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한1서]

[2]새시대를 여신 예수 그리스도 (요일 2:1~11) (CBS)

colorprom 2015. 12. 12. 15:52

새시대를 여신 예수 그리스도 2015년 11월 13일 금요일


요한1서 2:1~2:11

 

1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2 그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3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그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4 그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5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하게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그의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

 

6 그의 안에 산다고 하는 자는 그가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

7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쓰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처음부터 가진 옛 계명이니

이 옛 계명은 너희가 들은 바 말씀이거니와

8 다시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쓰노니 그에게와 너희에게도 참된 것이라

이는 어둠이 지나가고 참빛이 벌써 비침이니라

 

9 빛 가운데 있다 하면서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둠에 있는 자요

10 그의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여 자기 속에 거리낌이 없으나

11 그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둠에 있고 또 어둠에 행하며 갈 곳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그 어둠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라

 

성경 길라잡이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1하반절):

‘대언자’는 누군가를 돕기 위해 불려온 사람, 즉 ‘변호인’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동일한 헬라어 단어, ‘파라클레토스’가 요한복음 14장 16절에서는 성령님을 지칭하는 ‘보혜사’로 번역되었다.


그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니(2절):

‘화목제물’을 의미하는 헬라어 단어 ‘힐라스모스’는

하나님의 진노를 짊어지고 그 진노를 은총으로 바꾸는 제물을 의미한다.

예수님께서는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완벽한 제물로서 하나님께서 진노를 돌이키시도록 하셨다.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2절):

여기서 ‘온 세상의 죄를 위한다’는 말이 모든 사람의 구원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요한이 말하는 죄 용서는 회개하고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에게만 찾아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예수님께서 ‘화목제물’이 되신 것은

당대의 사람들에게만이 아니라 모든 시대 모든 사람들에게 제공되는 구원의 기회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3절):

헬라인들에게 앎이 그저 지적인 문제였다면, 그리스도인들에게 앎은 삶을 던지는 인격적인 문제였다.

 

그렇기에 앎은 한 인격에 대한 헌신과 순종을 동반한다.

순종의 구체적인 내용은 7절부터 11절까지에 등장하는 ‘사랑’이다.

사랑은 구약의 옛 계명인 동시에, 신약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된 새 계명이기도 하다.

 

너희가 처음부터 가진 옛 계명이니(7절): 여기서 옛 계명은 구약성경을 뜻한다.

구약성경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타인에 대한 사랑으로 함께 명령(레 19:18, 신 6:5)하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가르침을 확증하시는 한편 그것을 새롭게 바꾸기도 하셨다(마 22:34-40).

 

새시대를 여신 예수 그리스도 2015년 11월 13일 금요일

 

전적으로 부패한 사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현대사회는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고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교육의 개혁과 자아실현으로,

또 다른 이들은 경제발전과 정치개혁,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새로운 삶을 이룩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방법으로 사람을 조금 개선시킬 수는 있으나, 새롭게 할 수는 없습니다.

 

새로움은 오직 밝혀주시는 예수님 안에만 있습니다.

옛 계명을 새 계명으로 완성하신 예수님께서만

우리 죄인들을 위한 완벽한 변호인이자 희생제물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는 사랑을 말로만 하신 것이 아니라, 못 박힌 두 손과 창 자국 난 옆구리로 하셨습니다.

사랑을 말로 들려주고 삶으로 실천하신 예수님 안에서

세상은 비로소 죄를 극복한 새로운 세상을 꿈꾸고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질투와 시기는 현대인을 움직이는 정서입니다.

질투는 ‘이웃이 가진 것을 자신이 갖지 못해 슬퍼하는 것’이며,

시기는 ‘자신이 갖지 못한 것을 이웃이 가지고 있어서 슬퍼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질투에 빠진 사람은 자신도 무엇인가를 가지기 위해서 쉼 없이 달려갑니다.

또한 시기에 빠진 사람은 다른 사람이 가진 것을 무너뜨리려고 온갖 방법을 다 사용합니다.

