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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채우며 (골 1:24~2:7) (CBS)

colorprom 2015. 11. 5. 15:26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채우며 2015년 11월 4일 수요일

골로새서 1:24~2:7

 

24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25 내가 교회의 일꾼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직분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

26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졌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27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28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29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1 내가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무릇 내 육신의 얼굴을 보지 못한 자들을 위하여 얼마나 힘쓰는지를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2 이는 그들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확실한 이 해의 모든 풍성함과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니

3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

 

4 내가 이것을 말함은 아무도 교묘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

5 이는 내가 육신으로는 떠나 있으나 심령으로는 너희와 함께 있어

너희가 질서 있게 행함과 그리스도를 믿는 너희 믿음이 굳건한 것을 기쁘게 봄이라

 

6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7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성경 길라잡이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채우노라(24절):

그리스도의 고난이 사람을 구원하기에 부족해서 바울이 채운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이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복음으로 말미암아 고난 받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와 교회는 연합되어있기에, 교회가 받는 고난은 곧 그리스도의 고난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과 같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고난을 당하는 골로새 성도들의 고난을 함께 나누고

그들의 고난을 자신이 대신하려는 바울의 의지를 보여준다.


예수님을 위해 예수님과 함께 겪는 고난이다. 예수님의 속죄는 보완될 필요가 없다. 하지만 교회는 예수님의 몸으로서 증언에 충실하려면 곤궁과 박해와 환난을 견디어내야 한다. 그런 고난은 교회에게도 유익이 된다.

 
내가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2:1):

골로새의 이웃 도시인 라오디게아에도 교회가 있었고(계 3:14),

그 교회도 거짓 교사들에게 미혹을 받고 있었다.

기독교의 지식의 목표는 예수님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의 풍부한 자원을 들춰내는 것이다.

이것을 외면하거나 이것과 다른 것에서는 참된 지혜를 찾을 수 없다.

 

확실한 이해의 모든 풍성함과(1절): 이해를 통해서 완전하게 확실해진 상태를 의미한다.

 

묵상과 삶 

 

바울은 복음을 위하여, 특별히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받는 고난을 기뻐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는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맡기신 일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복음을 위하여 고난 받는 것이 바울에게는 기쁨이었고, 그는 성도들이 받을 고난을 대신할 수 있어서 기뻐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세우지도 않은 교회를 위해서, 얼굴도 한 번 보지 못한 성도들(2장 1절)을 위해서 고난 받는 것을 기뻐하였습니다. 그가 이러한 수고로움을 감당하는 이유는 바로 영광의 소망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때문입니다. 우리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이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또 잘 알지도 못하는 이들을 위해서 수고하고 헌신하는 이유도, 동일하게 오직 그리스도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유일한 이유이자 목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영광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분리할 수 없습니다. 복음을 위한 삶을 살아갈 때 고난은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과 교회가 온전한 복음을 전하고, 복음대로 살아가려고 할 때 고난이 우리를 찾아옵니다. 고난과 환란은 신자들의 친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복음을 통하여 이 땅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려는 시도는 어리석은 태도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5장 11, 12절). 우리가 누려야할 부귀영화는 하늘나라의 것입니다. 이 땅에서 우리가 친하게 지내야 할 친구는 지상의 부귀영화가 아니라, 복음을 위해 받는 고난과 환란입니다.

 

삶으로 

 

바울은 본문에서 자신을 가리켜 ‘교회의 일꾼’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사실 영적 위기에 봉착해 있던 골로새 교회에 필요한 것은 다름 아닌 참된 일꾼이었습니다. 그 만큼 바울은 교회의 필요성을 절감하며 편지를 썼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일꾼이 궁극적으로 충성해야 할 목표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는 것, 곧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고 드러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복음만이 인간과 상황을 새롭게 하고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오늘날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자꾸만 복음을 뒷전으로 밀어놓으려 하는 것 같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더욱 더 ‘오직 복음’이라는 기치를 높이 들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오직 복음’의 핵심은 예수님입니다. 예수님 안에는 하나님의 모든 지식과 지혜의 풍성함과 신비가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아는 것이 참된 지혜인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당시 골로새 교회를 혼란케 한 영지주의자들의 주장처럼 우리의 현실, 우리의 실제적인 삶과 분리된 순전히 영적인 차원의 지식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지금 여기 우리의 현실, 우리의 실제 상황과 밀접히 관련된, 그것들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참된 지식이요 지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이 복음이 되는 것입니다.

 

묵상질문 

 

‘십자가의 영광’이라는 말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생각해봅시다.

복음을 위해 고난 받은 경험이 있습니까? 그러한 고난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는 어떠해야 합니까?

바울이 골로새뿐 아니라 라오디게아의 성도들을 위해서까지 힘쓰고 있는 목적은 무엇인가요?(2절)

나는 예수님에 관한 얼마나 알고 있으며, 또 이를 위해 얼마나 힘쓰고 있나요?

 

기도

 

그리스도를 위해, 복음을 위해 받는 고난과 환란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고, 성령님께서 늘 우리와 함께 계셔서 도와주십시오.

 

예수님을 아는 것이 참된 지혜요, 또한 그것만이 우리를 실제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것임을 믿고, 이를 위해 힘쓰는 삶을 살게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