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징계를 인정하는 것이 복입니다 2015년 9월 10일 목요일
이사야 39:1~39:8
1 그 때에 발라단의 아들 바벨론 왕 므로닥발라단이 히스기야가 병들었다가 나았다 함을 듣고
히스기야에게 글과 예물을 보낸지라
2 히스기야가 사자들로 말미암아 기뻐하여
그들에게 보물 곧 은금과 향료와 보배로운 기름과 모든 무기고에 있는 것을 다 보여주었으니
히스기야가 궁중의 소유와 전 국내의 소유를 보이지 아니한 것이 없은지라
3 이에 선지자 이사야가 히스기야 왕에게 나아와 묻되
그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였으며 어디서 왕에게 왔나이까
히스기야가 이르되 그들이 원방 곧 바벨론에서 내게 왔나이다 하니라
4 이사야가 이르되 그들이 왕의 궁전에서 무엇을 보았나이까 하니
히스기야가 대답하되 그들이 내 궁전에 있는 것을 다 보았나이다
내 창고에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아니한 보물이 하나도 없나이다 하니라
5 이사야가 히스기야에게 이르되 왕은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6 보라 날이 이르리니 네 집에서 있는 모든 소유와 네 조상들이 오늘까지 쌓아 둔 것이 모두 바벨론으로
옮긴 바 되고 남을 것이 없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7 또 네게서 날 자손 중에서 몇이 사로잡혀 바벨론 왕궁의 환관이 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
8 히스기야가 이사야에게 이르되 당신의 이른 바 여호와의 말씀이 좋소이다 하고
또 이르되 내 생전에는 평안과 견고함이 있으리로다 하니라
성경 길라잡이
그 때에(1절): 39장의 사건들을 38장과 연결시키는 단어이다.
므로닥발라단은 앗수르에 종속되어 있던 바벨론의 통치자였다.
그는 사르곤 2세가 죽자(주전 705년) 앗수르로부터 독립하고자 했다.
그때가 아마도 앗수르의 주의를 분산시킬 목적으로 이 사절단이 도착한 때일 것이다.
하지만 앗수르는 그 반란을 재빨리 진압했다.
그 때에 발라단의 아들 바벨론 왕 므로닥발라단이(1절): 므로닥발라단은 악하고 무자비한 왕으로 알려져있다. 그의 사신이 히스기야를 찾아온 것은 38장의 사건 직후로,
히스기야와 손을 잡고 앗수르에 저항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에 히스기야는 기뻐하며 그 제의를 받아들인다(2절).
남으로는 이집트, 북으로는 바벨론과 동맹을 맺음으로써 앗수르에 저항하려 한 것이다.
시기적으로는 39장이 37장보다 앞서는데도 39장이 뒤에 등장한 것은 40장의 주제,
즉 포로 귀환의 배경을 설명하기 위해서이다. 따라서 39장이 없이는 40장이 있을 수 없다.
히스기야가 사자들로 말미암아 기뻐하여(2절):
앗수르의 위협에도 믿음이 굳건했던 히스기야가 바벨론의 감언이설에는 살살 녹는다.
그는 그들의 동기를 살피지도 않은 채 무방비 상태로 그들을 맞아 그들에게 보물창고까지 다 보여 주었다.
아마도 히스기야는 앗수르를 권좌에서 끌어내리려는 바벨론의 계획에서 나름의 역할을 감당하고 싶었던 것 같다. 어쨌든 여기서 히스기야는 하나님을 의식하지 못했다.
결국 그는 자신의 부의 정도를 드러냄으로써 후일 바벨론에 의한 약탈을 자초하는 꼴이 되었다.
보라 날이 이르리니(6절): 아하스가 앗수르를 의지했다가 징계를 받았듯이
히스기야는 38장의 교훈에도 불구하고 바벨론을 의지하여 심판을 초래하였다.
여호와의 말씀이 좋소이다(8절): ‘좋소이다’는 의롭고 옳다는 의미이다.
즉 히스기야는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이 정당하다고 인정했다.
