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사야]

[63]하나님께서 복음이십니다 (이사 40:1~11) (CBS)

colorprom 2015. 9. 11. 14:11

하나님께서 복음이십니다 2015년 9월 11일 금요일

 

1 너희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2 너희는 예루살렘의 마음에 닿도록 말하며 그것에게 외치라

그 노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의 사함을 받았느니라

그의 모든 죄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손에서 벌을 배나 받았느니라 할지니라 하시니라

 

3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4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언덕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아니한 곳이 평탄하게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5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이는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

 

6 말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외치라 대답하되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이까 하니

이르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

7 풀은 마르고 꽃이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8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

 

9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자여 너는 높은 산에 오르라

아름다운 소식을 예루살렘에 전하는 자여 너는 힘써 소리를 높이라

두려워하지 말고 소리를 높여 유다의 성읍들에게 이르기를 너희의 하나님을 보라 하라

 

10 보라 주 여호와께서 장차 강한 자로 임하실 것이요 친히 그 팔로 다스리실 것이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의 앞에 있으며

11 그는 목자같이 양 떼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 먹이는 암컷들은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

 

 

성경 길라잡이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1절):

40장의 내용은 가깝게는 39장 6절에서 선언된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해방되는 내용이며,

멀게는 오신 예수님께 구원받는 내용이다.

또한 외적으로는 포로생활, 내적으로는 죄로부터의 구원이다.

이 소식은 마음에 닿을 정도로(2절) 큰 위로이다.

이사야의 시대에서는 적어도 150년 이후의 사건이며, 그 사이의 시간은 긴 노역의 시기이다.

 

너희는 위로하라(1절): 하나님은 3절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에게, 6절에서 말하는 자의 소리에게,

그리고 9절에서 전하는 자에게 사명을 주시며 백성들을 위로하라고 명령하신다.


예루살렘의 마음에 닿도록 말하며(2절): 하나님은 백성들의 마음을 다시 얻기를 바라신다.

그래서 그분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온 자들을 높이시면서

그분이 그들의 고난을 이해하고 그 속에 함께 계신다는 점을 확신시키신다.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3절): 바벨론에서의 해방은 출애굽 사건을 연상케 한다.

광야는 궁핍한 곳이지만 언약백성에게는 새로운 출발의 장소이기도 하다.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5절):

하나님의 임재는 남은 자만이 볼 수 있는 사적인 응시가 아니라 온 세상이 함께 보는 공개적인 응시이다.

이러한 약속에서 하나님의 다른 은혜로운 약속들이 흘러나오고

이러한 신적인 목적에서 역사 전체가 진행되는 것이다.


이는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5절):

위로에 대한 약속이 성취되는 것은 유리한 역사적 추세에 달린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약속에 달려 있다(참조. 사 55:10-11)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8절): 풀과 꽃처럼 개인과 민족도 흥망성쇠를 거듭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은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자여(9절): 아름다운 소식, 즉 복음의 핵심은 진정한 왕께서 오신 일이다. 1절부터 11절까지의 모든 변화는 진정한 왕의 등장으로 말미암아 일어난 사건이다.

 

묵상과 삶

 

오랜 전쟁과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바벨론 제국의 등장으로 말미암은 70년에 걸친 포로생활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 백성의 현실은 암울하기만 했습니다. 그 어디에도 개선과 변화의 가능성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단 하나의 변수가 공고하기만 했던 현실을 완전히 바꾸었습니다.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제국은 하루아침에 무너졌고, 영원할 것만 같았던 포로생활은 끝이 났습니다.

포로로 잡혀가던 눈물의 광야 여정은 고국으로 돌아가는 기쁨의 순례로 변했습니다.

풀꽃처럼 피었다가 시드는 사람과 왕국 속에서, 하나님의 약속만은 변치 않았습니다.

이 모든 변화를 일으키신 하나님 그분께서 언약백성의 마음을 위로해주는 아름다운 소식이셨습니다.

그 하나님께서 지금도 비참한 상황 속에서 탄식하는 이들을 찾아오십니다.

복음의 주인공은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현대인들이 맞이하는 다양한 문제들만큼이나 세상에는 다양한 기쁜 소식들이 있습니다.

그 복음들은 한결같이 사람들에게 무엇을 하라는 요구로 가득하고, 경쟁을 동반합니다.

분명 복음들인 것만 같지만, 사실 그 복음들이 오히려 사람들을 더욱 노예로 만들고 피폐하게 만듭니다.

더 나아가 세상의 복음은 소수의 몇몇 사람들에게만 복음일 뿐, 나머지 대다수에게는 고통일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복음은 그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우리를 위해 하시는 일에 참여하라는 것입니다. 그 안에서 사람은 비로소 휴식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사람의 복음들과 하나님의 복음 사이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누군가를 짓밟아야만 누릴 수 있고 내가 짓밟힐 수도 있는 복음들입니까?

아니면 더불어 손잡고 함께 누릴 수 있는 유일한 복음입니까?

선택은 여러분의 몫입니다.

 

 삶으로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갈 것을 말씀하신 하나님이 갑자기 영광스러운 소망을 약속하십니다.

곧 자유와 해방의 약속입니다. 사실 포로들에게 이보다 더 기쁘고 위로가 되는 것은 없습니다.

그 때가 되면 이스라엘 백성은 더 이상 그들의 죄로 인한 형벌을 받지 않아도 됩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죄가 이미 사해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죄 역시 예수님 안에서 사해졌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구속의 은혜를 받은 자로서 하나님이 하실 일을 예비하는 삶을 살아야만 합니다.

예수님을 아는 지식은 마치 높은 산을 오르는 것과도 같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처음 믿을 때는 조금밖에 예수님을 알지 못하다가

점점 높이 올라갈수록 예수님의 아름다움을 더 많이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직 그 정상까지 다 올라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누가 우리의 지식을 초월하는 예수님의 사랑을 다 알 수 있을까요?

그럼에도 우리는 예수님의 풍성한 사랑을 더 많이 알고 체험하기 위해서

가능한 산의 높은 곳까지 올라야 합니다(9절).

이는 곧 예수님과 더 깊은 교제를 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를 통해 아름다운 소식이 더 멀고 넓게 전해질 것입니다.

 

묵상질문

 

이스라엘 백성이 맞이한 변화는 무엇입니까? 그 원동력은 또한 무엇입니까?

세상의 기쁜 소식들과 하나님의 복음은 어떻게 구별됩니까?

하나님의 복된 소식은 궁극적으로 무엇을 위함인가요?(1절)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위로의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기도

 

우리의 비참한 현실에 하나님께서 와주십시오.
세상의 복음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복음을 따라 살게 해주십시오.

 

나의 삶에서 복음으로 인한 위로를 경험하게 하시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하는 사람이 되게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