 

이처럼 현대인들에게 이웃은 고작해야 경쟁의 대상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복음 안에서 이웃은 사랑의 대상, 즉 내가 살아가야 할 소명(召命)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소명은 저 멀리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바로 곁에 두신 이웃에 있습니다.

우리의 생명을 포함해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곁에 있는 이웃을 사랑하라고 주신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삶으로  

 


행동보다 말이 앞서는 사람은 대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합니다.

이는 하나님과의 사귐에서도 마찬가지인데,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는 것은 곧 하나님을 안다는 것이고,

이는 다시 하나님의 성품을 따라 빛 가운데 행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다시 말해 믿음이 있다고 하는 자는 반드시 그 믿음에 대한 증거로서

거창한 말들이 아니라 빛 가운데서 행하는,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삶의 실천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분의 계명을 주시고 이를 지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계명을 폐하시지 않고 오히려 그 계명을 지킬 수 있도록

우리에게 새로운 계명과 성령님을 주셨습니다.

따라서 이제 예수님께로부터 새로운 계명을 받은 우리는 어둠이 아니라 빛 가운데 행하고

그럼으로써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기 위해 성령님을 의지해야만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성령님의 능력으로 다른 사람들을 말로만이 아니라 헌신적인 행동으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우리의 행함을 보고 세상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알게 될 것입니다.


빛 가운데 행하라 2016년 7월 4일 월요일 (요일 2:7~11)


오늘 본문은 강조합니다.

"빛 가운데 있다 하면서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둠에 있는 자요."(요일2:9)

어둠 속을 걷고 있는 자는 자기의 현실을 제대로 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어둠이 그 사람의 눈을 멀게 하기 때문입니다.(요일2:7-11)

따라서 어둠 때문에 눈이 먼 그 사람이 아무리 자기가 빛 가운데 있다고 말한다 할지라도,(요일2:9)

그의 말은 틀립니다. 눈이 먼 까닭에 제대로 본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빛과 어둠이, 오늘 본문에서는 공동체에 속한 형제들에 대한 행위에 직접 연결되어있습니다.

이러한 연결은 1장 7절에서 한 차례 나왔었습니다.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요일1:7)

그 당시에 빛, 어둠, 진리, 거짓이라는 것은

초대교회 당시 대다수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입에 올리던 개념들이었습니다.

문제는, 그 개념들을 말로 떠들면서 추상적으로 주장하는가, 행위로 실천하며 강조하는가에 있었습니다.

요한일서 저자는 1장과 2장에 걸쳐서 바로 그 지점을 분명히 지적합니다.

어떤 사람이 빛 가운데 있는지, 반대로 어떤 사람이 어둠 가운데 있는지는

그 실천적 태도에서 드러난다고 각별히 강조하고 있습니다.(요일2:7-11)


이제 이 말씀에 비추어 우리 자신을 들여다볼 차례입니다.

지금 우리는 빛 가운데있는 자라고 스스로를 '개념규정'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빛 가운데 있는 자로 '행동' 하고 있습니까?


말씀에 순종하는 삶 2016년 2월 15일 월요일 (요일 2:1~6)


성경은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는 것'하나님을 아는 것'으로 말합니다.
하나님을 안다면 마땅히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나타내야 합니다.

 

하나님을 안다 하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이는 하나님을 제대로 아는 게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는 하나님을 안다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지 않는 사람들이 제법 많습니다.

나 또한 그런 사람이 아닐까 두려운 마음으로 성찰해보게 됩니다.


사도 요한은 "그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자,"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는 (자)"라고 말합니다.(요일2:4)

즉 가짜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이지요. 우리는 가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서는 안 되겠습니다.


신영복 선생은 [담론]에서

"공부는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는 하는 것이며, 가슴에서 끝나는 여행이 아니라 가슴에서 발까지의 여행"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공부는 아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가슴으로 느끼는 것이어야 하고,

가슴으로 느끼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삶으로 살아내야 한다는 뜻으로 한 말입니다.


