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도서]

[6] 개인과 공동체, 어울림의 가능성을 성찰해야 합니다 (전 4:1~16) (CBS)

colorprom 2013. 10. 16. 10:30

개인과 공동체, 어울림의 가능성을 성찰해야 합니다 2013년 10월 10일, 목요일


전도서 4:1~16 


1 내가 다시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학대를 살펴 보았도다

보라 학대 받는 자들의 눈물 이로다 그들에게 위로자가 없도다

그들을 학대하는 자들의 손에는 권세가 있으나 그들에게는 위로자가 없도다


2 그러므로 나는 아직 살아 있는 산 자들보다 죽은지 오랜 죽은 자들을 더 복되다 하였으며

3 이 둘보다도 아직 출생하지 아니 하여 해 아래에서 행하는 악한 일을 보지 못한 자가 더 복되다 하였노라


4 내가 또 본즉 사람이 모든 수고와 모든 재주로 말미암아 이웃에게 시기를 받으니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로다


5 우매자는 팔짱을 끼고 있으면서 자기의 몸만 축내는도다

6 두 손에 가득하고 수고하며 바람을 잡는 것보다 한 손에만 가득 하고 평온함이 더 나으니라


7 내가 또 다시 해 아래에서 헛된 것을 보았도다

8 어떤 사람은 아들도 없고 형제도 없이 홀로 있으나 그의 모든 수고에는 끝이 없도다

또 비록 그의 눈은 부요를 족하게 여기지 아니하면서 이르기를

내가 누구를 위하여는 이같이 수고하고 나를 위하여는 행복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가 하여도

이것도 헛되어 불행한 노고로다


9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10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11 또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12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13 가난하여도 지혜로운 젊은이가 늙고 둔하여 경고를 더 받을 줄 모르는 왕보다 나으니

14 그는 자기의 나라에서 가난하게 태어났을지라도 감옥에서 나와 왕이 되었음이니라


15 내가 본즉 해 아래에서 다니는 인생들이 왕의 다음 자리에 있다가

왕을 대신하여 일어난 젊은이와 함께 있고

16 그의 자리를 받는 모든 백성들이 무수하였을지라도 후에 오는 자들은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니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로다


 

성경 길라잡이

 

그들을 학대하는 자들의 손에는 권세가 있으나 그들에게는 위로자가 없도다(1절):

전도자는 정의가 상실된 공동체에서 이루어지는 학대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3장 16절에서는 “정의를 행하는 곳 거기에서도 악이 있도다”라고 지적했다.

학대하는 자들이 권세를 가지고 불의를 행하는 상황을 넘어,

학대받는 자들의 눈물을 닦아줄 위로자가 없는 상황에서 인생의 헛됨을 찾고 있다.


독재 권력이 불의를 행하는 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사회 전체가 불의에 눈 감고 있거나, 그것에 동조하는 집단적 광기의 상황이다.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9절):

전도자는 인생의 헛됨에 대해 지적을 하는 중에도 보다 나은 삶의 가능성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개인보다는 공동체로서의 삶이 헛된 인생 가운데서도 그나마 유익을 찾을 수 있다고 밝힌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전도자는 인생의 무상함을 강조하는 것 같으나

그 이면에서는 의미 있는 삶의 가능성을 찾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인생에 대한 진단과 처방을 구분하며 성찰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묵상과 삶

 

전도자는 해 아래에서의 인생이 헛된 이유를 고발하듯 밝혀줍니다.

인간은 과연 어떠합니까? 학대하되 위로하지 않습니다.

온갖 수고로 성취를 얻은 이후는 경쟁과 시기로 점철됩니다. 고독과 고통 속에서 허덕입니다.

출세하고 권력을 가지지만, 한때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런 중에도 전도자는 상대적으로 더 나은 삶의 가능성까지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인생에 대한 진단을 글로 표현한 것을 넘어, 행간에서 처방을 읽을 수 있는 까닭입니다.

서로 위로하고, 인정하고, 함께 어울리고, 권력보다 지혜를 추구하며 사는 것이지요.

오늘 본문을 묵상하다 보니 최근 서점가를 뜨겁게 달아오르게 만든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사상의 일면이 떠오릅니다. 그는 몇 년 전 내놓은 <1Q84>를 통해

조지 오웰<1984년>에 나오는 ‘빅 브라더’라는 독재자와 대치되는 ‘리틀 피플’이라는 개념을 소개합니다.


이것은 개인의 결핍과 사회(공동체)의 과잉이 결합되었을 때 나타나는,

집단적으로 사고하는 대중 전체주의를 가리킵니다. 집단적 광기입니다.

우리 시대를 휩쓸고 있는 억압과 학대, 재난과 폐허, 경쟁과 소외의 현상은

개인과 집단, 고독과 유대가 어울림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는 것이지요.


무라카미 하루키집단주의적 사고방식이 개인을 압도하는 상황의 부조리를 고발하며,

대중 전체주의를 넘어설 수 있는 가능성을 찾고자 합니다.


전도자는 해 아래에서 사는 인생의 헛됨의 몇 가지 유형을 제시합니다.


위로하는 사람이 없음으로 인해 학대 받는 자가 흘리는 눈물이, 경쟁심으로 말미암은 온갖 노력과 성취가,

자식과 형제가 없이 혼자 사는 자가 겪는 수고가, 출세와 권력 추구가 헛됨을 지적합니다.


여기서 전도자는 개인주의적 삶보다는 공동체적 삶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삶이 팍팍한 우리 시대에 공동체 담론이 넘쳐 나는 것은 분명 좋은 현상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개인을 소외시키거나 억누르는 대중 전체주의로 흐른다면,

이 또한 헛된 것이 되고 말 터입니다.


개인과 공동체의 어울림

결국 하나님나라의 가치가 잘 실현되는 것에서 비롯됨을 성찰하는 하루가 되십시오.

 

묵상질문

 

- 전도자가 본 해 아래에서의 헛된 삶의 유형은 무엇이 있습니까?

- 개인과 이웃, 혹은 공동체의 관계는 어떠해야 합니까?

 

기도

 

- 인생의 헛됨을 지적하는 전도자의 진단을 기억하며 살게 하소서.

- 개인과 사회, 자아와 집단이 잘 어울리는 삶을 디자인할 수 있는 지혜를 허락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