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야고보서]

[4]살아있는 믿음은 실천이 있습니다 (약 2:14~26) (CBS)

colorprom 2015. 2. 21. 15:48

살아있는 믿음은 실천이 있습니다 2015년 2월 21일 토요일


야고보서 2:14~2:26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하리라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을 알고자 하느냐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이에 성경에 이른 바 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이루어졌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

 

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들을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성경 길라잡이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19절):

귀신들은 본래 천사들이었으나 지위를 지키지 않은 죄로 벌을 받아 하늘에서 쫓겨났고,

현재 그들은 흑암에 갇혀 활동을 제재받고 있다(벧후 2장 4절, 유 1장 6절).

교리를 알고 믿는 신앙이 있더라도 그것이 관념적 확신으로만 남아있는 한, 그것은 구원하는 믿음이 아니다(박윤선).


허탄한 사람아(20절): 공허한 사람, 곧 어리석은 사람을 뜻한다.

믿음을 자랑하나 아무런 열매도, 행동도 없는 사람을 지칭한다.


사람이 행함으로……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24절):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바울의 가르침과 상반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바울과 야고보는 동일하게 구원의 기초는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은 은혜이며,

행위구원의 기초가 아니라 구원의 필연적인 결과라는데 동의한다.(엡 2장 10절, ESV 스터디 바이블 참조)

 

살아있는 믿음은 실천이 있습니다 2015년 2월 21일 토요일

 

야고보서는 실천하지 않는 믿음은 그 자체로 죽은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명령을 순종하기를 거부하거나, 단지 관념적으로나 지적으로만 동의하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실천우리의 믿음이 살아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야고보서의 가르침은

율법의 행위가 구원의 기초가 아니라 오직 믿음만이 구원을 이룬다는 바울서신과 전혀 차이가 없습니다.

예배나 기도와 같은 신앙의 형식만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삶 속에서 말씀대로 살아가는 실천이 없다면,

그것 또한 온전한 믿음이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그분의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않는 자는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어리석은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 7장 26절). 허탄한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는 세계의 그 어떤 교회보다도 ‘신앙의 열심’이 있습니다.

해가 뜨기도 전에 새벽기도부터 시작해서, 각종 모임과 예배들이 차고 넘칩니다.

그리고 성도들도 열심히 교회를 섬기고 봉사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우리 사회 속에서 교회의 위상은 어떻습니까?

교회가 사회로부터 어떤 존재로 인식되고 있습니까?

신앙의 형식만이 아니라, 삶 속에서 말씀대로 살아가는 균형 있는 신앙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자면, 지금 당장 우리에게 재정적인 여유가 없어 가난한 자들을 도울 수 없다면,

우리의 소비습관을 바꾸어서 이웃들과 나눌 재정의 여유를 만들어내는 적극적인 실천이 필요합니다.

가난한 이웃들에게 불쌍한 마음만 가지고 있는 것은 아무런 힘도 없는 죽은 긍휼에 불과합니다.

 

내용

 

오늘의 말씀은 행함이 있는 믿음을 바른 믿음이라고 설명합니다.

믿는다고 스스로 자각하고 고백하는 것까지가 믿음이 아니라, 행동이 포함되어있어야 믿음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15~16절)."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사람에게 굶주린 사람이 도움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믿음의 사람이 말로만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면서 아무 것도 해주지 않았습니다.

도대체 어쩌란 말입니까? 평안히 가게 해주지도, 덥게 해주지도, 배부르게 해주지도 않는다면 말입니다.

야고보서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고까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행함으로 믿음을 입증한 아브라함을 의롭다 칭하시고 하나님의 벗으로 세워주셨습니다.

반면에 행함이 없으면 귀신들의 믿음과 다를 바가 없다고 경고하십니다(19~20절).


온전한 믿음에는 반드시 행위가 따릅니다.

행함이 뒤따르는 온전한 믿음의 사람이 되기바랍니다.

