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실 매년 12월만 되면 마음이 편치않은 병이 있다. 금년에도 역시 무지 힘들었다. 그런데...12월30일 2012년의 마지막 주 설교를 들으며 깨달은 바가 있다. 나의 '비겁함'이다!!! ㅎ~ 나는 '비겁한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싫어요'소리 못하는 내게 '왜' 싫다는 말을 하게끔 만드는가?'하며 징징대던 나...는 '비겁한 사람'이었다! 결국 '싫다'는 말은 못하고 끌려다니며 상관도 없는 사람들에게 징징대기만 하던 나는...비겁한 사람, 맞다!
왜 '싫다'는 말을 못하는가... 착한 사람이고 싶어서!!! ㅎ~ 사실은 '착한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어서'이다!!! ㅎ~ 나는 '비겁한 사람', 맞다!!!
이제 나는 '노~'하는 연습을 하려고 한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것을 '행'하려 한다! 그러고 나서 '미안해요, 고마와요~'하려고 한다. 최소한 '억울'한 느낌은 안갖도록 하려고 한다.
2012년의 마지막 주, 12월 30일의 설교 중에 '무책임한 사람, 책임전가하는 사람'에 꽂혔다. 스티븐 코비박사의 베스트 셀러, '성공한 사람의 7가지 습관' 중에 '주체적인 삶과 습관'이 있단다. 주체적인 삶이란....내가 책임지는 삶, 남에게 책임을 넘기지 않는 삶이라는 것이다! 불평불만의 다른 이름은 '무책임하며 자유가 없는 종의 삶'이라는 것이다. 이 대목에 꽂혔다! 설교의 내용은, 연말연시에 맞는 주제, '두고 떠나는 연습'이었는데, 나는 '주체적인 삶'에 꽂혔다!
왜 12월만 되면 나는 병이 나는가... 이제껏 나의 12월은 끌려다니는 달이었다. 너도나도 한껏 들떠있는 '화이트 크리스마스~'어쩌고 하는 그 12월이, 나에게는 원치않는 만남에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그런 달이었다.
차라리 아팠으면...했다. 내 퍼즐을 위해서가 아니라 남의 퍼즐을 완성하기 위해 내가 왜 그 자리에 있어야하는가 늘 화가 났다. 이번에는 희망이 보였다. '근육파열'! 잘 하면 다리핑계로 빠질 수도 있겠다...싶었다. 왠걸~12월 24일 친구부부동반모임에 빠지는 대신 1박2일 모임에는 가란다, 남편이. 에라이~
'돌아온 탕자'를 읽으면 늘 '장남'에게 마음이 간다. 망나니 동생놈이 살아오는 것을 맨발로 뛰어나가 맞는 아버지를 보며 섭섭타 못해 화가 나는 장남. 동생을 보았다면, 형으로서 동생이 살아온 것만을 생각했다면, 형의 마음으로 기뻤을 텐데, 동생을 보는 아버지를 보았다면, 자식이 살아와서 기쁜 부모의 마음을 보았다면 자식으로서 기뻤을 텐데, 동생의 행위를 받아주시는 아버지에 대한 섭섭함이 먼저였던 장남은... 스스로 당당했던 것이다. 돈 까먹고 온 동생을 위해서는 잔치를 열어주시고 열심히 곁에서 놀지도 못하고 일한 자신은 무엇인가... 나는 머슴이었나? 나는 뭐였나? 잘~한 나는 뭣인가? 나는 아버지를 위해(?)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뭣도 하고 뭣도 하고...그랬는데, 저놈이 뭘 했다고 저리도 기뻐하시고 잔치를 열어주신단 말인가? 나는 뭣이였나? 이게 뭔가? 나는 늘 장남이 보인다...
왜 장남은 놀러도 못갔을까? 동생도 없는데 나까지 나갈 수는 없다고 생각했을까? 아니다. 그것은 아닌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하는 놈이면 아버지를 보며 오히려 눈물이 났을 것이다. 아, 다행이다...하면서. 유산을 생각했을까? 어차피 동생 몫은 동생이 가지고 나갔으니 이제 내 재산이다. 그러니 열심히 일하자...모두 내 몫일테니...그랬을까? 그것만도 아니었을 것 같다.
나는 그저 '질투'아니었나 싶다. 아버지가 동생을 끌어앉고 잔치를 열어준 것이 아니라 먼저 '네 이놈~'하면서 야단을 쳤다면, '아이고, 아버지, 왜 이러셔요~'하며 동생과 아버지 사이를 막아서지 않았을까. 그리고 형으로서 동생을 안아주지 않았을까. 뒤로는 아버지를 보며, '아버지, 왜 이러셔요?'하고 품어안은 동생에게는 '빨리 잘못했다 빌어~'하면서.
