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은미(유니스) 목사님 묵상입니다.
2022. 8. 16. 화요일
임 은미 (유니스) 선교사 묵상
최고의 날~"모든 것을 아셔도 그래도 우리의 마음을 물어 보시는 다정하신 주님!" 마가복음 9장
케냐는 얼마 전 대통령 선거가 있었다.
케냐를 위한 기도문을 누가 나에게 보내 주었다.
그 글을 그대로 올려본다.
(지금 이 글을 적고 있는데
투표 결과가 발표 되었다.)
**
지난 8월9일(화) 케냐 총선거가 있었답니다.
대통령(대선), 국회의원(총선), 도지사,시장,군수,지방위원(지선)을 같은 날 모두 진행해 선거에 대한 관심과 경쟁은 더욱 치열하고 긴장할 수 밖에 없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선거개표가 진행되고 있어 지금 케냐는 초긴장, 비상상황이고 모든 학교도 선거 10일전부터 휴교령을 내려 모든 기숙사 학생들을 고향으로 돌려보냈지만,
개표가 지체되어 2차에 걸쳐 다시 휴교연장을 해서 모든 학생들은 집에 머물러 있답니다.
선거개표 결과에 따라 케냐 전국의 상황이 어떻게 될지 온국민과 외국인들도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선거결과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케냐의 법은 과반특표자가 없을시 한달 이내에 1,2위 후보자간 재선거를 해야 하는데, 현재로선 두 후보 모두 과반 당선이 쉽지 않아
2차선거가 이루어질 가능성도 커서 만약 재선이 이루어지면
이 기간 치열한 선거운동의 과열로 인한 엄청난 갈등과 혼란이 올 가능성도 있답니다.
아프리카 대다수 나라들이 선거때마다 많은 갈등과 혼란, 분쟁이 발생하는데, 케냐 또한
2007년도에 대선 부정선거로 인한 부족간 보복분쟁이 일어났는데,
특히
리무르 같이 많은 부족들이 섞여 사는 지역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죽이는 비극이 일어나 케냐인들은 지금까지도 선거때만 되면 그때의
트라우마와 두려움이 크답니다.
그래서 선거 전 미리 고향으로 피신했다가 잠잠해지면 다시 일자리로 돌아오기도 한답니다.
오늘 선거 결과가 발표될 예정인지라 케냐 온 국민들이 초긴장상태에서 그 결과를 지켜보며
이번주는 다들(특히 외국인들) 겁이 나서 외출금지를 하며 집에 머물며
가슴 졸이면서 선거결과를 지켜보며 온국민이 평화를 간구하며 기도하고 있답니다.
누가 되든 여러 부족들이 모여 사는 나이로비나 몸바샤 같은 대도시들과 패배한 부족들 지역에서
불복, 반발하며 대규모 시위와 보복이 생기리라 예상되는데,
케냐의 평화를 위해 기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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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도문에 나오는 "리무르"가 바로 내가 살고 있는 곳이다.
2007년도의 그 혹독한 살인들과 테러들을 나도 기억한다.
우리 집에도 사람들이 와서 다른 부족들을 찾기도 해서
우리 집에 장정들은 밤에는 긴 칼들을 준비하고 모닥불을 피워놓고 밤새 집의 보초를 섰던 것을 기억한다.
나는 무시로 창문을 내다보면서 망(?)을 보기도 하고..
선거때는 아니었지만
남편이 납치를 당해가고 내가 남편 찾으러 경찰서를 가던 일들이 순간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이 모든 위험 가운데서 항상 지켜 주셨던 우리 하나님!
"하나님의 뜻이 있는 곳이 가장 안전합니다!"의 믿음을 지금까지 지키게 해 주셨음을 감사 드린다.
오늘은
마태복음 24장 7절 말씀이 저절로 떠오른다.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 나겠고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Nation will rise against nation, and kingdom against kingdom. There will be famines and earthquakes in various places.
