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족은 그리스도인이 배워할 할 삶입니다(10-13절)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이 자신의 복음 사역을 위해 보내온 헌금과 사랑에 감사합니다.
단순히 물질 때문이 아니라 물질에 담긴 빌립보 성도들의 마음과 사랑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이미 어떤 형편에서든지 자족하기를 배운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바울이 슈퍼맨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다만 그는 그리스도의 능력에 힘입어 모든 일에 자족하는 일체의 비결을 배울 수 있었을 뿐입니다.
한편 여기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말씀은
로버트 슐러의 적극적인 사고방식이나 조엘 오스틴의 긍정적 사고방식과는 다른 것입니다.
이것은 자기최면이나 사고방식의 문제가 아니라 자족하는 삶의 양식의 문제입니다.
즉 어떤 형편에 처하든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만족하는 삶을 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물질만능주의가 지배하는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덕목입니다.
더 연약한 자에게 관심을 쏟으십시오(14-23절) 빌립보 교회는 외롭게 복음 사역을 감당하는 바울을 위해 헌금을 보내는 등
바울의 고난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14).
물론 그 후에도 여러 번 물질로 바울의 복음 사역에 동참했습니다(16).
이처럼 바울의 필요를 채워주며 바울을 위로해 주었던 교회가 빌립보 교회였습니다.
때문에 바울은 빌립보 교회를 더욱 염려하며
진심으로 교회가 영적인 성장과 축복의 열매를 맺도록 간구합니다(17).
빌립보 교회가 보내온 헌금은 바울의 필요를 채우는 것일 뿐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제물(18)이 되며,
나아가 거꾸로 그들의 필요가 풍성히 채워지는 통로가 됩니다.
나는 다른 지체, 특히 연약한 지체의 필요에 얼마만큼 민감합니까?
내가 가진 것으로 그의 필요를 채우고 있습니까?
연약한 지체의 영적인 성장과 열매를 위해 기도하는 하루가 되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