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한]

[2]광야에서 들리는 소리 (요한 1:19~28) (CBS)

colorprom 2016. 1. 5. 15:12

[2]광야에서 들리는 소리 2016년 1월 2일, 토요일

 

요한복음 1:19~1:28

 

이르되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 하니라 (요 1:23)

 

19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네가 누구냐 물을 때에

요한의 증언이 이러하니라

 

20 요한이 드러내어 말하고 숨기지 아니하니 드러내어 하는 말이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한대

또 묻되 그러면 누구냐 네가 엘리야냐 이르되 나는 아니라 또 묻되 네가 그 선지자냐 대답하되 아니라

또 말하되 누구냐 우리를 보낸 이들에게 대답하게 하라 너는 네게 대하여 무엇이라 하느냐

이르되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 하니라

 

그들은 바리새인들이 보낸 자라

또 물어 이르되 네가 만일 그리스도도 아니요 엘리야도 아니요 그 선지자도 아닐진대

어찌하여 세례를 베푸느냐

26 요한이 대답하되 나는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너희 가운데 너희가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이 섰으니

곧 내 뒤에 오시는 그이라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하더라

 

28 이 일은 요한이 세례 베풀던 곳 요단 강 건너편 베다니에서 일어난 일이니라

 

 

성경 길라잡이

 

네가 엘리야냐(21절): 엘리야는 병거를 타고 하늘에 올라갔다.

그리고 주의 날이 이르기 전에 다시 돌아와 주의 길을 준비할 것이라고 예언되어 있었다(말 3장 1절, 4장 5절). 비록 세례 요한은 엘리야가 아니라고 대답했지만, 그는 주의 길을 예비하는 엘리야와 같은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가 엘리야와 같은 자라고 직접 말씀하셨다(마 11장 14절).


네가 그 선지자냐(21절): 그 선지자는 신명기에 기록된 모세와 같은 선지자이다(신 18장 15절).

이 예언 때문에 오랫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특별한 선지자의 도래를 기다렸다.


나는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26절): 물로 씻는 것은 구약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서는 정결의식을 의미한다. 그들에게 물로 씻는 세례나 성령의 세례는 같은 의미였다.

그러나 신약은 물과 성령의 세례를 구별하고 있다.

 

광야에서 들리는 소리 2016년 1월 2일, 토요일

 

세례 요한은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하고, 그리스도의 길을 곧게 하는 자였습니다.

그는 이사야서에 언급된 것처럼 ‘준비하는 소리’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역할이 주인공이 아니라 주인공의 등장을 알리며,

사람들의 마음을 준비시키는 역할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그 역할을 지극히 정상적이고 상식적으로 수행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맡은 역할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일들이 종종 일어납니다.

무조건 자신이 무대의 주인공인 것처럼 착각하며 행세하는 일들을 목격합니다.

 

그리고 우리 또한 우리 신앙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분명하게 아는 분별력이 필요합니다.

세례 요한을 포함하여 그 누구도 하나님께로 가는 길을 준비하지 못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가 하나님께로 갈 수 있도록 길을 준비하시고, 길을 내십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에도 수많은 ‘소리’들이 들립니다.

불안과 슬픔과 분노에 빠지게 하는 소리가 있는가 하면,

너도나도 듣기 좋은 소리, 곧 우리를 미혹하는 소리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반드시 주목해야 하는 소리는 바로 광야에서 들리는 소리입니다.

그 소리는 좀 더 낮은 곳에서 들리는 소리이고, 때로는 치열한 전쟁터의 소리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곳에서 들리는 소리야말로 기쁨의 소리이자 소망의 소리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우리가 듣고 싶은 소리만 듣고 그 길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비록 힘겹고 고통스러울지라도 우리가 들어야 할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오늘 하루도 광야에서 들리는 말씀의 소리, 가난한 자들의 소리, 죄와 싸우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삶으로

 

예수님께서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보내신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증거하도록

보냄을 받은 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다름 아닌 세례요한이었습니다.

세례요한은 예수님보다 앞서 하나님 나라의 도래와 회개를 전하면서 예수님의 길을 준비하였습니다(23절).

그러자 유대의 지도자들이 세례요한에 대한 경계심을 가지고 그의 정체를 묻는 한편,

대체 무슨 권위로 세례를 주느냐고 항의했습니다.

이에 세례요한은 자신에게 쏟아지는 모든 주목과 관심을 자기 뒤에 오실 예수님께로 돌리며,

자신의 세례가 아닌 그분의 세례에 참여할 것을 독려합니다.

세례요한은 많은 사람들에게 충분히 주목받고 영웅대접을 받을만한 사람이었습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세례를 받기 위해 요단강으로 나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요한은 그런 것으로 인해 가슴이 뛰거나 흥분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의 관심은 자기 뒤에 오실 예수님과 그분의 세례에만 있었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예수님과 그분의 세례에만 주목하고 그로 인해 하나님 나라가 도래하기만을 바랐습니다.

 

이런 점에서는 우리 역시 마찬가지여야 합니다.

예수님보다 우리가 앞서는 모든 것에서 교만과 탐욕, 곧 우상숭배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내용

 

믿는 이들이 '오히려' 주님의 길을 가로막는 경우가 있습니다.

구약시대에도 그랬고, 신약시대에도 그랬습니다. 오늘날도 다르지 않습니다.

 

세례 요한레위족 출신으로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는 일을 해야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동료 제사장들을 향해 메시야의 길을 가로막는 자들이라는 책망을 거침없이 토해내고 있습니다. 그러자 제사장들이 매서운 눈초리로 세례 요한을 노려보며, "네가 누구냐!"라고 질타합니다.

세례 요한의 대답입니다.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23절)

자신은 단지 하늘의 뜻을 받아, 울리는 소리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철저한 자기부정입니다.

자기 이익을 구하지 않고 말씀의 종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입니다.

자기 뒤에 오시는 분을 위해 목숨을 바친 요한이야말로 헌신의 모범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의 현실은 어떠합니까? '믿음(?)이 넘쳐나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그 속내를 보면, 믿음의 '주'는 없고, 믿음의 '욕구들'만 가득합니다.

고난의 주이신 그분의 '진리'는 없고, 그분이 베푸시는 '표적'만 무성합니다.

교회 다니는 것은 강조하면서도, 정직·성실·겸손· 비움의 삶에 대해서는 무관심합니다.

믿는 이들이 그리스도의 삶을 멀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래서는 안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믿음의 주요 온전 케 하시는 분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히 12: 2)

 

천사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이 견고하게 되어

모든 범죄함과 순종하지 아니함이 공정한 보응을 받았거든 (히 12:2)

 

묵상질문

 

우리 삶의 주인공은 누구입니까? 내가 내 삶의 주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오늘 들어야 할 소리는 어떤 소리일까요?

우리 삶의 주인공은 누구입니까? 내가 내 삶의 주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오늘 들어야 할 소리는 어떤 소리일까요?

요한은 자신을 어떻게 이해했으며, 어떤 사역을 했나요?(23, 27절 참고)

내가 아니라 예수님이 주목받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기도

 

+ 주님, 오늘 우리가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주님만을 바라보게 하소서. 아멘.

 

누구보다 더 주목과 관심을 받고 영웅대접 받기를 좋아하는 시대에서

오히려 모든 주목과 관심이 예수님께 가도록(또는 함께 일한 다른 친구들에게 가도록)

늘 겸손한 자가 될 수 있게 해주세요.

 

늘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그 소리를 따르는 삶을 살게 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