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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바라바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넘겨지셨습니다 (마태 27:11~26) (CBS)

colorprom 2015. 6. 24. 13:42

바라바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넘겨지셨습니다 2015년 6월 24일 수요일


마태복음 27:11~27:26

 

예수께서 총독 앞에 섰으매 총독이 물어 이르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이 옳도다 하시고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고발을 당하되 아무 대답도 아니하시는지라

이에 빌라도가 이르되 그들이 너를 쳐서 얼마나 많은 것으로 증언하는지 듣지 못하느냐 하되

한 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총독이 크게 놀라워하더라

 

명절이 되면 총독이 무리의 소원대로 죄수 한 사람을 놓아 주는 전례가 있더니

그 때에 바라바라 하는 유명한 죄수가 있는데

그들이 모였을 때에 빌라도가 물어 이르되

너희는 내가 누구를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바라바냐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냐 하니

이는 그가 그들의 시기(猜忌)로 예수를 넘겨 준 줄 앎이더라

 

총독이 재판석에 앉았을 때에 그의 아내가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저 옳은 사람에게 아무 상관도 하지 마옵소서

오늘 꿈에 내가 그 사람으로 인하여 애를 많이 태웠나이다 하더라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무리를 권하여 바라바를 달라 하게 하고 예수를 죽이자 하게 하였더니

총독이 대답하여 이르되 둘 중의 누구를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이르되 바라바로소이다

빌라도가 이르되 그러면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를 내가 어떻게 하랴

그들이 다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빌라도가 이르되 어찜이냐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그들이 더욱 소리질러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하는지라

빌라도가 아무 성과도 없이 도리어 민란이 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이르되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백성이 다 대답하여 이르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 하거늘

 

이에 바라바는 저희에게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


27 이에 총독의 군병들이 예수를 데리고 관정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그에게로 모으고

28 그의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히며

29 가시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그 오른손에 들리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희롱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30 그에게 침 뱉고 갈대를 빼앗아 그의 머리를 치더라

31 희롱을 다한 후 홍포를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혀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



성경 길라잡이 

 

한 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총독이 크게 놀라워하더라(14절):

예수님께서는 대제사장들과 장로들 앞에서처럼 빌라도 앞에서도 자신을 변호하지 않으신다.

살인죄로 고발당했는데도 자신을 변호하지 않는 것이 빌라도에게는 의아하게 여겨졌던 것으로 보인다.


그 때에 바라바라 하는 유명한 죄수가 있는데(16절):

‘살인과 강도요 유대 큰 소요를 일으킨 사람’으로 묘사되는 것(막 15:7, 눅 23:18~9)으로 기록된 그는,

로마 제국을 상대로 무장 독립투쟁을 벌였던 열심당의 핵심 일원으로 보인다.

그러한 바라바와 예수님이 교환되는 것에서

유대인들이 바라던 하나님 나라와 예수님께서 통치하시는 진정한 하나님 나라가 또한 대조된다.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22절): 십가가형은 로마에 반역죄를 범한 사람을 죽이는 로마식 사형이었다. 십자가형은 주로 노예나 로마 시민이 아닌 사람들만 처형할 때 사용하였다.

때문에 유대인들은 민족의 독립 운동가들을 죽이는 로마식 사형 제도를 좋아하지 않았다.

결국 예수님의 십자가형 선고와 관련한 모든 불법적인 책임들을 로마인들에게 넘기려는

종교지도자들의 의중을 알 수 있다.


민란(24절):

원뜻은 ‘소란’으로, 소요 사태나 폭동을 일컫는다.

당시 총독의 정치 생명을 위협하는 가장 큰 위험 요소는 식민지 백성의 폭동이었다.


손을 씻으며(24절):

물로 손을 씻음으로 자신의 무죄함을 표현하는 것은 유대인들뿐만 아니라 그리스-로마인들의 관습이었다.

그러나 그는 유대인들의 요청을 받아들임으로써 예수님의 피에 대한 책임을 면할 수 없게 되었다.

이에 바라바는 그들에게 놓아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26절):

바라바는 풀려나고, 예수님께서는 채찍질을 당하신다.

로마의 채찍질은 그 자체로 엄청나게 가혹한 형벌이다.

당시 사형수는 십자가형을 받기 전에 먼저 기둥에 묶인 채로 채찍질을 당해야 했다.

이 채찍은 가죽 끈 끝에 납 조각을 달아 채찍질 할 때 피부가 찢겨지는 고통을 주었고,

십자가를 지기도 전에 채찍을 많이 맞아서 죽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그것만으로도 예수님께서는 거의 죽음에 이르셨을 것이다.


홍포(28절): 아마도 로마 군인들이 사용하던 망토일 것으로 추정되며

예수님을 희롱하기 위해 왕이 입는 옷을 흉내 내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바라바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넘겨지셨습니다 2015년 6월 24일 수요일

 

유대 지도자들의 거짓 증거 앞에서 예수님은 침묵하십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명백함을 증명하려는 다른 사람들과 다른 예수님을 보고

빌라도는 크게 놀랍니다.

그리고 그는 백성들의 여론을 이용해서 유대 지도자들을 견제하려고(24절을 참조하자면 성과를 얻기 위해)

특별사면을 제안합니다. 하지만 예상과 다르게 백성들은 바라바를 사면하라고 빌라도를 압박합니다.

 

로마 법정에서도 예수님의 혐의는 입증되지 않았지만,

빌라도의 정치적 선택 때문에 예수님께서 바라바 대신 십자가에 넘겨집니다.

