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 사랑의 노동과 부활의 소망 2013년 12월 19일 목요일
데살로니가전서 4:9~4:18
9 형제 사랑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너희들 자신이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아 서로 사랑함이라
10 너희가 온 마게도냐 모든 형제에 대하여 과연 이것을 행하도다 형제들아 권하노니 더욱 그렇게 행하고
11 또 너희에게 명한 것 같이 조용히 자기 일을 하고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
12 이는 외인에 대하여 단정히 행하고 또한 아무 궁핍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13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14 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15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께서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코 앞서지 못하리라
16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17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18 그러므로 이러한 말로 서로 위로하라
성경 길라잡이
또 너희에게 명한 것 같이……아무 궁핍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11, 12절):
형제 사랑과 일, 노동이 함께 있는 것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물론 노동 자체를 형제 사랑이라 보는 것이 아니라,
노동을 통해 자기 생계를 유지하는 것이 형제 사랑의 토대가 됨을 말하는 것이다.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13절):
여기서 ‘자는 자’는 곧 ‘죽은 자’에 대한 완곡한 표현이다.
죽은 자들의 부활에 대한 소망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독특하게 하는 커다란 초석이 된다.
그러므로 이러한 말로 서로 위로하라(18절):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바울의 관심은 그때를 아는 것에 있지 않았다.
그보다는 재림과 함께 일어날 일들로 현재의 삶이 위로를 받을 거라는 사실이었다.
형제 사랑의 노동과 부활의 소망 2013년 12월 19일 목요일
데살로니가교회에 대한 바울의 권면은 형제 사랑과 죽은 자들에 관한 것으로 나아갑니다.
형제 사랑은 데살로니가교회가 이미 충분히 행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때문에 바울은 이 일에 보다 힘쓸 것과, 성도 자신의 생계유지를 위해 노동할 것만 당부하고 맙니다.
한편, 죽은 자들에 관해서 바울은, 주님의 재림 때에 그들이 먼저 부활하고,
그 다음 살아있는 사람들이 주님 앞에 서서 항상 주님과 함께 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고난 가운데 있는 성도들에게 큰 위로가 되었을 것입니다.
노동은 생계유지는 물론 형제 사랑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그런 만큼 노동하지 않으려는 것은 형제 사랑을 포기하는 것이요,
노동의 기회를 박탈하는 것은 형제 사랑을 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과 일반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와 반대의 관점에서 형제 사랑이 빠진 노동은 우리에게 합당한 노동이 될 수 없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여하튼 이 두 가지 모두가 오늘날 우리 사회에 팽배하고 있습니다.
곧 일확천금과 불로소득에 대한 환상, 실업의 공포, 그리고
피로사회가 보여주는 성취지향적인 노동 등과 같은 것들입니다.
때문에 이런 상황에서 교회는
형제 사랑과 관련해서라도 고전적인 노동 개념을 새롭게 성경적으로 정리할 뿐만 아니라,
이것이 개인적으로, 나아가 구조적으로 실천될 수 있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노력 없이 형제 사랑 운운하는 것은 어쩌면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격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한편 재림과 죽은 자들의 부활에 대한 소망을 회복하는 일도
오늘날 세상이 주는 풍요로움과 화려함에 취한 교회와 성도들에게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재림과 부활의 소망이 우리로 하여금 눈에 보이는 풍요의 실체를 바르게 직시하게 할 뿐 아니라,
그 이면에 있는 빈곤을 깨닫고 현재의 삶에 책임 있게 반응하도록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서로 위로하라 (2019년 2월 22일 금요일)
“이러한 말로 서로 위로하라”는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지금 죽음의 불안에 사로잡혀있습니다.
기독교는 역사의 시작인 창조와 마지막인 종말, 그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다고 믿는
직선적 역사관을 갖고 있습니다.
바울은 그 역사관에 더하여
마지막 종말의 때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광 속에 오신다는 약속의 말씀을 알고 믿으며
그러한 말로 서로 위로하라고 말하는 것입니다.(살전4:18)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께서 영원한 생명으로 나를 안아주시리라는 종말에 대한 기대와 소망을 갖고 있어야
우리 인생은 참된 위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종말에 대한 소망을 갖고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위로의 형태가 다를 것입니다.
"소망 없는 다른 이들"이란 누구를 가리키는 것일까요?(살전4:13)
예수님도 모르고 부활과 생명도 알지 못하고 죽음 앞에서 두려워 떨며,
죽으면 인생이 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종말에 대한 기대와 소망을 가진 이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물론 죽음 앞에 슬프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는 말은,(살전4:13)
슬퍼하지도 말고 울지도 말라는 뜻이 아니라, 영원한 슬픔으로 탄식하되 그것에 억눌리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슬프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영원한 세계가 있음을 알고 다시 위로받고 소망을 가지라는 것이지요.
우리가 소망을 품어야 할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기때문입니다.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실존적 불안이고 슬픔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살리시고 회복시키실 것입니다.
+ 주님, 죽음 앞에서 슬퍼하는 이들을 위로할 수 있게 하소서. 아멘.
묵상질문
- 노동과 형제 사랑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형제 사랑의 차원에서 노동을 다시 보도록 합시다.
- 재림과 죽은 자들의 부활에 대한 소망은 지금 우리의 삶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까요? |
기도
- 형제 사랑의 차원에서 노동 개념을 새로 정립함으로 하나님나라에 합당한 노동을 실현해갈 수 있게 하시고, 부활의 소망에 근거해 현재의 삶에 책임 있게 반응할 수 있도록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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