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은미목사님

갈라디아서 4장]"해산의 고통을 감수하더라도 다시 돌아보아야 할 형제/자매가 있는가?"

colorprom 2022. 12. 23. 09:08

임은미(유니스) 목사님 묵상입니다.

2022. 12. 23. 금요일

임 은미 (유니스) 선교사 묵상


최고의 날 ~

"해산의 고통을 감수하더라도 다시 돌아보아야 할 형제/자매가 있는가?"

갈라디아서 4장

 

어제는 병원 심방을 나가려고 막 준비하는데 문자가 왔다.
무척 고민하다가 보낸 문자인 것 같았다.

지금까지 보낸 헌금을 되돌려 줄 수 있느냐는 질문이었다.

그래서 이것저것 질문을 했다.

내가 지금까지 그분이 헌금한 금액 내역을 알 수 없으니 말이다.

 

헌금 꾸준히 하다가 나에게 상처 받은 것이 있어서 헌금 멈추었다 해서

내게 무슨 일로 상처를 받았냐고 물어보았다.
그리고 그동안 그 사람과의 카톡 내역을 죽 다시 보았다.

상담도 해 주고 해 달라는 기도도 해 주고..

해 달라는 것 다 해 주었는데 왜 상처를 입었을까?

물어보니 그 이유를 말해 주었다.

 

그래서 내가

"혹시 내가 그대의 화풀이를 다 들어 주어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라고 물어보았다.

헌금을 돌려 달라는 말에 내가 많이 당황했을 거라고 해서

그렇지는 않다고 했다.
이런 일 한두 번이 아니니까 말이다.
이번이 아마 세 번째인가 네 번째?? 같다.
그래서 그렇게 당황스럽진 않았던 것 같다.

 

여튼 돌려 달라는 헌금의 입금 내역 주욱... 검사해서 그대로 다 보내 드렸다.

심방을 가야 하는지라.. 총총걸음으로 집을 나서기 전 잠깐 기도를 했다.

이럴 때 나는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하는 것일까??

기도를 하니 떠오르는 성경 말씀은 갈라디아서 2장 20절이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음.. 내가 십자가에 못 박혔으면 죽은 거네?
거 죽은 시체라면 어떤 일에라도 반응을 하게 될깜유?

시체가 반응을 한다면 죽은 것이 아니겠죠? ㅎ ㅎ

 

심방 마치고 집에 오는데 집 근처에 와서 어떤 교회를 보았다.

교회 바로 정문에 큰 표어가 적혀 있었다. "오직 예수!"
순간 밀려 오는 "큰 은혜!!"

"오직 예수!"

 

내가 내 멘티들이 이런 저런 일로 마음 상해 하면 습관처럼 권면하는 말이 있다.

"Fix your eyes on Jesus!"(예수께 시선을 집중하라!)

 

아침에 마음이 좀 불편했으나 그래도 해야 할 심방 잘하고

간병하는 효녀 권사님 칭찬하고 격려하고 위로하고

그리고 개척교회 기도하고 있는 어느 사역자님 위해 기도해 주고 격려하고

그 외에도 이 부탁 저 부탁하시는 분들 부탁 다 들어 드리고

하루의 사역을 잘 마무리 하였다.

 

"오직 예수!"

느을 한결같이 모든 일에 지정석 답이 된다고 생각한다.

보통 내 멘티들한테 한 말이었는데 ㅎㅎㅎ

오늘은 내가 내 스스로에게 힘 주어 말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서 감사 감사!

택시 타고 집에 온 덕분에 교회 앞 지나면서

큰 표어 "오직 예수!"를 볼 수 있었기에 감사 감사!!

 

갈 라 디 아 서 4 장

 

19 -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My dear children, for whom I am again in the pains of childbirth

until Christ is formed in you,

 

"다시"라는 말이 마음에 와 닿는다.
바울 사도는 "해산하는 수고"를 다시 하겠다는 것이다.
여자가 "해산"을 할 때 고통이 너무 심해서

다시는 아기를 낳지 않겠다는 생각들을 하기도 한다고 한다.
그러나 아기를 키우면서 "해산"의 고통을 잊고 또 아기를 갖게 된다고 하는데

바울은 여자도 아닌데 "해산의 고통"을 이야기할 정도로

한 생명 한 생명 영적인 자녀들을 위한 수고를 잘 이해하는 분이 아니었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해산의 고통"이 참으로 힘든 것인데

그것을 마다 않고 "다시" 또 하겠다고 말을 하는 사도 바울!

무엇을 위한 고통인가?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라는 것이다.