명백한 죄인이었던 바라바예수님 덕분에 사면을 받습니다.

 

우리의 죄 때문에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셨고,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으로 우리의 죄책이 사라졌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로 구원을 얻었는데도, 일상에서 우리의 십자가는 피하고 싶어 합니다.

죄에서 자유로워졌으니, 그저 마음껏 우리의 계획과 바라는 것을 이루면서 자유롭게 살기를 기대합니다.

바른 신앙으로 바른 생활을 확립하기보다는, 세상 풍조에 따라 잘 사는 것(well-being)을 소망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삶에 어떻게 자유가 주어졌습니까?

예수님께서 우리 대신 십자가에 못박히셔서, 우리가 죄와 사망의 법에서 바라바처럼 풀려났습니다.

그렇기에 이 세상을 살아가는 신자의 삶은 예수님의 삶을 대신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다는 바울 사도의 고백처럼,

우리들도 우리 안에 살아계신 그리스도를 신뢰하는 믿음으로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구체적인 삶의 기로에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을 따라 살아갑시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신 예수님 2015년 6월 24일 수요일

 

유대 지도자들은 공회에서 예수님을 신성모독을 한 죄인으로 정죄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빌라도에게 예수님을 고발한 죄목은 ‘유대인의 왕’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신성모독죄’로는 사형을 받게 할 수 없음을 알고, ‘반역죄’로 둔갑시켜 고발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빌라도는 예수님을 심문합니다.

하지만 그는 예수님에게서 죄가 없음을 발견하고, 그를 놓아주려고 합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끝까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을 것을 요청하자,

그는 민란이 일어날 것을 두려워하여 결국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넘겨주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피조세계의 왕이십니다. 그리고 모든 피조물은 왕이신 예수님의 다스림을 기뻐합니다.

하지만 유독 죄인인 인간만은 이를 거부합니다. 아니 거부하는 것을 넘어 그를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리하여 죄인인 인간은 그 행위대로 심판을 받아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사랑이신 하나님께서는 이를 보지 못하시고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며 섬기는 사람들을 구원해주십니다.

나아가 그들을 통해 예수님께서 통치하시는 나라를 확장해가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한편,

그의 나라와 의의 확장을 위해 수고해야 하는 것입니다.


빌라도의 실책 2017년 4월 13일 목요일 (마태 27:15~31)


로마의 총독인 빌라도는 예수님을 심문하는 과정에서

이 사람은 사형에 처해질 만한 잘못이 없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럼에도 유대 지도자들을 비롯한 유대인들의 요구가 워낙 거셌기 때문에 그는 타협을 모색합니다.

결국 빌라도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게 넘겨줍니다.

그러고는 자기 손을 씻으며 이 판결에 대해 자기는 무죄하다고 그 책임을 유대인들에게 전가합니다.


빌라도는 그것으로 끝났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십자가형을 선고한 그의 이름과 행적은 2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 우리에게 전해져 오고 있으며,

그 누구도 빌라도가 예수님의 죽음과 무관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잊힐 것이라고 여기고 오늘의 처신을 가볍게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고 마지막 날에 심판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빌라도의 재판 2017년 4월 13일 목요일


빌라도는 예수님께서 죄가 없으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때문에 종교 지도자들의 시기로부터 그 누명을 풀어주려고 하였습니다.

빌라도가 생각한 방법은 유대 백성들에게 전례를 따라 바라바와 예수님 중 사면 대상자를 정하게 한 것입니다. 그러나 종교 지도자들은 백성들을 선동하여 바라바를 풀어주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일 것을 요청합니다.

모든 유대인들이 그토록 싫어하는 로마식 사형대에 동족인 예수님을 죽이려 한 것입니다.

결국 유대 백성들의 민란으로 자신의 정치적 생명을 잃을 것이 두려웠던 빌라도는,

무죄한 예수님께 십자가형을 선고합니다.

그리고 그 모든 핏값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그 모든 자손들에게로 돌립니다.


고난주간, 우리를 위해 흘리신 예수님의 그 핏값은 과연 누구의 책임인지 다시 생각해봅니다.


묵상질문

 

예수님 때문에 갑자기 풀려난 바라바는 어떤 감정이었을까요?

교회에서 행해지는 ‘정치적 선택’으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빌라도의 무죄 주장에도 불구하고 사도신경에서 빌라도에게 고난을 당하셨다고 고백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나는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며 섬기고 있나요? 이의 구체적인 증거들은 무엇인가요?

 

부활하신 예수님이 디베랴 바닷가에서 밤새도록 고기를 잡지 못한 제자들에게 배 오른편에 그물을 던지라고 말씀합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을 때, 잡았던 물고기의 수는 153마리였습니다 (요21:1-11). 하나님의 생명의 양식인 말씀에 순종할 때 우리는 풍성한 153의 열매를 얻게될 것입니다.

1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무엇을 가르치시거나 명하시나요?

5 오늘 본문과 함께 전도서 12장 14절 말씀,사무엘하 1장 말씀을 묵상해봅시다.

3 우리 교회는 오늘 말씀에 어떻게 순종할 수 있을까요? 우리 교회는 오늘 말씀에 어떻게 순종할 수 있을까요?

     

기도

 

+ 우리의 죄를 대속해주신 주님의 은혜를 날마다 기억하고 감사하는 삶을 살게 해주십시오.
+ 십자가의 은혜로 살아가는 매일의 삶에서 주님의 뜻을 품고 행하게 해주십시오.

 

 

 전도 12:14, 삼하 1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