나라에
난리에 대한 소문(?)들 역시 주님이 곧 오시리라는 사인중의 하나이니
나라를 위해서도 기도해야 하지만
종말에 대한 바른 신앙을 갖고 살아가야 할 "나 자신"에 대한 기도 역시 멈추지 않아야 할 것 같다.
마가 복음 9장
21 - 예수께서 그 아버지에게 물으시되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느냐 하시니 이르되 어릴 때부터니이다
Jesus asked the boy`s father, "How long has he been like this?" "From childhood," he answered.
묵상을 하면서 어느 부분에 focus를 두는가 하는것이 그 날의 "삶의 적용"의 방향을 정하기도 하는 것 같다.
묵상을 하면서
"나"에 대한 focus가 있다.
내가 슬플 때
내가 위로 받고 싶을때
내가 새 힘이 필요할 때
등 등
그럴 때 묵상 본문 말씀의 선택은 나의 상황에서 나에게 도움이 되는 말씀을 선택하게 되기때문이다.
오늘은 나에 대한 관심을 접고
말씀을 읽으면서
예수님에 대한 촛점을 맞춰 보고자 한다.
예수님!
그 분은 하나님이시다!
즉슨
전지 전능하신 분!
모르는 것이 전혀 없으신 분!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예수님이 무엇을 모르시는 것 처럼 질문이 나온다.
"예수께서 그 아버지에게 물으시되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느냐 하시니 이르되 어릴 때부터니이다"
귀신 들린 아들을 데리고 온 그 아이의 아버지에게 예수님의 질문이신것이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신데
그 아들이 언제부터 귀신 들려서 괴로움 받았는지를 모르셨을 리가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물어 보신다.
아마 그 자리에 있었던 군중들을 위한 질문이셨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주님이 우리에게도 물어 보실 때가 있다.
우리의 마음이 내려갈 때가 있다.
주님 물어 보신다.
"너 오늘
어쩐 일로 마음이 내려갔니?"
주님이 모르셔서 묻는 것일까?
주님은 우리가 그 분과 "소통"하기를 원하신다.
우리의 입술로 우리의 마음이 어떠한지 고백하기 원하신다.
주님과의 "밀어의 시간"인 것이다.
주님 오늘도 최고의 날입니다.
우리 모든 사람들을
우리들 자신보다 더 잘 아시는 우리 주님이셔서 넘 감사합니다!
모든 것을 다 아시고도
그래도 물어 봐 주시는 그 배려를 감사 드립니다.
귀신 들린 아들을 가진 아버지에게 아들이 언제부터 그랬냐고 물어 보시는 주님의 질문이 참으로 다정하게 들려옵니다.
눈물이 울컥하네요 주님!
우리들의 질병을 담박에 고쳐 주실수도 있지만
우리에게 다정하게 먼저 말을 걸어 주셔서 감사 드립니다.
우리가 완전히 건강하고
이 땅에서 재물에도
아무 부족없다 해도
우리가 우리의 삶에서
"주님의 다정한 음성"을 들을 수 없다면
그 삶이
"참으로 풍성한 삶"이 될 수 있을까요?
우리에게 먼저 다가 와 주시고
우리의 필요를 물어 봐 주시는
주님께
오늘도 저의 마음을 고정시켜 봅니다.
그러니까 감사!
그럴수록 감사!
그러면서 감사!
그럼에도 감사!
그것까지 감사!
무조건 감사!
주님 사랑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우리 주님 저를 보시면서 하루종일 기쁘시면 참 좋겠습니다
** 최고의 날 게시판 **
어제 제가 예상(?)했던 것 보다 더 많은분들이
십이조
십삼조 설명을 부탁하셔서
오늘 게시판에 올립니다.
한참이나 긴 글이니 여기에 질문이 없는 분은 안 읽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그러나 공부해 두면 좋은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 아~ 그리고 이 글들은 제가 퍼온글들인데 제가 확실하게 어디서 퍼왔는지 이곳 저곳 복합되어서리..
