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대한복음교회 [基督敎大韓福音敎會]한국 개신교파 브리태니커
1935년 최태용(崔泰瑢) 목사를 중심으로 만들어졌다.
최태용은 원래 장로교의 교역자였으나, 1919년 일본에 건너가 우치무라 간조[內村鑑三]의 영향을 받고 무교회주의자가 되었으며, 김교신(金敎臣)과 더불어 현실교회에 대한 비판과 한국적 신학의 모색에 주력하였다.
1929년부터는 일본에 건너가 근대 신학을 공부하고 기성교회에 들어가려고 했으나 장로교의 박형룡(朴亨龍) 목사 등에 의하여 그노시스주의자(Gnosticist)로 지목을 받아 축출되었다.
이후 최태용은 무교회주의와도 결별하고
1935년 신앙은 "복음적이고 생명적이어야 하고, 신학은 충분히 학문적이어야 하며, 교회는 조선 사람 자신의 교회여야 한다"는 표어를 내걸고 기독교조선복음교회를 창설하여
스스로 초대 목사 겸 감독으로 취임하였다.
최태용은 1936년 YMCA회관에서 대(對)비판기독자 강연회를 개최하여 기성교회에 대해 강력히 비판하였다.
8·15해방 후 이 교단은 사회운동과 농촌계몽운동을 주도하는 한편, 최태용의 제자인 지동식(池東植)의 노력에 의해 많은 발전을 했다. 그러나 6·25전쟁 당시에는 최태용 등이 희생되는 수난을 겪기도 하였다.
이후 기독교대한복음교회는 창립 정신을 고수하면서도 다른 교단과의 관계를 밀접하게 하여 1966년에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에 가입, 에큐메니컬 정신에 부응하는 변화를 보이기도 하였다.
1977년 총회에서는 총회장 제도를 채택하고 조용술(趙容述) 목사를 총회장으로 선출하였다.
복음교회 창립 50주년인 1978년 이후에는 교세확장과 내실화를 위한 새 전략을 세워 활발한 선교활동을 펼치고 있다.
늘 남편을 '오빠'라고 부르는 집사님이 있다.
모처럼 저녁을 같이 먹자고 초대해서 같이 먹고 남편 병원으로 갔다.
남편이 출장간 줄 알고있던 터라 무척 놀랐다. ㅎ~
밥을 먹으며, 병원으로 가는 길에 모처럼 교회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무척 놀랐다.....그 이야기를 쓰려한다.
그녀는 지금 우리 교회의 무슨 총무란다. (나는 교회일은 전혀 모른다!)
그저 동네에서 아들을 우리교회의 선교 유치원에 보낸 인연으로 교인이 되어 교파니 뭐니도 몰랐었는데,
오래 있다보니 무슨 총무가 되어 전국 기독교 교회 회의에도 참석하게 되었단다.
가 보니 우리 교회의 입지가 그렇게나 초라할 수가 없더란다.
장로교파등등 큰 교파는 회비를 천만원도 넘게내고, 성공회와 구세군과 우리교회는 제일 작은 교회로 분류가 되어 46만원 좀 넘는 액수를 낸단다.
그리고 그 액수에 맞는 대우를 받는다나 뭐라나...그 정도는 웃고 넘길 수도 있겠는데,
더 기가막힌 이야기는 '믿거나 말거나'한 말인데, 우리 교회가 '이단'이라는 말도 듣는다는 것이다.
어느 목사님 아들이 '신학대'를 지원했다가 면접에서 '이단교회 다닌다'는 말을 들었다는 것이다.
물론 불합격했단다. 사실인지 아닌지... 이런 말이 있다는 것 만으로도 참 놀라왔다.
우리 이야기를 듣던 남편, '그러니 공부 좀 더 해서 연대를 가면 될거아냐!'
그 집사님 대답이 '우리 교단을 인정하는 연대신학대는 보수교단에서는 무시하는 신학대래요!
나원참...
'교파가 무슨 상관이래?' 하며 어이없어 하는 내게 남편이 덧붙인 말,
'기독교 교파가 당신 친정 전주이씨 파 보다도 더 많을걸?'...으이구...
마침 병문안 온 큰애도 한마디 거들었다.
- 신천지는 유명한데 우리교회는 아무도 몰라~!
내게 교회는 시집교회, 시집식구들 많은 교회라는 의미 외의 '교파'따위는 생각한 적도 없었다.
가끔 '순복음?'하고 물어서 '아니요, 그냥 복음교회요.'라는 말은 했었지만.
