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한]

[3]보좌가 아니라 제단 위에서 (요한 1:29~34) (CBS)

colorprom 2016. 1. 5. 15:25

[3]보좌가 아니라 제단 위에서 2016년 1월 4일 월요일

 

요한복음 1:29~1:34

 

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30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는 사람이 있는데 나보다 앞선 것은 그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31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베푸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 나타내려 함이라 하니라

 

32 요한이 또 증언하여 이르되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같이 하늘부터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33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주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

34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였노라 하니라

 

 

성경 길라잡이

 

이튿날(29절):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세례 받으신 다음날이다.


하나님의 어린 양(29절):

이는 곧 이사야서에서 언급되는 고난을 당하는 종,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할 때 문설주에 뿌려진 유월절의 양을 말하는 것이다.

이 어린양은 바로 예수님께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고자 고난을 당하시고 피를 흘리시며 죽으실 것을 상징한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29절):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이해했는데,

그가 이를 죄로부터 구속을 위한 희생제물로서 이해한 것인지,

아니면 죄에 대한 최후 심판자로서 이해한 것인지 확실치는 않지만,

요한복음의 저자인 사도 요한은 이를 전자의 의미로 사용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31절):

세례요한과 예수님은 친척 관계였으므로(눅 1:36), 요한이 예수님을 몰랐을 리는 없다.

다만 요한은 예수님이 메시아이신 것을 몰랐을 뿐이다.

성령이 비둘기같이(32절): 비둘기가 곧 성령을 상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비둘기는 정결케 하는 희생 제물로, 순결의 상징으로 표현되고 있다.

그러므로 성령님의 순결함과 부드러움을 비유하는 데는 비둘기만 한 것이 없다.

또한 하나님의 영이 수면 위에 운행하셨다는 창세기(1장 2절)의 이미지가 암시적으로 차용되었다.

 

보좌가 아니라 제단 위에서 2016년 1월 4일 월요일

 

예수님에 대한 세례 요한의 증언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가 무엇인지, 어떤 사역을 하실 것인지 우리에게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은

엘리야나 모세와 같은 선지자, 혹은 그들을 구원해줄 왕으로서 메시아(그리스도)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이 선포한 예수님께서는 바로 ‘하나님의 어린양’이셨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보좌에 앉을 왕을 기다렸지만, 예수님께서는 제단에 오를 제물로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우리는 늘 보좌에 앉기를 원하지, 제단의 희생제물이 되기를 즐기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왕으로 오신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의 희생제물이 되기를 마다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물로 피를 흘리심으로써 우리는 속량, 곧 죄 용서라는 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르네 지라르라는 인류사회학자는 ‘모방욕망’이라는 이론으로 인간의 욕망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자연적인 욕구가 충족되어도 다른 사람의 욕망을 강렬하게 모방하여 따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방욕망은 욕망이 전염병처럼 번지는 것을 부채질하여

우리가 끊임없이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며 살아가게 합니다.

우리도 어쩌면 옆의 사람의 성공을 모방하며 사는지도 모릅니다.

옆의 사람이 차지한 것을 우리도 차지하기 위해서 쫓기듯 살아갑니다.

남들이 누리는 것을 우리도 누리기 위해 끝도 없는 길을 달려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가야 할 길은 욕망을 모방하는 삶이 아니라 욕망을 거스르는 삶,

나의 욕망을 위해 타인을 짓밟는 삶이 아니라 남을 위해 나를 희생하는 삶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서 그분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삶입니다.

 

삶으로

 

세례요한이 그의 정체와 그가 행하는 세례에 대해서 유대의 지도자들과 논쟁을 한 이튿날,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기 위해 나오셨습니다.

이 때 요한은 예수님 위에 성령이 비둘기 같이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머무는 것을 보고는,

그가 곧 자기 뒤에 와서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실 자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요한은 예수님께 세례를 베풂으로써 그를 이스라엘에게 나타내 보임과 동시에,

그가 세상의 죄를 대신 지고 희생제물이 되실 하나님의 어린 양이요,

또한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실 하나님의 아들이시라고 증거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 여기서 우리를 세례요한들로 부르십니다.

곧 우리를 통해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나타내 보이십니다.

우리의 말과 생각, 삶의 실천들을 통해 예수님이 누구시며, 어떤 일들을 행하시는지 알게 하십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선 무엇보다 우리가 먼저 예수님이 누구시며, 어떤 일들을 행하시는지 알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 말씀을 배우고 많은 책들을 읽어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 앎은 단순히 지식에서 멈춰서는 안 되고 삶의 실천들로까지 나가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말과 삶은 무엇보다 강력한 증언이 될 것입니다.

 

내가 보고 증거하였노라 (2018년 1월 10일 수요일)


세례 요한은 오직 예수님을 증거하고 예수님을 가리키는 사명을 받아 실천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보고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요1:29)

또 예수님을 "내 뒤에 오는, 나보다 앞선 사람"이라고 말하기도 하였지요.(요1:30)

"성령이 비둘기같이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무는 사람"을,(요1:32)

"하나님의 아들"로 증언하였습니다.(요1:34)


요단강에서 세례 요한은 자기에게 나아오는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자기를 보내시고 세우신 성령의 힘으로 그분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래서 알게 되었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그래야 합니다.

교회와 교회의 일들, 성도들과 성도들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일들, 예배와 찬양과 말씀과 증거의 일들을

성령의 힘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사모하며 그 인도하심 가운데 모든 것들을 보아야 합니다.(요14:26,16:8-14)

오직 하나님의 성령이 모든 것을 보이시고 깊은 것까지 통달하게 하시며,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십니다.(고전2:10-12)
그리하여 우리도 세례 요한처럼 "내가 보고 그를 증언하였노라"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요1:34)

주현절을 살아가는 우리 신앙생활은 그러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노라"하며,(행4:20)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여야 합니다.

"이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않았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리이다"하며,(요9:27-33)

예수님을 증언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 주님 내 눈을 열어 주님의 영광을 보게 하소서.

내 입을 열어 주의 비밀스러운 은혜를 증언하게 하소서. 아멘.


묵상질문

 

보좌와 제단의 갈림길에서 우리가 거슬러야 할 우리의 본성적인 마음은 무엇입니까?

요한은 예수님이 메시아이신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었나요?

나는 예수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으며, 내 말과 삶은 예수님을 얼마나 증언하고 있나요

 

기도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희생하신 주님께 감사하며, 그리스도의 삶을 본받는 삶을 살게 해주십시오.

 

예수님만이 유일한 구원이요 생명이자 소망인 것을 분명하게 깨닫게 하시고,

그 깨달음이 나의 말과 삶에서 실천됨으로써 이 시대에 참된 예수님의 증인이 될 수 있게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