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은미목사님

고린도전서 6장]"나의 몸이 존재하는 이유는?"

colorprom 2022. 11. 26. 17:48

임은미(유니스) 목사님 묵상입니다.

2022. 11. 26. 토요일

임 은미 (유니스) 선교사 묵상


최고의 날 ~ "나의 몸이 존재하는 이유는?" 고린도전서 6장

 

어제는 새벽기도 갔다가 아침 일찍 수양 회관으로 SAM 스탭들과 함께 떠났다.
가는 시간이 넉넉 잡아 2시간이 걸린다.

DNA 라고 21일간 학생대표들을 제자훈련 시키는 사역을 준비하기 위해

학생들 묵을 모든 방들 점검, 방마다 필요한 모든 물품들 다 기록하고

점심 먹고 난 다음에는 필요한 물품들 : 냉장고, 냉동고, 큰 TV, 세탁기, 드라이어, 등등

쇼핑하고 집에 오니 저녁 8시가량이 되었다.

아침 8시에 나가서 저녁 8시 돌아왔으니 꼬박 12시간을 사역하고 온 것인데

밤길에 집에 오니 얼마나 위험하던지..

 

이런 길 보다 더 험한 길을 가는데 적어도 8시간 오는 데 8시간 걸리는 사역을

너무나 힘들지 않다는 듯 하시는 장 상호 선교사님과 사모님이 저절로 생각났다.

이곳에 의료사역을 하시는 선교사님이시고 목사님이시고 의사 선생님인

장 상호 선교사님 부부랑 내가 친하게 지내고 있다.

나이가 두 분 다 70이 넘으셨다고 하는데

젊은 선교사들 못지않게 어려운 오지를 다니시면서 사역하는 모습이 늘 "귀감"인데

어제 나는 정말 오랜만에 사역지에서 어두운 밤 집으로 귀가하면서

두 분의 수고가 저절로 생각났다.

 

그리고 현지 사역자들과 이렇게 같이 다녀보니

그들이 내가 하는 수고와는 다른 수고를 하면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보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던 것도 감사 한 일이었다고 하겠다.

 

고 린 도 전 서 6 장

 

13 -음식은 배를 위하여 있고 배는 음식을 위하여 있으나

하나님은 이것 저것을 다 폐하시리라
몸은 음란을 위하여 있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하여 있으며
주는 몸을 위하여 계시느니라

 

"Food for the stomach and the stomach for food" -- but God will destroy them both.

The body is not meant for sexual immorality, but for the Lord, and the Lord for the body.

 

"몸은 음란을 위하여 있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하여 있으며"

이 말씀이 마음에 와닿는다.

 

어제는 참 드문(?) 상담(?) 문자를 받았다.
보통 내가 받는 상담 문자나 기도 부탁 문자는 정말 자신이 처한 상황이 힘든 사람들이다.

재정이 힘들다거나 관계가 힘들다거나 몸이 아프다거나..

그런데 어제 받은 문자는 그런 문제가 전혀 없는 분이었다.
그분 프사 사진을 보니 "우아 그 자체"인 외모의 여인이었다.

남편도 잘 만났고 아이들도 잘 키웠고 뭐 하나 부족한 것이 없는 분 같은데
외롭다는 것이다.

이 외로움을 어떻게 극복(?) 할 수 있는지 물어왔는데...

키야!
이렇게 문제없이 사는 분이 왜 외로울까?? 세상에 힘든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런 생각이 우선 들었는데

기도 부탁을 내게 한 것이니 기도를 하면서 내가 주님께 여쭤보았다.

 

"주님! 이런 분은 도대체 왜 외로울까요? 외로울 이유는 전혀 없는 것 같은데 말이죠!"
주님 이렇게 답해 주셨다.

""예수"로 충만하지 못해서이지! 그래서 외로운 거야!"

그 말씀을 듣고 난 다음 난 그 들은 말씀을 그 분에게 그대로 전해 드렸다.

 

그분이 마음 상할 수도 있을터인디.. 너무나 겸손하게 동의해 주셨다.

나에게 큐티를 어떻게 하면 되냐고 물으셨기에 큐티 방법을 가르쳐 드리고
이렇게 큐티 하시면 "외로움"을 금방 극복하게 되실 거라고 말씀드렸다.

 

오늘 나는 왜 이 구절을 묵상 구절로 선택했을까?
아마 이 분으로 부터 받은 "외로움"의 문제 때문인 것 같다.

나로서는 사실 "공감대" 형성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거의 없는 부분이 이 부분이라고 하겠다.

