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태]

[93]가룟 유다가 후회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다 (마태 27:1~10) (CBS)

colorprom 2015. 6. 23. 16:56

가룟 유다가 후회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다 2015년 6월 23일 화요일


마태복음 27:1~27:10

 

1 새벽에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함께 의논하고

2 결박하여 끌고 가서 총독 빌라도에게 넘겨 주니라

3 그 때에 예수를 판 유다가 그의 정죄됨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그 은 삼십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갖다 주며

4 이르되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 하니 그들이 이르되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냐 네가 당하라 하거늘

5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

6 대제사장들이 그 은을 거두며 이르되 이것은 핏값이라 성전고에 넣어 둠이 옳지 않다 하고

7 의논한 후 이것으로 토기장이의 밭을 사서 나그네의 묘지를 삼았으니

8 그러므로 오늘날까지 그 밭을 피밭이라 일컫느니라


9 이에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나니

일렀으되 그들이 그 가격 매겨진 자 곧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가격 매긴 자의 가격 곧 은 삼십을 가지고

10 토기장이의 밭 값으로 주었으니 이는 주께서 내게 명하신 바와 같으니라 하였더라


11 예수께서 총독 앞에 섰으매 총독이 물어 이르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이 옳도다 하시고

12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고발을 당하되 아무 대답도 아니하시는지라

13 이에 빌라도가 이르되 그들이 너를 쳐서 얼마나 많은 것으로 증언하는지 듣지 못하느냐 하되

14 한 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총독이 크게 놀라워하더라


 

성경 길라잡이

 

새벽에(1절):

산헤드린 공회는 밤에는 합법적인 집회를 열 수 없었다.

그래서 동이 트자 그들은 공식적인 사형 판결을 내리기 위해 특별한 모임을 가졌다.


빌라도에 넘겨 주니라(2절):

유대 관원들이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데려가야 했던 이유는

로마 정부가 그들에게 사형권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총독 빌라도에게 넘겨 주니라(2절):

유대 사법기관인 산헤드린 공회는 사형을 의결할 수는 있지만 집행할 권한이 없었다.

사형의 집행권은 로마 정부에 있었기 때문에 공회는 빌라도 총독에게 예수님을 넘겼다.


그의 정죄됨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3절):

스스로 ‘뉘우쳤다’(메타멜레데이스)는 표현은 ‘회개하다’(메타노에인)라는 동사와는 구분된 단어로

가룟 유다가 과거의 잘못된 행동을 후회는 하지만 진실한 회개로 이어지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유다가 그의 정죄됨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3절):

그는 예수님께서 심판받으시는 것을 보고 자신의 행동을 후회한다.

'뉘우쳐'의 원 뜻은 ‘관심사를 바꾸다’이다.

이는 곧 생각을 바꾸어 후회한다는 뜻으로, 완전하고 철저한 ‘회개’와는 구분된다.

‘뉘우치다’는 ‘회개’라는 일반적인 의미로 해석될 수 있지만, 많은 학자들은 이 둘을 구분한다.


유다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돈을 반환하고 자살하지만, 그것은 참된 회개의 모습이 아니다.

회개는 불순종으로부터 돌이켜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는 것이고,

하나님께서는 결코 자살을 바라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회개는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살리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냐 네가 당하라(4절):

‘우리가 알 바가 아니다. 그대의 문제이니 그대가 알아서 하라’는 뜻이다.


성전고(6절): 하나님께 드린 헌물을 보관하는 성전 창고 혹은 성전 금고이다.

이곳에는 부정한 수단으로 마련된 돈은 보관할 수 없었다.


나그네의 묘지(7절):

타국에 거주하던 유대인들 중에 나이가 들어서 예루살렘으로 이주하거나 방문을 오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이들 가운데 가난해서 죽은 뒤에 시신 매장할 곳이 따로 없는 경우가 종종 발생했기 때문에

대제사장들이 유다가 남긴 돈으로 땅을 사서 그들을 위한 묘지로 쓰도록 했다.


이에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나니(9절):

여기서 인용된 말씀은 예레미야(렘 19장 1~13절)와 스가랴(슥 11장 11~13절)의 말씀이 조합된 것이다.

주된 내용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구원을 주도하신다는 스가랴 선지자의 말이지만,

그럼에도 마태복음은 더 익숙한 예레미야 선지자를 대표로 내세운다.

 

가룟 유다가 후회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다 2015년 6월 23일 화요일

 

예수님께서 심판받으시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예수님께서 잡혀가시는 일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유다는 자신의 행동을 뉘우칩니다.

