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에서 살지만 하늘에서 사는 것처럼 2015년 11월 7일 토요일
골로새서 3:1~3:11
1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2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3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4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6 이것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7 너희도 전에 그 가운데 살 때에는 그 가운데서 행하였으나
8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 버리라
곧 분함과 노여움과 악의와 비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9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
10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11 거기에는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할례파나 무 할례파나 야만인이나 스구디아인이 종이나 자유인이
차별이 있을 수 없나니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시니라
성경 길라잡이
찾으라(1절): 소극적으로가 아니라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추구하고 얻으려고 애쓰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 우편에(1절): 우편은 영광을 상징하는 자리이다(시 110편 1절).
그곳은 모든 피조물들을 다스리시는 주권자께서 통치하시는 자리이다.
이는 너희가 죽었고 …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3절):
우리가 은혜로 얻은 새로운 삶은 우리 마음대로 처분하거나 과시할 수 있는 소유물이 아니다.
그것은 예수님과의 교제 관계에 따라 유지되면서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그 실상을 드러낼 것이다
(요일 3:2).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5절): 땅에 있는 지체는 육신의 지체를 통해 작동하는 죄악이다.
우리는 이러한 죄악들을 죽임으로써 예수님께 조금씩 더 다가가는 것이다.
음란과 부정과……탐심이니(5절): 주로 성적인 범죄를 가리킨다.
그리고 마지막의 탐심은 더 많은 것을 가지려는 부적절한 욕망으로,
이것은 우상숭배와 동등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묵상과 삶
성경은 그리스도인들을 일컬어
이 땅의 것을 추구하기보다 하늘의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정체성이자 방향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 땅의 모든 것이 무가치하고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사실 이 땅의 모든 것도 하나님의 창조물이요, 그리스도의 통치 아래에 놓여있는 것들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의 모든 것을 누리고 이 땅의 것들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도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러나 이 땅의 것들을 우리가 욕망하고 탐하여 그것을 하나님보다 더 우선적인 것으로 여긴다면,
그것은 실로 그리스도인의 삶이 아닌 것입니다.
땅에 살지만 하늘에 사는 것처럼,
모든 악한 것들과 부끄러운 것들을 버리고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다운 삶의 모습입니다.
인간을 정의하는 많은 말들 중 하나가, 인간은 욕망 덩어리라는 것입니다.
늘 위선의 가면을 쓰고 살아가더라도, 결국엔 어쩔 수 없이 욕망을 따르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김규항이라는 지식인은 ‘우파 부모는 편안한 얼굴로 자녀들을 경쟁에 내몰아 일류대생이 되기를 원하지만
좌파 부모는 불편한 얼굴로 경쟁에 내몰아 좌파적인 일류대생이 되기를 원한다’는 취지의 말을 했습니다.
정치적 신념과 상관없이, 내면의 욕망 덩어리는 동일하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덧붙여 그리스도인 부모는
경건한 신앙의 일류대생이 되기를 원하는 것이 솔직한 우리의 삶의 모습이 아닌지 되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껍데기는 다르지만 알맹이는 동일하게 욕망을 따르는 삶이라면,
우리 삶의 방향을 더 많은 고민하고 현실에 더욱 치열하게 부딪치는 것이 필요할 것입니다.
삶으로
사도 바울은 참된 성도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 가르쳐 줍니다. 그것은 한 마디로 ‘위의 것’을 찾는 삶입니다.
‘위의 것’이란 하늘 또는 하나님 나라에 속한 것,
곧 머리가 되시는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하나님 나라의 가치와 방식을 말합니다.
이에 반해 땅의 것은 세상에 속한 것, 곧 우리 육체의 욕심이 원하는 세상의 가치와 방식을 말합니다.
따라서 성도는 일시적으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만족시켜줄 뿐인 땅의 것을 추구하지 말고
그보다 영원한 가치를 지닌 위의 것을 추구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이것이 금욕주의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바울이 경계하는 것은 우리의 몸(육체) 그 자체가 아니라
오히려 우리의 몸을 해롭게 하는 세상의 욕심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욕심은 겉으로는 우리의 몸을 위하고 기쁘게 해준다고 선전하지만,
사실 그것들은 우리의 몸을 망가뜨릴 뿐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 같은 세상의 욕심을 ‘옛 사람과 그 행위’(9절)라고 말하면서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사람이 된 그리스도인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것이라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직도 이렇게 어울리지 않는 옷을 걸치고 있다면 속히 벗어버리고
위의 것을 찾는 새 옷으로 갈아입기 바랍니다.
묵상질문
이 땅에서 하늘의 가치를 추구하며 살 때 가장 방해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위의 것과 땅의 것은 무엇이고, 또 그 각각의 특징은 무엇일까요?
지금 내가 걸치고 있는 옷은 무엇인가요? 위의 것을 찾는 삶을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기도
우리의 욕망과 욕심을 제어하며 새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해주십시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사람이 된 자로서
전혀 어울리지 않는 옛 사람의 옷, 곧 세상의 욕심과 세상의 가치를 벗어버리고,
위의 것을 찾는 멋지고 새로운 옷을 갈아입을 수 있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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