 

"몸은 음란을 위하여 있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하여 있으며" 라는 말씀을
꼭 몸은 음란을 위하여.. 라는 것에 국한하기보다는

내 몸이 존재하는 이유를 정확히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겠다.

 

내가 "외롭다"라는 것은
내 몸이 나를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 아니라고 말 할 수 있을까?

"괴로움"이라는 것은 내가 타인으로부터 받는 영향 때문일 수 있으니
내가 어찌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외로움"이라는 것은

내가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따르는 "내가 어찌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생각된다.

 

왜 외로울까?
그분은 너무 외로워서 결혼을 했는데 결혼을 해도 외롭다고 한다.
그리고 짧게 그분의 결혼생활 이야기를 들어 보니

시집 정말 잘 간 여자분이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면 "외로움"의 원인이 무엇인가?
"나를 위함"이기 때문인 것이다.

 

그러니 내 묵상 구절을 적용하자면
내 몸이 주님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 존재하니까 내 마음에 외로움이 찾아올 수 있다는 것이다.

 

내 몸...나를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인정하면
사실 나에게 "외로움"이 굳이 삐져 들어올 수는 없지 않을까?

나를 위해 살지 않고

부지런히 내게 허락하신 몸으로 주님 섬기고 이웃 섬기는데
언제 "호화스럽게" "나는 외롭다!"라는 감정을 갖게 될 것인가 말이다.

 

"고독"과 "외로움"에 차이는 있다.
그 설명은 하지 않도록 하겠다.
내 묵상 안 그래도 긴디 ㅎㅎㅎㅎ

 

주님 오늘도 최고의 날입니다.

"외로움"이 죄라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싱글일 때 외로움을 느끼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결혼했고 아이들 있고 결혼 생활 원만하고 재정에도 문제없는데 "외롭다"?

 

"예수님"으로 충만하면 사실 "외로울" 시간은 거의 없습니다.

예수님 생각하고 예수님이랑 대화하고 예수님이 좋아할 만한 일들 생각하고
그거 행동에 옮기고..

 

저 외로워 본 적이 거의 없습니다.

저 "자기 연민" 싫어하고 "외롭다"라는 감정도 싫어합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해야 할 일들은 줄을 서 있고

그렇게 줄을 서 있는 일들을 해내면서 하나님을 배워 갑니다.
그리고 날이 가면 갈수록 더 "예수님 한 분으로 꽉 차는 기쁨"을 배워 가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예수님 믿으면서 외롭다고 하는 모든 분들을 주님 용서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한 분으로 충분" 하지 못하다는 고백을 은연중에 하는 그들의 이기심들을

용서하여 주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아마 그런 분들은 아프리카 와서 옷은 다 떨어지고 헤어져서

빵 한 조각 얻기 위해 새벽 기도를 30- 1시간씩 걸어오는 아이들을 만나면

"외로움"이 천 리로 도망가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해 봅니다.

 

주님이 주신 것이 많은 사람들은

가진 것으로 어떻게 하면 다른 이들에게 자기가 받은 사랑을 전해 줄 수 있을는지
그런 거룩한 고민을 "외로움" 대신에 할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감정의 사치"를 누리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제정신을 차리도록 도와주옵소서!

우리에게 "주어진 몸"이 우리를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깨닫도록 도와주옵소서!

 

"몸은 음란을 위하여 있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하여 있으며"라는 이 말씀을 기억하면서

오직 주를 위하여 내 몸이 존재함을 인정하는 지혜가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있기를 기도드립니다.

 

오늘은 교회를 옮길 장소를 답사 가기로 했습니다.

얼마만큼 크기의 땅을 몇 년간 빌려 사용할 수 있을는지 이야기가 오고 갈 때

주님이 땅 주인의 마음을 말랑말랑 ㅎㅎ 도와주셔서

땅 빌리는 가격을 잘 정하도록 도와주옵소서

 

주님 사랑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우리 주님 저를 보시면서 하루 종일 기쁘시면 참 좋겠습니다

 

 

💕 사랑하는 그대여 💕
2022.11.26.

 

사랑하는 그대여~ 사랑하는 그대여~
출. 석. 부르고 있습니다
대답하셔야죠?

 

사랑하는 그대여~
사랑하는 그대여~
사랑하는 그대여~

 

억만 번 더 들어도 기분이 좋은 말
들으면 들을수록 더더욱
힘이 되고
격려가 되고
소망이 되고
새로운 기쁨이 되고
새로운 감사가 되는

사랑하는 내 딸아~
사랑하는 내 아들아~

 

사랑하는 그대 오늘 제 묵상 조금 너무 과하다 그런 생각 들지 않았는가 모르겠습니다.
너무 멀시(mercy) 자비한 마음 없다?
어쩌면 그렇게도 긍휼한 마음 없이 너무 뭐라 그럴까 쌀쌀맞다.
우리 요즘 세상 말로 싸하다... 그렇게 느껴질 수 있을는지도 모르겠는데요.