그리고 학교의 교훈 같은 표어,
1) 신앙은 복음적이고 생명적이어라.
2) 신학은 충분히 학문적이어라.
3) 교회는 조선 사람 자신의 교회이어라.
는 마치 심훈의 '상록수'와 같은 느낌을 주어 내심 자부심도 있었던 터였다.
외국 선교사의 도움을 받지않은 교회라는 것에도 가난한 양반집 같은 자부심이 일었다.
시댁식구들이 많은 교회여서 별로 정이 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부끄럽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었다.
뜨겁지는 않아도 교회의 뜨겁지않은 분위기가 내심 안심되어 학교다니듯 다녔는지도 모르겠다.
- 언니, 이건 아니지 싶어. 우리 애가 신학에 뜻을 두고 목회에 뜻을 두었다고 쳐요.
그런데 태어나면서 부터 다닌 교회가 '이단'이어서 신학대에 못간다는 말을 들었다면. 화 안나겠어요?
70년이 넘은 교회면 뭐해요? 큰 교단 교회를 다니면 회의때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작은 교단을 다니면 찌그러져 있어야 하고...대놓고 뭐라고는 않해도 조용히 넘어가요. 여기에 왜 앉아있나, 싶다니까요?!
ㅎ~스믈스믈 일어나는 연기...뭐야, 그런 일이 있단말이시???
병원 들러 출근하자마자 검색했다. 기독교 대한 복음교회....있네. 다행히도 이상하지 않게 설명되어 있네.!!
문제는 우리랑 비슷한 이름으로 '이단'으로 찍힌 교단이 있단다. 그건 또 어쩔꼬???
70년도 넘은 우리 교회...그동안 정말 뭐하셨나 묻고싶다.
독도는 우리 땅...하고 가만히 있은 우리 정부나 마찬가지 아니었겠나.
뭐, 우리는 우리지...하고 가만히 있는 사이에 세상에는 작고 힘없어 '이단'소리를 듣게 된건가?
과대광고는 아니어도 홍보는 해야했던 것인가??? 교회를? 기독교계에서도 홍보가 필요한가???
(....우리 가문의 역사가, 우리 조상이 오해받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린 후손의 마음같은...그런 마음이랄까..
밖으로의 할 일, 안으로의 할 일을 생각해야할 듯한 책임감이 스믈스믈 피어나는 느낌이다.
아, 먹고 살 일 해야하는데...교회에 끼고싶은 마음 없는데...으흠...)
기독교계...에 대한 실망스러움도 있다. 뭐야, 작은 이, 힘없는 이를 무시하지 말라 했구만...
그 아이가 '이단교회'를 다니면 오히려 뽑아서 가르쳐야하는거 아닌가?!
그냥 떨어뜨리면서 한 소리인지도 모르지? 그래도 그렇게 말하면 안되지, 신학대 교수님께서.
일반 대학도 아니고 신학대, 하나님,예수님 공부를 가르치는 학교에서...
으흠...구원은 큰 곳에서, 배부른 곳에서 나오는게 아니라고 했구만...으흠...
기독교인인 우리가 잘 살아야지, 잘~!!!
***교회도 종파 따져가며 좋은 줄을 찾아 다녀야하는감~?! ㅎㅎㅎ~~~
***우리 교단 어르신들, 생각 좀 잘해보시길~ 우리 자손들이 최소한 부끄러워하게하면 안되지않남요?
***세계인도 좋지만 우리나라, 우리교회 공부도 해야하지 않나싶다. 교회역사도 가르쳐야하지 않을까...
이러다 교회부엌에서 나와 교회도서관으로 가겠다...ㅎ~~~
***오늘 교회선배님으로부터 들은 사실은...
기독교 6개 교파가 모여 만든 KNCC에서 제일 작은 교회임에도 존재의미를 인정받아(!)
6년에 한번씩 회장을 맡는 교회랍니다. 아무래도 목소리는 좀 작겠지만...ㅎ~
'이단'이라는 말에 흥분했습니다.
새삼 선배님들께 감사한 마음이 생깁니다.
앞으로는 시댁교회를 넘어 최소한 우리나라의 교회로 마음을 넓혀야겠습니다~ㅎ~
우리교회의 또 하나의 이쁜 표어가 있습니다.
'작고 순하라!'
목소리 크고 흥분 잘하는 제게 부끄러운 표어입니다! ㅎ~
부끄럽습니다! ~꾸벅~이제 퇴근하고 병원으로 갑니다~눈이 또 옵니다. 눈길 조심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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