퍼온 곳을 알려 드리지 못해서 이해 부탁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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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일조에 대한 바른 교훈
십일조에 대한 바른 지식을 알지 못해
십일조에 대한 논란이 많아 성경에서
말하는 십일조에 대한 교훈을 전합니다.
십일조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임으로 쓸 수 없는
하나님의 것으로 성물입니다.(레27:30,31)
십일조는 하나님께 드려지는 성물이기에,
이 성물을 자기가 임으로 먹거나 쓰면 그 죄로 인하여 형벌을 받게 됩니다.(레22:16)
이에 대하여 말라기 선지자는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 하겠느냐.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둑질 하였으므로
저주를 받았느니라. 이는 십일조와 봉헌물이라 하였습니다.(말3:8-9)
또한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하였습니다.(말3:10)
여기서 말하는 온전한 십일조를 어떤 분들은
십일조와 봉헌물(절기와 구제포함)로 말하기도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온전한 십일조는 십일조들로
모세는 세가지 십일조를 가르치고 지키라 명령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십일조를 두 번 뗍니다.
십일조 하나는 성전에 바쳐서 레위인의 기업으로 주고 또 십일조 하나를 떼어서 절기와 구제로 쓰는데,
1,2년 때는 절기때 쓰고, 제3년 때에는 저축하여 구제로 사용합니다.
(신14:22-29)
첫번째 십일조는 레위인의 기업으로 다 주는 것이요
두번째 십일조는 삼대 절기때 경비로 쓰고
세번째 십일조는 저축하여 구제로 사용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백성들이 드려야 할 십일조는
세 가지이지만 합해서 십의 이조입니다.
그러므로 십일조를 드리면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부어 주는 것이 아니라,
세가지 십일조 곧 온전한 십일조(절기와 구제)를 다 드려야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부어 주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왜 세가지 십일조들이라 하지 않고
온전한 십일조라는 표현을 썼을까요?
이는 십일조를 드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은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하였습니다.(마23:23)
예수님은 십일조를 드리는 것보다 더 중요한 십일조를 드리는 정신인 의(義)와 인(仁)과 신(信)을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십일조를 복을 받기 위한 수단이나, 저주 받을 것이 두려워서 억지로 드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곧 정의롭게 벌어서 십일조를 드리고, 십일조를 드릴 때는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드리고, 또한 인색함으로나 억지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을 믿는 믿음으로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라고 하신 것처럼,
십일조를 드리되 그 정신까지 잊지 말라는 것이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십일조에 대한 교훈입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이 십일조는 구약의 율법이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신약의 우리는 십일조는 하지 않아도 된다고 잘못 알고 있고,
심지어 십일조를 드릴 필요가 없다고 가르치고 있는데,
예수님은 십일조를 드리되, 십일조를 드리는 정신까지도 버리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말라기 선지자로 말씀하신 온전한 십일조는 세가지 십일조를 드릴 뿐만 아니라 십일조를 드리는 정신인 의와 인과 신을 포함하기에 온전한 십일조라 하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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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설명
2. 둘째 십일조
그런데 이스라엘에게는 또 다른 십일조가 있었습니다. 신명기 12장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해야 할 것을 기록해 놓으셨습니다.
너는 네 곡식과 포도즙과 기름의 십일조와 네 소 떼와 양과 염소 떼의 처음 낳은 것과 네가 서원하는 서원 헌물과 네 자원 헌물과 네 손의 거제 헌물을 네 성문 안에서 먹지 말고
오직 주 네 하나님께서 택하실 곳에서 주 네 하나님 앞에서 반드시 먹되 네 아들딸과 남종과 여종과 네 성문 안에 거하는 레위 사람과 함께 그것들을 먹고 또 네 손으로 행하는 모든 일로 인하여 주 네 하나님 앞에서 기뻐하되
스스로 조심하여 네가 땅에 사는 동안 레위 사람을 저버리지 말지니라(신12:17-19).