‘뉘우치다’는 잘못을 깨닫고 가책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심한 마음의 가책을 느낀 유다는 예수님의 몸값을 성소에 던져 넣고,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습니다.

아마 그것으로 죗값을 치른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은 또다시 하나님께 크게 불순종하는 일일 뿐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역 내내 죄인들을 회복시키셨고,

지금 겪으시는 고난이야말로 모든 죄인들에게 소망을 주시기 위한 것이었는데,

예수님을 구주로 믿지 못한 유다는 회개를 통해 회복되는 길을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회개는 죄인을 구세주 앞에 서게 하여, 죄와 죄책감으로부터 건져냅니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도 죄의 문제는 빈번하게 일어나지만,

회개를 통한 회복의 과정을 목격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가 발생하면 그것은 개인의 문제로만 여겨져, 그저 맹목적으로 비판하거나

혹은 마음속에 불편함을 숨겨둔 채 덮어버리기 쉽습니다.

그러니 공동체 안에서 죄인이 회복되는 것을 보기 어렵고, 범죄가 해결되지 않고

점점 음성화되어 존재합니다.

무엇보다도 죄인이 하나님 앞에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의지하여 회개하도록 돕는 기능이 교회에 있는데도,

거의 작동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교회가 무력하게 죄를 방치하거나, 죄인이 가책에 시달리거나,

아니면 죄인이 새로운 공동체를 찾아 떠납니다.

 

내가 잘못을 저질렀을 때 우리 교회는 어떻게 나의 회개를 도와줄까요?

교회는 죄를 용서해주시고 회복시켜주시는 예수님을 머리로 하는 입니다.

 

 

유대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끌고 빌라도에게 찾아갔습니다.

이는 로마법을 빌려서 예수님을 죽이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모두 지켜본 유다는 그제야 자신이 얼마나 큰 잘못을 저질렀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그는 대제사장들에게 찾아가 자신이 무죄한 피를 팔았다고 자백합니다.

하지만 대제사장들은 이제 와서 그것이 무슨 상관이냐고 그를 돌려보냅니다.

결국 유다는 스스로 목매달아 죽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됩니다.

비록 이것이 성경의 예언에 따른 것이긴 하지만, 동시에 이는 모두 그가 스스로 선택한 결과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사함에 이르는 회개를 통하여 죄인들을 구원의 자리로 이끄십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먼저 죄인들에게 자신이 죄인인 것을 고백하게 하십니다.

그런 다음 거기서 하나님께로 돌아서는 회개의 자리로 이끄십니다.

그러면 그 때 예수님의 보혈로 그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그를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얻는 구원의 놀라운 신비입니다.

 

유다는 안타깝게도 이런 구원의 자리로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이는 그의 회개가 인간적인 뉘우침에 머물렀을 뿐,

예수님을 의지하고 죄에서 돌아서는 참된 회개가 아니었음을 뜻합니다.

 

나는 참된 회개에 근거한 구원의 은혜와 기쁨을 누리고 있나요?


유대인의 왕 예수 그리스도 2017년 4월 12일 수요일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합니다.

첫 번째는 베드로가 어린 여종의 지적에 대해, 상대방의 말뜻을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것처럼 부인합니다.

두 번째는 자신이 예수님의 제자 중 한 명이 아니라고 부인합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저주하며 예수님을 부인하는데, 여기서 저주한다는 것은 법정에서 사용하는 맹세의 표현입니다.

즉 자신의 주장이 거짓이라면 어떤 벌도 달게 받겠다는 뜻입니다.


한편 자신의 잘못을 깨달은 유다는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을 다시 찾아가 뉘우칩니다.

그러나 백성의 사죄를 위해 수고해야 할 자들이 유다를 외면함으로 제사장 본연의 역할도 더럽힙니다.


그럼에도 유대인의 왕이신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십자가 사명을 부인하지도,

나아가 백성을 구원할 메시아의 역할도 더럽히지 않으셨습니다.


묵상질문

 

- 유다의 뉘우침은 어떤 종류의 것이었을까요?

- 예수님께서 심판받으시는 것을 보고 유다는 왜 ‘스스로 뉘우쳤’을까요?

- 지금 내게 해결해야 할 죄가 있나요? 이를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을 때 개인적으로 또 공동체 안에서 어떻게 행동합니까?

 

기도

 

+ 죄를 자각했을 때 ‘뉘우침’에 머무르지 않고 진정으로 회개하는 자가 되게 해주십시오.
+ 우리가 시험에 들지 않게 해주시고, 다만 악에서 구해주십시오.


요한일서 1:9


9 빛 가운데 있다 하면서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둠에 있는 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