"허탄한 사람" 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20절).

 

더 잘 믿어야, 제대로 믿어야 2016년 7월 14일 목요일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분의 말씀을 진리로 믿고 그분의 뜻을 따라 산다는 것을 '통합적'으로 일컫습니다. 믿음 속에 행함(행동)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서는 '믿음 따로, 행함 따로'일 수가 없습니다.

야고보서는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라고 말합니다.(약2:14)

이 구절은 행함을 강조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렇다 하여 믿음을 제쳐두고 행함에 집중하라는 명령은 아닙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헛것"(약2:20)이라고 강조하는 말씀 또한,

믿음은 이제 되었으니, '행하는 것만 하면 된다'는 말씀으로 해석하면 안 됩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는 말씀도 그렇습니다.(약2:17)

행동을 해서 죽은 믿음을 되살려라,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행함이 없다면 그 믿음은 이미 믿음이 아니니 죽어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뜻입니다.


요컨대 행함을 강조하는 야고보서의 말씀들은 ‘더 잘 믿으라’는 권면의 말씀에 다름아닙니다.

왜냐면 제대로 믿으면 그 사람은 행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장가도, 부흥가도를 쉼없이 달려온 한국교회가

'말만 하고 행함이 없어 위기에 처했다'며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행동'과 '실천'을 당면한 위기의 타개책으로 내놓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위기의 때일수록 더 잘 믿고 더 제대로 믿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제대로 믿으면 행함이 나타나지 않을 리 없으니까요.


온전한 믿음 (2018년 9월 14일 금요일)


한 단어의 의미가 상당히 복합적인 경우가 제법 있습니다. '

믿음'이라는 말이 그렇습니다.

믿음이 사람의 마음을 구성하는 세 가지 요소 즉 지성, 감성, 의지 중 어느 것을 지칭하느냐에 따라,

같은 단어라도 의미가 서로 다릅니다.


"2 더하기 2는 4이다"라는 지식은 믿음과 상관없는 것 같지만, 그 바탕에도 믿음이 있습니다.
지성적 믿음입니다.

전우를 믿는다는 것은 전우를 신뢰한다는 것이며 감성적 믿음에 속합니다.

의지적 믿음의 대표적인 것은 구약성경에서 믿음을 뜻하는 의미로 쓰인 단어 '에무나'입니다.(합2:4)

꾸준한 행동과 연관된 믿음이기 때문에

어떤 일을 이루려는 의지적 믿음 또는 잠재적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세 가지 요소는 서로 구별될 수 있어도 분리될 수는 없습니다.

22절 말씀처럼 모든 요소가 함께해야 온전합니다.

온전한 믿음은 바로 그러합니다.

영적 진리에 대한 바른 지식이 없이 행하는 의지적 믿음은 주님의 뜻을 거역하는 결과에 이를 수 있습니다.

주님을 사랑하거나 신뢰하지 못하고 지적인 수준에 그치는 믿음은 컴퓨터에 저장된 지식 이상이 못 됩니다.

바른 지식과 뜨거운 열정은 있는데 주님이 원하시는 것을 실천하려는 의지가 없는 믿음은 비정상적입니다.


지금 나 자신에게 어떤 믿음의 요소가 부족한지 늘 살피고 끊임없이 보완합시다.
그렇게 하여, 온전한 믿음을 소유합시다.


+ 믿음이 머리에 머물지 않고 가슴으로 내려오고 손과 발에도 이어지게 하소서. 아멘.


묵상질문

 

- 신앙의 형식’와 ‘신앙의 실천’을 어떻게 구별해볼 수 있을까요?

 

기도

 

+ 가난한 자들과 사회적 약자들을 보호해주시고, 내가 하나님의 도구로 그들을 위해 쓰이게 해주십시오.

 

+ 입으로만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실천으로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가게 하소서. 아멘.


하나님, 제대로 믿게 하소서. 제대로 믿어서, 올바로 행하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