그렇다면 이 십일조는 누가 먹습니까? 제사장이나 레위 사람이 먹습니까? 아니면 이스라엘 사람과 그의 아들딸들이 먹습니까?
이것은 이스라엘 사람이 자기 집안 식구들과 함께 먹는 십일조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온 가족이 먹고 즐거워할 용도로 따로 십일조를 떼어놓으라고 말씀하십니다.
물론 이것을 먹을 때는 남종과 여종도 함께 해야 하고 레위 사람들도 함께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 십일조는 기쁘게 먹고 노는 데 사용되는 십분의 일 몫입니다.
사실 이것은 노고로 고생하는 인간을 배려하시는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냅니다. 일 년 동안 수고했으니 하나님 앞에서 먹고 기뻐 뛰면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데 쓰라고 하나님께서는 이런 규정을 친히 마련해 주셨습니다.
이것은 제사장이나 성막 예배를 위해 바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십일조는 좀 더 구체적으로 신명기 14장에 나와 있습니다.
22 너는 해마다 밭에서 나는 네 씨의 모든 소출에서 진실하게 십일조를 드릴 것이며
23 주 네 하나님 앞에서 곧 그분께서 자신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실 곳에서 네 곡식과 포도즙과 기름의 십일조를 먹고 또 네 소 떼와 양과 염소 떼의 처음 난 것을 먹으며 이로써 주 네 하나님 두려워하기를 항상 배울 것이니라.
24 주 네 하나님께서 네게 복을 주셨을 때에 주 네 하나님께서 자신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실 곳이 네게서 너무 멀거나 그 길이 네게 너무 길어 네가 그것을 가지고 갈 수 없거든
25 그것을 돈으로 바꾸어 그 돈을 싸서 손에 들고 주 네 하나님께서 택하실 곳으로 가서
26 네 혼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 돈으로 사되 소나 양이나 포도즙이나 독주나 네 혼이 바라는 것은 무엇이든지 사고 거기서 주 네 하나님 앞에서 네가 먹고 너와 네 집안이 기뻐할지니라.
27 네 성문 안에 있는 레위 사람은 너와 함께 나누는 몫이나 상속 재산이 없으니 너는 그를 저버리지 말지니라(신14:22-27).
이 부분에 설명된 십일조는 누가 먹습니까? 그것을 드린 사람이 먹습니다. 즉 신명기 12장과 14장의 십일조는 백성이 먹는 십일조입니다.
23절에 있는 것처럼 모든 이스라엘 백성은 그 십분의 일을 먹고 즐기면서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서 제가 이 모든 것을 수확했습니다.”라고 고백하며 하나님 두려워하는 것을 배워야 했습니다.
우리는 이런 목적의 십일조도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24절에서 볼 수 있듯이 주님께서 후에 가나안 땅에서 택하실 곳이 어떤 사람이 사는 데서 너무 멀면 그는 이 십일조를 돈으로 바꾸어 가지고 갈 수 있었습니다.
26절에 보면 그는 돈을 가지고 가서 자기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 돈으로 사되 심지어 독주도 사서 마실 수 있었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술 마시는 것을 허락하신 것은 이 부분과 또 죽음의 고통을 겪는 사람에 대한 언급을 하는 구절에만 나타나 있습니다(잠31:6).
이때는 독주까지 먹고 뛰놀아도 하나님이 봐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이 일을 통해서 그와 그의 온 가족은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분을 두려워하는 것을 배워야 했습니다.
물론 그들은 여행 경비 등도 이 돈에서 마련하였을 것입니다.
재차 언급하지만 이것은 십일조를 드리는 사람과 그의 가족들이 주님 앞에서 즐겁게 뛰놀며 먹는 십일조입니다.
27절에서 볼 수 있듯이 이때에 그들은 자기들의 성문 안에 거하는 레위 사람들을 초대해서 즐거움에 함께 참여하게 해야 했습니다.