내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들여다보는, 믿는 이들의 자기성찰 즉 회개 역시 그래야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정말 제대로 믿고 있는지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오늘도 말씀을 '안다'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순종함으로써 실천하는 삶을 살도록 합시다.



우리가 정말 그리스도인이라면 (2019년 3월 11일 월요일) (1~6)


이 세상은 돈, 명예, 권력을 중심으로 굴러갑니다.

그런 데다 이 불의한 사회는 혹독한 경쟁논리로 운영되어갑니다.

너도나도 더 많은 돈, 더 높은 명예, 더 큰 권력을 추구하는 것이지요.


경쟁논리를 내면화하면 '내가 이겨야 한다'는 마음이 강해져서,

때로 사랑표현조차 자기도 모르게 극단적이고 이기적이며 자기중심적으로 하게 됩니다.

이러한 세상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줍니다. 곧 '사랑'입니다.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계시를 기록하면서,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온전한 그리스도의 사람, 즉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라고 권면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간다는 것은 사랑하라는 계명을 지키며 사는 삶을 의미합니다.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하게 되었나니."(요일2:5)


그러므로 하나님을 알고 있다 하면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거짓말쟁이이고, 그 사람 속에는 진리가 없습니다.(요일2:4)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또 하나님 안에 있다고 하는 사람들은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서 사신 모습과 같이, 이 세상에서 마땅히 그렇게 살아가야 합니다.(요일2:6)


기독교인들은 그리스도를 아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리스도께서 주신 계명을 지키고 행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아가페'가 기독교인들 몇 명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이 땅 모든 사람들을 위한 것임을 충분히 증거하여야 합니다.


+ 하나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행함으로써 주님 안에 온전히 거하는 자가 되게 하소서.


우리를 변화시키시는 예수 (2019년 8월 27일 화요일) (1~6)


인간은 누구나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죄가 우리 안에 들어와 '왕 노릇'함으로 우리는 끊임없이 죄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죄의 노예로 살 때가 많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극진히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어 우리 죄를 친히 대속하여주셨습니다.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기만 하면 누구든지 구원을 얻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인정하기를 거부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주님을 구주로 영접한 이후에도 죄의 유혹을 이기지 못해 죄에 빠집니다.


그때마다 예수님은 우리를 죄악에서 건지시고 하나님께 우리의 형편을 대신 아뢰어주십니다.

아버지 앞에서 우리를 변호하시는 분도 바로 대언자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날마다 세상의 유혹이 우리를 뒤흔듭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살지 못하도록 우리를 현혹합니다.

그럴 때 예수님은 우리가 계명을 지키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신실한 하나님의 거듭난 주의 자녀가 되도록 우리를 진리 안에서 권면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도 주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는, 말씀 안에 거하는 일을 통해 가능합니다.


우리에게, 주님의 인도하심과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철저한 순종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말씀으로 변화시켜주십니다.

우리가 간구하면 죄에서 우리를 얼마든지 돌아서게 인도해주십니다.


+ 주님, 나의 연약함을 돌아보시고 변화를 허락하소서! 아멘.



묵상질문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위한 대언자와 희생제물이라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죄의 문제가 예수님을 통해 어떻게 해결되었습니까?

 

그리스도를 아는 것은 무엇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까?(4절)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나님과 예수님을 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기도

 

참된 대언자이자 희생 제물이신 예수님 안에서 새 시대를 맞이하게 해주십시오.
예수님을 알아 예수님처럼 사랑하며 살게 해주십시오.

 

성령님의 능력을 힘입어 어둠의 유혹을 이기고 빛의 길을 따르게 하시고,

다른 사람들을 헌신적으로 사랑함으로써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하는 자가 되게 해주세요.


주님, 형제를 미워하지 않게 하소서.

빛 가운데 행하는 제자 되게 하소서. 아멘.


주님, 내가 정말 주님을 아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실천하며 살게 해주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