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태]

백성에게서 조롱당하고 외면당하는 왕 (마태 27:27~44) (CBS)

colorprom 2015. 6. 25. 13:59

백성에게서 조롱당하고 외면당하는 왕 2015년 6월 25일 목요일

마태복음 27:27~27:44

 

이에 총독의 군병들이 예수를 데리고 관정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그에게로 모으고

그의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히며 가시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그 오른손에 들리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희롱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그에게 침 뱉고 갈대를 빼앗아 그의 머리를 치더라

 

희롱을 다한 후 홍포를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혀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

나가다가 시몬이란 구레네 사람을 만나매 그에게 예수의 십자가를 억지로 지워 가게 하였더라

 

골고다 즉 해골의 곳이라는 곳에 이르러

쓸개 탄 포도주를 예수께 주어 마시게 하려 하였더니 예수께서 맛보시고 마시고자 하지 아니하시더라

 

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후에 그 옷을 제비 뽑아 나누고 거기 앉아 지키더라

그 머리 위에 이는 유대인의 왕 예수라 쓴 죄패를 붙였더라

 

이 때에 예수와 함께 강도 둘이 십자가에 못 박히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이르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며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과 함께 희롱하여 이르되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리하면 우리가 믿겠노라

그가 하나님을 신뢰하니 하나님이 원하시면 이제 그를 구원하실지라

그의 말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였도다 하며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들도 이와 같이 욕하더라

 

 

성경 길라잡이  

 

홍포(28절): 로마 군인의 망토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29절):

황제에 대한 인사인 ‘존경하는 황제 폐하’라는 표현을 조롱조로 표현한 것이다.


쓸개 탄 포도주(34절):

이는 십자가에서 처형당하는 죄수에게 고통을 덜어 주는 마취제로 제공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예수님께서 이를 마시기 거절하였다는 것은

모든 고통을 온전한 정신으로 겪으시겠다는 의사 표현으로 보인다.

그 머리 위에 이는 유대인의 왕 예수라 쓴 죄패를 붙였더라(37절):

이것은 역설이다. 불법적인 사형 집행의 현장에서 예수님을 조롱하는 글귀가,

오히려 그분의 실제 신분을 밝혀주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로마 법정에서 사형을 선고받으셨지만, 정작 죄목은 분명치 않으셨다.

그저 정치적인 이유로 죽게 되셨을 뿐이다.


강도(38절):

이는 단순한 강도가 아니라 ‘정치적 반역자, 혁명가’를 말한다. 곧, 로마에 대하여 반역죄를 지은 죄수이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며(40절):

백성들의 조롱은 그야말로 자신들의 처지를 알지 못하고 하는 말이다.

백성들을 비롯한 유대 지도자들은 십자가에 못 박히는 메시아를 상상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하나님의 계획은 죽은 자 가운데서 예수님을 일으키셔서,

그분을 주님이시며 그리스도가 되게 하시는 것이다(행 2장 36절 참조).

 

묵상과 삶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유대인의 왕, 예수님께서 자신의 백성들에게 조롱을 당하십니다.

그들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은 순간에도 백성들은 예수님을 조롱합니다.

더욱이 함께 처형을 당하는 죄수조차도 예수님을 욕합니다.

당장에라도 십자가를 내려와 조롱하고 모욕하는 백성들 앞에 보란 듯이 권능을 나타낼 수 있으시지만,

예수님께서는 묵묵히 그 길을 가셨습니다.

왕으로써 우리에게 명령하지 않으시고,

스스로 사람들에게 수치를 당하심으로써

새로운 다스림을 보여주셨습니다.

왕이 자신을 위해 백성들을 희생시키는 세상에서,

왕이 자신을 희생하여 백성들을 구원하는

새로운 질서를 만드신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섬김의 질서를 태동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나라의 백성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힘 있는 자들이 힘없는 사람들을 압제하여 풍요를 누리기 때문에,

누구나 힘을 얻기를 추구합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 힘이므로, 그래서 모두가 부자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렇게 우리 세상은 돈으로 싸우는 전쟁터를 방불케 합니다.

그러한 자본 전쟁이 일상화된 우리 사회에서는 어떤 폭력도 자본논리에 합당하다면 정당화되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힘을 포기하고 모든 사람들을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심으로써,

그렇게 힘이 지배하는 불의한 세상을 종식시키셨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우리는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 힘을 사용함으로써

오히려 풍요를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불편과 고난을 감수해서라도 힘없는 다른 사람에게 유익이 되게 살아가는 것,

그것이 십자가가 만들어낸 새로운 소망입니다.

 

 

십자가형이 확정된 예수님께서는 로마 군인들의 노리개가 되어 희롱과 멸시를 당함은 물론

십자가의 형틀을 스스로 지고 가지 못할 만큼 엄청난 채찍질을 당하였습니다.

그리고 결국 모든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발가벗겨진 채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예수님의 머리 위에는 ‘유대인의 왕’이라 쓰인 죄패가 붙었고,

이를 보고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머리를 흔들며 예수님을 욕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해보라.”고 조롱도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끝까지 십자가의 모든 고통을 담당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분은 십자가를 져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으셨습니다.

그런데도 십자가를 지시고 모든 고통을 친히 담당하셨습니다.

이는 우리를 그만큼 사랑하셨고, 또 그것만이 우리를 구원하는 유일한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사람들에게는 이 십자가가 미련해 보이는 조롱과 멸시, 그리고 약함의 상징이지만,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제자들에게는 무엇보다도 자랑스럽고 강한 하나님의 능력입니다(고전 1:18).

오늘도 십자가에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예수님의 참 사랑과 구원의 길을 걸을 수 있기 바랍니다.

 

묵상질문

 

- 예수님께서 수치와 희롱을 받으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멸시와 조롱, 고통을 그대로 참으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 오늘날 세상이 교회를 조롱하고 모욕하는 내용은 무엇입니까?

- 십자가는 내게 어떤 의미인가요? 그것은 내게 어떤 삶을 요구하나요?

 

기도

 

+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수치와 모욕을 참으신 예수님의 은혜를 기억하게 해주십시오.
+ 약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위해 자발적으로 불편과 고난을 감당하며 살아가게 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