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얼중얼...]

'저 구름 흘러가는 곳'

colorprom 2014. 10. 10. 17:37

2014년 10월 10일, 금요일

 

버스에 올라타며 버스카드를 찍다가 '옴마나?' 했다.

아이고...이 멜로디는...분명 '저 구름 흘러가는 곳'이었다.

바이올린 멜로디의 ' 저 구름 흘러가는 곳'이 버스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의 모교 진명여고는 합창제의 전통이 있었다.

대입 입시를 코 앞에 둔 고 3에게도 예외가 없었다.

예외가 없는 정도가 아니라 자존심이 걸린 일이었다.

피아노가 있는 음악실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도 치열했다.

 

베토벤의 '월광'이 있다면 우리에게는 어스름 어둠이 내린 음악실에서의 '저 구를 흘러가는 곳'이 있었다.

 

인문계와 예체능계 모두 섞여있던 잡탕반, 우리 반.

덕분에 몇 명이 성악과로 갔고, 그들이 졸업연주회를 할 때면 여지없이 그 노래가 곡목에 끼여있었다.

그 때마다  우리끼리만 아는 그 뿌듯함이 온 몸에 찌리릿~흘렀다.

 

지휘를 하던 k는 바로 얼마 전, 장모님이 되었다.

반주를 하던 L은 몇 년 전에 남편을 잃었다.

지방에 사는 친구도 있고, 공무원이 된 친구도 있고...

 

아침 버스의 바이얼린 멜로디덕분에 조금 전에 담임선생님 사모님과 오랜 통화를 했다.

그 노래를 지정하셨던 담임선생님은 우리 엄마와 동갑, 닭띠, 82세 되셨고,

얌전하신 사모님은 허리, 다리가 불편하셔서 선생님 걱정이 많으셨다.

 

- 사모님, 이상하리만치 선생님과 우리 아버지가 닮으셔서요, 사모님도 우리 엄마와 비슷하실 거라고 생각했어요.  우리 엄마 같은 분이시니 우리 선생님을 모시고 사셨겠지...하구요.

선생님은 우리 엄마랑도 동갑이시고, 장남으로서 동생들 돌보시느라 힘드셨고, 외모도 빼빼꼬장하시고...*^^*

얼마나 힘드셨으면 아이를 안낳겠다고 결심하셨을까...싶었어요.

그냥 선생님같은 어른이 계셔서 '선생님'이라고 부를 수 있는게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었어요...

선생님도 사랑을 겉으로 표현하는 분이 아니시잖아요? 

손녀딸들 때문에 사모님이 힘들다는 식으로 사랑을 표현하시더라구요...

한번 식사라도 함께 하시면 참 좋을 텐데요...주소라도 알려주시면 좋을텐데요...

 

전화만으로도, 이런 이야기 하는 것 만으로도 고맙다고 하셨다.  *^^*

 

나이를 먹어 좋은 일들 중 아줌마 수다도 있다.

여자로서, 아줌마로서...할머니로서!!!  ㅎ~

 

- 오늘은 선생님하고 얘기 안할겁니다.  어제 엄마아버지를 뵙고 왔더니 더 선생님 생각이 나더라구요.

정작 선생님하고야 할 이야기가 뭐 있나요?  사모님하고가 더 낫지요~

 

마침 선생님 외출하셔서 마음놓고 수다 삼매경~이었다.

그렇지않았으면 벌써 바꿔주셨을테고.

 

고등학교 친구들...우리에게 그 순간이 있구나.  그날의 그 감동, 그 밤이 있었구나. 

얼굴도 안보이던 그  음악실의 그 날이 있었구나.....

(이러저런 이유로 안 만나던 친구들 생각에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우리 환갑 지나면 땅바닥 지우고 다음 날 놀이를 다시 시작하듯, 다 지우고 다시 만나자.  그냥 그 애들로... )

 

 

남편과 시어머니, 시누이들 모두 시아버지 성묘갔습니다.

일한답시고 혼자 나와있는데, 엉뚱하게 옛날 생각에 빠졌습니다.

사실은 약간의 불안감이 있었을겁니다.

엄마와 동갑이신 선생님...별 일은 없으신가 알고 싶었던 거겠지요.

일단 잘 지내시는 것으로 안심!!!  ㅎ~

사모님과 수다를 끝내고 일기를 쓰다가 보니 친구들 생각에 가슴이 촉촉해집니다.

애써 피하고 싶었던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환갑 이후~정말 다 지우고 다시 시작하면 좋겠습니다.  다 없던 일로 하고!!!

(나도 그럴께, 너희도 그러자!!!  그냥 어린 시절에서 만난 것 처럼!!  그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