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체를 사랑함으로써 구원을 이루어갑니다 2015년 11월 18일 수요일
요한1서 3:13~3:24
13 형제들아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여도 이상히 여기지 말라
14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
15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16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17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
18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19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 또 우리 마음을 주 앞에서 굳세게 하리니
20 이는 우리 마음이 혹 우리를 책망할 일이 있어도
하나님은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이라
21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22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서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23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라
24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그의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
성경 길라잡이
형제들아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여도 이상히 여기지 말라(13절):
종말론적 긴장은 ‘마지막 때’(2장 18절)의 특징이다.
빛은 더욱 빛으로, 어둠은 더욱 어둠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이 마지막 때에 경험하는 고난은, 오히려 그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증거이다.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14절):
신자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고, 사랑을 구원을 이루어가며, 소망으로 구원을 받을 자들이다.
구원은 과거와 현재, 미래 전부를 담고 있다.
믿음의 대상은 그리스도이시며,
사랑의 대상은 지체들이며,
소망의 대상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그분께서 이루신 하나님 나라이다.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15절):
삼단논법으로 생각해 보면,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살인하는 자다. 살인하는 자는 영생이 그 속에 없다.
따라서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영생이 그 속에 없다.”는 말이 된다.
그런데 이는 이미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을 통해 ‘미움과 살인이 동일한 것’이라고 가르치셨던 내용이기도 하다.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18절):
형제를 위한 진정한 사랑은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 도와주는 구체적이며 실제적인 행동으로 증명될 수 있다는 말이다.
즉 형제를 사랑하는 것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자녀다운 윤리적 행동과 구체적인 사랑의 행위가 함께 동반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서 받나니(22절):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리스도께 합당한 것을 구한다.
‘무엇이든지’는 ‘그리스도 안’의 지배를 받는다.
따라서 이 본문이 무분별한 욕망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사용될 수는 없다.
묵상과 삶
우리는 이미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구원을 받았으며,
지체를 사랑함으로써 지금도 구원을 이루어가고 있으며,
하나님 나라를 소망함으로써 장차 구원을 완성할 것입니다.
이처럼 구원은 과거와 현재, 미래를 모두 관통하는 변화입니다.
따라서 이단과 적그리스도는 복음을 말하지 않는 자들이 아니라,
복음과 구원을 모두 말하지 않는 자들입니다.
즉 누군가가 구원‘받은’ 것만 말하고 구원받고 ‘있음’이나 구원 ‘받을 것임’을 말하지 않는다면,
그가 곧 적그리스도입니다.
그래서 요한일서는 예수님에 대한 믿음과 소망만큼이나 지체에 대한 사랑을 강조합니다.
지체를 행동과 진실로 사랑하는 이들만이, 자기를 부인하는 구원의 여정에 실제로 참여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라는 선언은 유효합니다.
미로슬라브 볼프에 따르면 현대의 기독교 신앙에는 2 가지 기능장애가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을 바르게 만나지 못하는 상승 기능장애이며,
둘째는 들은 바 말씀대로 제대로 살지 못하는 회귀 기능장애입니다.
신앙이 회귀 기능장애에 빠지면,
신앙은 욕망 앞에서 무력한 ‘민중의 아편’이나 무자비한 폭력으로 변질됩니다.
이런 점에서 현대인들의 신앙은 바르게 사랑할 대상을 찾지 못한다는 점에서 큰 위협에 직면해있습니다.
사랑의 가치는 열정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대상에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기껏해야 돈, 쾌락, 자기 자신을 사랑의 대상으로 제시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오직 이웃을 사랑의 대상이라고 가르칩니다.
이웃에게 자신의 생명(시간)과 소유(재정)를 기꺼이 내주는 실천이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가는 사랑입니다.
사랑을 등으로 보여주십시오.
삶으로
세상 사람들 중에서도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하물며 십자가의 능력으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들보다 못해서야 되겠습니까?
오히려 우리는 세상 사람들 이상으로
아무 조건 없이 변함없는 사랑으로 다른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물론 이것은 우리의 능력이 아닌 십자가의 능력으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십자가는 하나님과의 막힌 담만이 아니라 사람들 사이에 막힌 담까지 허묾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온전히 하나가 될 수 있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을 향한 그리스도인의 사랑을 보다 돋보이게 하는 것은
말과 혀로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 역시 우리에게서 비롯되지 않고 성령님의 능력에서 비롯됩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힘만으로 다른 사람을 사랑하려고 한다면
틀림없이 얼마 못가 상처입고 실패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성령님의 능력을 힘입어 사랑할 경우에는
다른 사람의 필요는 물론 우리 자신의 필요까지 채우고 넘치는 사랑의 역사를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사랑이 십자가와 성령님의 능력에 힘입는 사랑이 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묵상질문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의 삶과 그들의 삶에는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14, 15절)
지체를 사랑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입니까?(16~18절)
세상이 우리를 미워하는 것을 왜 이상하게 여기지 말라고 하는 걸까요?
십자가와 성령님의 능력으로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일까요?
기도
사랑해야 할 대상을 바르게 사랑하게 해주십시오.
이웃의 필요에 우리의 시간과 재정을 기꺼이 내주게 해주십시오.
하나님께서 아무 조건 없이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 또한 십자가와 성령님의 능력을 힘입어
다른 사람을 아무 조건 없이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하는 자가 되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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