 

사랑하는 그대여
감정이라는 것은 참 어렵습니다. 그죠?
그다음에 복잡합니다. 감정이 다양합니다.

너무나 다양한데 우리가 한 가지 꼭 포커스(focus)를 두어야 될 것이 무엇인고 하니

내가 나를 위해 더 이상 존재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우리 모두 다 명심할 필요는 있습니다.

 

왜냐하면 갈라디아서 2장 20절 말씀에 분명히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함께,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나니
그런 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렇게 성경 말씀에 나와 있잖아요. 그죠?

 

내가 이제 내 몸 가지고 살아가는 거,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면서요.
고백했잖아요.

 

나는 어디 갔나?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면서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사람한테
외로움이 사실 있을 리 없고
괴로움도 있을 리 없고
미움 짜증 이런 것도 사실은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성경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것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뭐 하냐?
“대적기도!”

 

"너 누구야?
내가 이럴 리 없어
내 안에있는 예수께서 남을 미워할 리 없지
그러니 너 누구야?

"남을 미워하는 미움의 영 떠나라!”

 

내지는 외로움 같은 경우도, 사랑하는 그대여,
예수님과 함께 있는데 자꾸 외롭다 그러면 예수님이 섭섭해지죠...

“아니 너는 왜 나랑 함께 있는데 왜 외로워?”

이렇게 묻지 않을까요?

 

그러니 외롭다고 느껴지는 이것도 건강하다고 계속 받아들이면서
"나는 외로워도 괜찮아, 괴로워도 괜찮아, 나 미워해도 괜찮아"
이렇게 너무 자유하시지 마시고

이럴 때는 "대적기도"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외로움의 영 떠나갈지어다
남을 미워하는 마음 떠나갈지어다
섭섭한 마음 떠나갈지어다

"예수의 피!"

더러운 영 떠나갈지어다
자기 연민 떠나갈지어다
우울증 떠나갈지어다 "

 

사랑하는 그대여
예수님 믿으면서 우울하면 안 됩니다.
우울한 거 잠시 우울할 수 있지만 계속 우울하면서도 나는 왜 우울하지?

내가 왜 우울하다니요? 내가 우울할 리 없습니다.

 

그러면 이것이 무엇인가?
내가 아니라 우울의 영이 나와 함께 하구나

"우울의 영 내가 너를 싫어한다
나를 떠나라
내가 너를 대적한다"


이걸 할 줄 알아야 된다는 것이죠. 영적 전쟁입니다.

매일매일 우리들의 생활이 영적 전쟁인데
물리칠 것을 그야말로 아쌀하게 물리칠 수 있는 그대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제가 오늘 묵상 쓰면서도
“야~ 이거 좀 싸하다. 이렇게 남들을 이해하지 못해서 되겠는가?”
그런 생각도 들었지만

사랑하는 그대여
언제까지 남들이 나를 위로해 줘야 되고
나는 위로받아야 된다는 생각 가운데 살고 있으려고 합니까?

 

스탠드업! (stand up!)
라이즈업! (rise up!)
스탠드업! (stand up!)

 

그러니까 일어서고, 라이즈업! (rise up!) 일어서고 그래서
더 이상 침륜에 빠질 자처럼 뒤로 물러가서 사는 사람이 되지 않고
앞으로 진보, 나아가는 자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의 도움으로 예수님과 함께 동행하는 그대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그대여
매일매일이 영적 전쟁인 것을 기억하시고


전쟁이라고 한다면 싸워서 이기셔야죠?
전쟁은 그냥 즐기면 안 됩니다.

"게임" 이 아닙니다.
전쟁은 생사가 걸려 있는 것입니다.

내가 적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을 수 있습니다.
상대편 에너미 (enemy) 원수 우리가 죽여야 되겠죠?

전쟁은 이기려고 하는 것이지
재미있으려고 하는 것이 전쟁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비 시리어스 “Be serious!” 심각해지시기 바랍니다.
신중하게 내가 오늘도 영적 전쟁에서 이길 것인가? 질 것인가?
이기기를 사투하는 그대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그대여 사랑합니다.
사랑하는 그대여 축복합니다
오늘도 그대의 최고의 날입니다


(* '사랑하는 그대여' 말은 '사랑하는 그리스도의 대사여'를 줄여서 말하는 것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