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만을 소망합니다 2015년 11월 17일 화요일
요한1서 3:1~3:12
1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가,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라
2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 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
3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4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
5 그가 우리 죄를 없애려고 나타나신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
6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하나니
범죄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였느니라
7 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의를 행하는 자는 그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롭고
8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9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그도 범죄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났음이라
10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나나니
무릇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
11 우리는 서로 사랑할지니 이는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소식이라
12 가인 같이 하지 말라 그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떤 이유로 죽였느냐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의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라
성경 길라잡이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2절):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구원의 첫 열매이시다.
첫 열매는 이후 나타날 다른 모든 열매의 대표이다.
그렇기에 부활하신 예수님의 현재가 모든 신자들의 미래이다. 이것이 성도의 참된 소망이다(3절).
죄는 불법이라(4절): 요한은 단호하게 죄와 불법은 별개의 것이 아니라 하나임을 분명히 밝힌다.
당시 교회에서는 영지주의 이단들이 득세했는데,
그들은 “신은 영적세계에만 관심을 가질 뿐 육체의 죄에는 관여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죄와 불법이 연결됨을 부정하는 가르침을 가르쳤다.
그런 상황에서 요한은 그들의 가르침이 잘못되었음을 밝히는 한편,
이에 대한 올바른 해답을 제시할 필요가 있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9절):
이는 앞서 8절에서 말한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한 자’라는 것과 반대되는 개념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죄를 짓지 않는다는 사실을 강조한 것이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가 죄를 짓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씨가 그 속에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인간의 육체적 출생을 말함이 아니라 성도의 영적인 거듭남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라 하더라도 이 세상에서 죄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하기에,
본문의 의미는 그리스도인이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죄의 지배 아래에 있지 않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죄를 지었더라도 죄를 어둠 속에 감추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밝은 사귐 속에서 해결할 수 있다.
가인 같이 하지 말라(12절):
죄, 즉 지체를 사랑하지 않는 대표적인 사례로 가인의 사건이 등장한다.
가인의 첫 살인은 이후 등장한 모든 살인과 증오의 본질을 대변한다.
그 핵심에는 스스로 주인이 되려는 욕망이 도사리고 있다.
묵상과 삶
하나님 나라를 거부하는 세상은 사람들의 상상력과 소망을 조작함으로써 자신의 지배를 더욱 튼튼히 합니다. 이 시대에 소망은 대부분 시간적으로는 10년 내지 20년에 불과하며,
그 범위는 고작 자기 자신에 대한 것들뿐입니다.
사실 그 소망은 현재의 연장에 불과할 뿐, 현재와 다른 그 무엇이 아닙니다.
그러나 성경은 세상의 소망과는 비교할 수 없는 소망을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전달합니다.
이 소망은 시간적으로는 영원한 것이며, 그 범위에 있어서는 모든 피조물을 포용합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소망이십니다.
그분께서 앞서 보여주는 모든 것이 우리의 미래이기 때문입니다.
과연 우리의 소망은 무엇으로 차있습니까?
성경을 통해 소망을 회복하는 것이 신앙의 다른 이름입니다.
세상의 소망이 욕망이라면, 하나님의 소망은 전망입니다.
욕망과 전망은 그 특징에 큰 차이가 있습니다.
욕망이 스스로 보고자 하는 바에서 기원한다면, 전망은 보이는 것에서 기원합니다.
또한 욕망의 과정에 경쟁이 동반된다면, 전망은 협력을 일으킵니다.
더 나아가 그 마지막이 욕망이 독점하는 것이라면, 전망은 더불어 나누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들이 어떻게 이런 전망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일까요?
요한일서는 욕망 가득한 현대인들에게 요청하기를,
참된 전망을 찾기를 원한다면 바로 곁에 있는 지체들을 주의해서 보라고 합니다.
우리 곁에 있는 지체들과의 밝은 사귐 속에 있을 때, 그 빛 가운데 참된 하나님의 전망이 드러날 것입니다.
오직 사랑하는 자들만이 소망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삶으로
부모와 자녀의 관계가 우리의 선택에 달려있는 것이 아닌 것처럼,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도 우리의 선택에 달려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자녀를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라고 칭하는 한편,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를 ‘마귀에게 속한 자’라고 칭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은 결코 죄 가운데 거하지 않고
죄로부터 분리된 삶을 살기 위해 힘써 노력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마귀에 속한 자는 마귀를 따라 지속적으로 죄를 범하지만,
하나님께 속한 자는 빛이신 하나님을 따라 깨끗하고 정결한 삶 가운데서 선을 행합니다.
이는 비단 교회에서만이 아니라 그가 속한 모든 자리, 모든 환경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특히 요한이 강조하는 빛 가운데서의 선한 행동은 ‘형제 사랑’입니다.
즉 마귀에게 속한 자는 언제나 자기의 유익만을 구하지만,
하나님께 속한 자는 자기의 유익보다 형제와 이웃의 유익을 먼저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는 형제 사랑이야말로 우리가 하나님께 속해 있음을 결정적으로 증거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묵상질문
그리스도인의 참된 소망은 무엇입니까?(2절)
그 소망을 가진 신자의 삶은 어떠해야 합니까? (3절)
참된 소망을 상실한 세상의 모습은 어떠합니까?(8, 12절)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어떤 사람일까요?
하나님의 자녀와 마귀의 자녀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기도
세상의 욕망이 아닌 하나님의 전망을 따라 살게 해주십시오.
전망을 공유하고 보여주는 공동체 안에 깊이 머물게 해주십시오.
내가 하나님께 속한 자요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만으로 기뻐하며 자랑할 수 있게 하시고,
거기서부터 나의 유익이 아닌 다른 사람의 유익을 구하는 형제 사랑을 실천할 수 있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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