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린도전서]

[19]복음에 합당하게 사십시오/고전9:19~27/(CBS)

colorprom 2013. 11. 16. 16:02

복음에 합당하게 사십시오 2013년 11월 15일 금요일


고린도전서 9:19~27

 

19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20 유대인들에게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 있는 자 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21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에 있는 자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22 약한 자들에게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


23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


24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25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26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

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성경 길라잡이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27절):

“나는 내가 의도한 목적에 맞도록 매일의 삶에서 나 자신을 거칠게 다룹니다.”라는 뜻이다.

그리스의 종들이 그렇듯, 일체의 호사스러움도 없이 힘겨움을 견뎌야 한다는 생각이 담겨있다.

 

복음에 합당하게 사십시오 2013년 11월 15일 금요일

 

우리는 복음을 위해

자신에게는 강력한 절제를 가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따뜻한 배려를 베푸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것은 복음을 위한 유연함과 치열함을 동시에 갖추는 삶입니다.

특별히 약한 사람들을 위한 배려와 섬김이 복음에 합당한 삶임을 기억합시다.

오직 복음을 위해 바울은 자유인이나 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 있는 자이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되었습니다.

약한 자들에게는 약한 자와 같이 되었습니다.

모든 것은 복음을 위해서였습니다.

 

과연 나는 복음을 위하여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을까요?

 

한 사람을 얻기 위해 어떤 성격과 형편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을까요?

약한 사람들을 위한 세심한 주의와 배려를 통해 그들과 어느 정도의 유대를 형성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의 성육신의 삶을 나는 과연 어느 정도 살아내고 있는 것일까요?


바울은 그 구원의 완성을 위해 철저한 절제훈련을 감당했습니다.

 

나는 복음이 더 신실하고 효과적으로 전파되도록 하기 위해

얼마나 두렵고 떨림으로 절제하며, 나 자신을 훈련시켜가고 있을까요?

나의 모든 삶은 복음을 위해서라고 과연 말할 수 있을까요?

 

오늘 나는 많은 질문을 하게 됩니다.

바라기는

나 자신이 그저 그럴듯한 말로만 복음을 말하는 사람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는 하루가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복음에 참여하고자 2016년 9월 27일 화요일    


오늘본문에서 사도 바울'영혼구원'을 위해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되고자 합니다.(고전9:19)

자신의 '자유'보다 한 영혼을 얻는 것을 더 귀하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떠합니까?

내 자유가 제일 중요하고,

혹시 내 자유를 위하여 다른 모든 것들과 사람들을 희생시킬지라도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또,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율법 안에서 사는 사람이지만 율법 없이 사는 사람들을 얻으려고

율법 없이 사는 사람같이" 되는 것을 감수합니다.(고전9:21)

그 이유 또한 더 많은 사람들을 얻고자 함입니다.


마지막으로 사도 바울은 자신이 지금처럼 행동하는 이유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고 밝힙니다.(고전9:23)


우리가 알다시피 사도 바울은 성공이 보장된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것들을 모두 배설물과 같이 버렸습니다.

사도 바울은 인간적 성공이나 세속의 영광을 바라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복음에 참여할 수 있기를 원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위하여 시도하는 모든 것은, 그 자신에게 주어지는 구원에 참여하고자 함이었습니다.

그는 복음을 전함에 있어 피선교자들에게 자신을 맞추려고 노력하는 선교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 또한 구원에 참여하기를 간절히 원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복음전파는 사도 바울에게 있어 '직업'도 아니고, '봉사활동'도 아니고, 구원을 향한 사역 그 자체였습니다.

 

(2019년 10월 1일 화요일)


구약의 율법에 '안식년'이란 게 있습니다.

7년째 되는 해에 땅을 쉬게 하는 법입니다.

쉼을 통한 회복이 목적입니다.

땅도 그런데 사람은요?


같은 유대인인데, 불가피한 사정으로 종이 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이런 경우를 대비해 종으로 지내는 기간을 제한했습니다.

역시 7년째 되는 해, 본인의 의지에 따라 자유인이 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스스로 자유를 포기하고 종으로 남을 수도 있습니다.

그 이유가 의미있습니다.

"상전과 내 처자를 사랑하니."(출21:5)


사랑이 종의 위치를 스스로 유지할 수 있게 합니다.
바울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상전과 처자를 사랑하여 스스로 자유를 포기하고 종이 된 사람입니다.

바울에게 상전이란 누구며, 처자란 또 누구였을까요?


은혜주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상전이시고, 은혜 기다리는 모든 사람들이 처자 아니었을까요?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19)


본래 사랑이 이런 겁니다.

사랑에는 이 같은 '역설'이 일어납니다. 사랑은 '모순'을 용납합니다.
무엇이 바울을 이런 사랑의 사람으로 만들었을까요?


두말하면 잔소리죠.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바울의 사랑을 만들었습니다.

그럼 예수님의 사랑은 어떠했을까요? 사도 바울 저리가라입니다.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2:8)

종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사형수까지 낮아지셨습니다!


+ 주님, 자기필요만 채우는 믿음에서 주님을 닮아가는 믿음 되게 하소서. 아멘.



묵상질문

 

- 바울은 복음을 위하여 어떤 삶의 자리에 섰다고 말합니까?

- 바울은 자신의 삶이 복음에 일치되도록 절제와 훈련을 감당해왔다는 사실을

무엇에 비유하며 말합니까(24, 26절)?

 

기도

 

- 복음을 위해 다른 사람의 삶을 함께 할 수 있는 용기를 갖도록 도와주십시오.
- 철저한 절제와 치열한 훈련을 통해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아낼 수 있도록 힘을 주십시오.


- 우리도 사도 바울처럼 복음에 참여하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파하는 데 더 열심을 내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