그 결과 징계가 유예되었다(대하 32장 26절).
묵상과 삶
하나님의 징계 속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들어있습니다.
성경은 두 종류의 사람을 보여줍니다.
히스기야처럼 하나님의 징계를 ‘옳습니다!’라고 인정하는 사람과,
가인처럼 마지막까지 하나님의 징계를 거부하는 사람입니다.
히스기야처럼 하나님의 징계를 겸손하게 인정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 태도를 옳게 보시고 그에게 긍휼을 베푸십니다.
반대로 가인처럼 마지막까지 하나님의 징계를 거부하면 더욱 불의해져서 더 큰 징계를 받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징계를 겸손히 받아들이면, 그 징계는 도리어 복이 됩니다.
누구나 하나님 앞에서 잘못을 범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그 다음 순간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숨지 말고,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죄를 인정하고 그분의 징계를 받으십시오.
그 길이 진정으로 사는 길입니다.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창 3장 10절)라는 아담의 변명은 모든 죄인들의 변명입니다.
이 시대는 온 힘을 다해 ‘죄’라는 말을 없애려고 합니다.
대신 질병과 환경,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말을 늘어놓으며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징계를 거부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선을 피해 어둠 속에 자리 잡은 사람의 죄는 점점 더 크고 깊어져서,
결국 한 인격을 파괴하고 시대를 죄로 물들입니다.
죄를 인정하지 않고 징계를 거부할수록 사람은 점점 더 사람다운 인품을 잃어버립니다.
참 사람을 회복하는 길, 하나님의 긍휼을 누리는 가장 정직한 길은 정직하게 죄를 죄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어쩔 수 없었다는 비겁한 변명을 버리고, “내가 바로 그 죄인입니다.”라고 고백합시다.
그러면 하나님의 무궁한 인자와 긍휼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삶으로
히스기야는 자신의 병이 나은 것을 기회로 바벨론과 연합 전선을 구축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보물과 무기고를 보여주며 홍보합니다.
하지만 이는 훗날 유다가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하는 주된 원인이 됩니다.
더군다나 히스기야는 이런 사실을 알고도
자기가 왕으로 있을 동안에는 평안할 것이니 문제될 게 없다는 듯한 태도를 보입니다.
이렇듯 국가적인 위기와 개인적인 위기를 믿음으로 잘 이겨낸 히스기야조차
칭찬과 인정 앞에서 교만해져 결국 무너지고 맙니다.
여기서 우리는 인간의 연약함과 세상 나라들의 한계를 볼 수 있습니다.
‘항상 감사하기’라는 제목의 짧은 글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파티를 하고 나서 치워야 할 게 많아 걱정이라면 그건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는 것이고,
교회에서 뒷자리 아줌마의 제멋대로 찬송이 거슬린다면 그건 내가 들을 귀가 있다는 것이고,
온몸이 피곤하고 뻐근하다면 그건 내가 열심히 일할 몸이 있다는 증거이고,
이른 새벽 잘못 맞춰진 시끄러운 알람에 깼다면 그건 내가 살아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 가지 불평한 일에는 반드시 한 가지 이상의 감사한 일들이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슨 일에든 일희일비하지 말고
늘 우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 앞에 겸손히 감사함으로 살아야 합니다.
묵상질문
바벨론 왕이 사신을 보낸 까닭과 이에 대한 히스기야의 반응은 어떠합니까?
바벨론과 동맹을 맺은 것이 왜 심판의 이유가 됩니까?
죄를 지었을 때,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반응하십니까?
히스기야가 잘못 판단하여 행한 행동(또는 태도)과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2, 8절)
나는 세상의 인정과 칭찬을 갈망하거나 또는 그것으로 인해 교만해지지 않나요?
기도
내 안에 숨겨진 모든 죄를 밝히 드러내주십시오.
드러난 죄를 겸손하게 인정하고 주님 앞에 엎드리게 해주십시오.
평안하고 칭찬 받을 때에 교만하지 않게 하시고,
오히려 나를 인도하신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기억하며 겸손히 하나님만 의지하는 사람이 되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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