하던 유대인조차 예수님을 거절했습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육신으로 이 땅에 오셨다는 믿음은

우리 기독교 신앙을 떠받치는 핵심기둥 중 하나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인간이라는 도무지 뛰어넘을 수 없는 간격을 무너뜨리고 인간이 되셨습니다.

인간을 사랑하고 구원하시기 위해 인간이 되신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을 모든 죄의 비참과 절망에서 구원하는 참 사랑입니다.

우리는 이런 사랑 앞에 모든 의심과 경계를 내려놓고 무조건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이 요구하는 바, 자신을 버리고 다른 사람을 위해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의 존엄성을 회복하는 교회 2015년 2월 16일, 월요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14절)

이 말씀은, 생명을 목표가 아닌 수단으로 여기는 세계에 대한 경종입니다.

또한 연약한 존재를 끌어안으시는 하나님의 구속행위를 깨닫게 합니다.

 

"은혜와 진리" 라는 표현은 하나님의 현존을 드러내는 말입니다.


인간자신의 삶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그만큼 고귀한 존재인 것이지요.

이처럼 고귀한 존재인 인간이 오늘날 물질주의, 감각주의, 소비주의에 오염되어,

우리 사회에 생명경시풍조가 만연합니다.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모욕이 끊임없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할 수 있는 인간이 저급한 존재로 변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하지 못하는 인간은 불행하게도 도덕적 자각능력이 떨어집니다.

그들은 양심이 무뎌져서 범죄(crime)는 알아도, 죄(sin)는 알지 못합니다.

그들에게 거짓은 삶의 방편이기도 합니다.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고백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할 수 있는 존재로서의 특권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오늘날 교회에서 그 같은 죄의 고백이 드물다는 점은 여간 마음 아 픈 일이 아닙니다.

교회가 물질주의, 감각주의, 소비주의에 오염된 때문 아닐까요?


오늘날 우리 교회들이 긴급하게 회복해야 할 것은 물질적으로 더 잘 사는 게 아니라,

잃어버린 인간의 존엄성을 회복하는 일입니다.

 

묵상질문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육신으로 오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다(성육신)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성육신의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기도

 

주님, 잃어버린 인간존엄성을 회복하게 하소서. 아멘.

 

올해도 우리와 함께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사랑과 위로를 느끼며 체험하는 한 해가 되게 해주십시오.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사람이 되신 이 역사적이고 초월적인 사건에 대해 깊이 묵상하게 하시고,

거기서 하나님의 뜻과 참된 사랑을 깨닫고 이를 실천할 수 있게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