장남은...문득 억울했었던 것 아닐까... 아버지 마음아프실까 나가 놀지도 못하고 한편 나가 놀고있는 동생 때문에 더 바쁘다고 투덜거리며 그래도 내가 맏이인데...하면서 두 몫 일을 꾸역꾸역 해 낸 것에 대한 억울함...아니었을까.
예전에 우리 시아버지는 슬그머니 부엌에 들어오셔서는 싱크대 위를 손가락으로 '톡톡', 나를 부르셨다. 그리고는 혼잣말처럼 '네가 참아라~'하고는 나가셨다. 그 말 한마디에 참고 지낼 수 있었다. (아무래도 아버님이 고단수이셨던거다!!!)
두 아들의 아버지는 장남에게 그런 표현을 하셨을까? 작은 아들이 집을 나가기 전에도 아버지는 일방적인 사랑을 막내에게 표현하셨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장남과 막내 사이에 서열도 없고, 그야말로 형은 늘 동생 때문에 억울하기만 했던건 아닐까? 동생은 형을 형으로 대하지 않는데 형에게만 그저 형이니 참으라고, 양보하라고 하지는 않았을까? 동생을 패주자니 아버지가 무섭고, 주위사람들 눈이 무서워 눈만 벌개져서 참았던 것은 아닐까? 동생은 두주먹을 불끈쥐고 눈물 글썽이는 형을 보며 아버지 뒤에서 '메롱~'하지는 않았을까?
어느 날 부터인가 나는 늘 '돌아온 탕자' 동생보다는 형이, 장남이 보였다...
장남은 아버지에게 늘 '네~'라고만 했을 것 같다. 속 상하고 화가 나도 늘 '네...'라고만 했을 것 같다. 속으로는 속으로는 '부글부글...'했으면서. 아버지는 모르셨을거다. 모르셨던 거다.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였지 않니? 내 행복이 너의 행복 아니었니?'하신 것을 보면...
아버지가 속 상해 하실까, 나에게 실망하실까... 남편이 실망할까, 주위사람들이 실망할까...'못된 며느리'란 소리를 들을까...!!!
싸우기도 전에 '지는 게 이기는거다'라는 둥, 집안의 평화를 생각한다는 둥, 남편이 마음 상해 뭐 좋겠냐는 둥...으이구...내가 참아야지...라는 둥... 그러면서 부글부글...혼자 온갖 거품 다 내다가 시간가면 또 슬그머니 넘어가기 수 년.
이번에는 '싫어요~'하는 대신 '나에게 상을 주기'로 했다. 그래서~~~29일은 친구 모임으로 외박했다!!! ㅎㅎㅎ~~스스로 모험한 듯~자랑스럽기까지 했다!!! 혼자서 itx기차를 타고 눈 가득한 가평을 다녀왔다. 우와~itx청춘열차, 세련, 감동!!(나는 서울촌놈이다!) 그리고 일요일 새벽에 눈길을 걸어나와 다시 itx로 서울에 와서 교회로 갔다!!! 교회에서 양양 솔비치로 가서 시집식구들과 1박, 31일 아침의 동해에 뜨는 해를 보고, 그리고 서울 귀경길에 친정으로 가서, 처음으로 연말연시를 친정어머니와 함께 지냈다!!! 으흐흐흐~~~ 그래서...송구영신예배는 결석~
새해에는...내가 잘못하고 내가 미안하다고 하고, 내가 스스로 좋아하고 기뻐하도록 노력하려 한다! 돌아온 탕자의 작은아들처럼...깨끗이 승복하고 은혜에 감사한 삶을 살려한다. 언잖은 마음으로 끌려가듯 의무로 살아낸 장남처럼은 안 살아야 겠다! ㅎ~ 그리고 60년 가까이 끌려끌려 다닌 내 몸에도 칭찬을 해 주고 이제 돌봐주려 한다. 으흐흐~
금년 송구영신은 가평에서, 친정에서 스스로 아주 멋지게 보냈다. 앗싸~자주독립한 기분이다.
'자기 멋대로'~와 '자기 비하' 사이의 멋진 세상을 아직도 못 찾고 비틀거린다는 생각이다. '가식덩어리'라는 단어도 생각난다. 아뭏든 금년은...'나 자신'을 생각하는 해로 만들려 한다. 내가 서고 우리를 생각하는 게 순서 아니겠는가~ 이 나이가 이른 것은 아니지만, 더 늦어 환갑에도 나를 찾자...하면 더 웃기지 않겠나?
대신, 징징대지 말 것. 지나간 일, 다시 읊어대지 않을 것!!! 억울해하지 말 것!!! 이상 57살의 '자주독립선언-끝!' 만세~ 으흐흐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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