 

우리 가운데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이 있기도 하지만

미성숙한 그리스도인들도 있다.


성숙하다는 것은 그만큼 그들의 삶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많이 이루어진 그리스도인들이라고 하겠다.

반대로 "미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은

그만큼 그들의 삶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아직은 안 보인다고 하겠다.

 

그런데 주위의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형상"이 크게 보이지 않는다고

쉽게 "포기" 하면 될까?

바울 사도를 본받기로 하고 이 질문을 대하면 답은 "NO!" 가 된다.

 

바울 사도는 "다시"라는 말을 사용했다.
"다시"
"다시"
"다시"

 

주님 오늘도 최고의 날입니다.
내가 "다시" 돌아보고 돌보아 주어야 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있는지요?

바울 사도는 그 돌아봄이 "해산의 고통"이라고 까지 표현하는데

그러한 고통이라도 감수해 내려고 하는 바울 사도의

한 영혼 한 영혼의 "믿음의 진보"에 대한 관심

"사도로서의 또 하나의 스펙"이구나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되어 감사합니다

 

하나님은 저의 삶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지기까지

단 1초도 저를 포기한 적이 없으시고 "다시" 또 "다시" 저를 일으켜 주시고

가르쳐 주시고 힘을 주셨음을 기억하면서
"오직 예수님"을 의지하는 마음으로 믿음 안에서 지체들에 대하여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은 상담사역도 있고

그리고 저녁에는 킹스 크로스 기도원에서 저녁 집회가 있습니다.

모든 사역들 위에 하나님의 기뻐하심이 함께 있기를 기도드립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우리 주님 저를 보시면서 하루 종일 기쁘시면 참 좋겠습니다!

 

 

💕 사랑하는 그대여 💕
2022. 12. 23.

 

사랑하는 그대여~ 사랑하는 그대여~


출. 석. 부르고 있습니다
대답하셔야죠?

 

사랑하는 그대여~
사랑하는 그대여~
사랑하는 그대여~

 

억만 번 더 들어도 기분이 좋은 말
들으면 들을수록 더더욱
힘이 되고
용기가 되고
위로가 되는

 

사랑하는 내 딸아~
사랑하는 내 아들아~

 

사랑하는 그대여
오늘 큐티 조금 무거운 소재가 아닌가 합니다.

왜냐하면 "해산하는 고통" 이거 정말 어마어마한 거잖아요 그죠?
우리가 말만 들어도, 남자분들은 경험하지 않으셨겠지만...
아내라든가 엄마 이야기 들어보면, 누나 이야기 들어보면, 동생 이야기 들어보면,
와우~ 해산하는 고통은 어마어마한 것이구나..

그런데
이 해산하는 고통이 사실
우리 형제 자매들 그들 가운데 그리스도의 형상이 보이기까지
우리가 이런 고통을 사실 수반해야 된다는 것이겠죠?

즉은,
우리의 지체들, 우리의 형제 자매들,
그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지는 그 과정이 쉽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됩니다.

물론 다른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는 것이 쉽지 않듯이
저희, 우리들 스스로에게도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지는 과정은

쉽지 않겠지요...

 

그러나 우리 예수님 절대로 우리를 포기하지 아니하시고, 또 사랑하시고,

"다시"
"다시"
"다시"

 

해산의 고통보다 더한 고통이라도 항상 감수하기로 작정하신

우리 예수님을 생각한다면
우리가 그분을 본받는다는 것, 그러니까 다시 또 말하면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많이 있으면 많이 있을수록
우리는 아마 옆에 있는 지체들, 그들의 삶 가운데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지는 것을 더더욱
힘써주고
참아주고
견뎌주고
기다려주는 그런 사람들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그대여
사랑하는 그대여

하나님도 그대를 참으시고,
그거 본받아서 우리도 우리 이웃들을 참아줄 수 있는
그런 하루하루 되었으면 정말로 좋겠습니다.

 

성탄절 이제 그야말로 이틀 남았네요.
우리 더더욱 옆에 사람 돌아보고
돌아보는 것이 꼭 재정적인 것,
가난한 사람들을 돌아보는 것뿐만 아니라

오늘 QT를 적용한다면
그리스도의 형상이 아직까지 이루어지지 않은 지체들을
좀 돌아보는 것도
성탄에 저희가 할 수 있는 삶의 적용이 아닐까 합니다.

 

사랑하는 그대여
사랑하는 그대여 사랑합니다.
사랑하는 그대여 축복합니다.
오늘도 그대의 최고의 날입니다.

 

(* '사랑하는 그대여' 말은 '사랑하는 그리스도의 대사여'를 줄여서 말하는 것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