이런 면에서 성경의 하나님은 대단히 멋진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시기 위해 여러 가지를 고안해 내십니다. 예를 들어 남녀가 결혼을 하는 경우 남편은 아내를 기쁘게 해 주기 위해 일 년 동안 아무 일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신24:5).
새집을 짓고 봉헌하지 못한 자, 포도원을 만들고 아직 그것의 열매를 먹지 못한 자, 정혼하고 그 아내를 취하지 못한 자 등은 심지어 전쟁이 일어나도 징집 의무로부터 면제되었습니다(신20:5-7).
물론 이것은 이스라엘이 신정국가이기 때문에 가능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을 배려하시기 위해 이 같은 법규를 강제로 부과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1년 동안 열심히 일해서 그렇게 많이 거두었으면 10%는 따로 떼어서 너와 네 가족이 먹고 마음대로 놀아라. 부족할까 봐 걱정하지 마라. 내가 다 책임질 것이다.”라고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이제 첫째 십일조와 둘째 십일조를 합치면 총 20퍼센트가 됩니다. 물론 대부분의 교회에서는 둘째 용도의 십일조에 대해서는 거의 가르치지 않습니다. 따라서 구약의 율법 시대에 이스라엘 신정국가에 사는 이스라엘 사람은 적어도 자기 소출의 20%를 십일조로 구분해야 했습니다.
3. 셋째 십일조
그런데 위의 두 가지 십일조가 끝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또 다른 십일조가 있었습니다.
너는 삼 년이 끝날 때에 바로 그 해에 거둔 네 소출의 모든 십일조를 가져다가 네 성문 안에 저축하여 (너와 함께 나누는 몫이나 상속 재산이 없는) 레위 사람과 네 성문 안에 거하는 나그네와 아버지 없는 자와 과부가 와서 먹고 배부르게 할지니라.
그리하면 주 네 하나님께서 네가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서 네게 복을 주시리라(신14:28-29).
벧엘에 가서 죄를 짓고 길갈에서 범법을 크게 더하며 아침마다 너희 희생물을, 삼 년 뒤에 너희 십일조를 가져오고(암4:4)18)
** 18) 개역성경은 이 구절을 ‘삼 일마다 너희 십일조를 드리며’로 또 오역하여 수시로 십일조를 바치게 만들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레위 사람들 중에서 아직 곤궁함 속에 있는 사람들, 나그네들, 과부들, 아버지 없는 자들을 위해서 3년에 한 번 또다시 10%를 내야 했습니다.
즉 그들은 이런 목적으로 매해 3.3%를 또 떼어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구약시대 유대인들은 적어도 연 23.33%의 십일조를 바쳐야 했습니다.19)
** 19) 이것은 저자만의 독특한 생각이 아니고 미국의 존 맥아더 목사 역시 <헌금의 원리>라는 책(한때 ‘생명의 말씀사’에서 출간하였으나 지금은 절판됨)에서 같은 것을 말하였다.
▶그렇게 해야 그들은 그 국가의 국민으로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이것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하나님의 일을 위한 십일조 10%(레위 사람들과 제사장들의 생계 및 예배의 필요 만족)
2. 이스라엘의 모든 가족이 먹고 즐기기 위한 십일조 10%
3. 3년에 한 번씩 나그네와 과부와 아버지 없는 자들과 레위 사람들 중에서 아직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바치는 10%(이것은 연 3.3%로 보면 됨)
따라서 구약의 율법 시대에 이스라엘 신정국가 체제에서 이스라엘의 모든 가정은 자기들의 소출에서 매해 평균 23.3 %의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그들이 드리는 최소한의 분량이었습니다. 이것 외에도 그들에게는 하나님께 드릴 별도의 헌물이 있었습니다(레위기 1-7장에 나오는 다양한 헌물들).
그러므로 십일조와 이런 헌물을 다 따지면 각 가정은 적어도 매해 수입의 30%를 하나님께 바쳐야 했습니다. 그렇게 해야 신정국가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이 이러한 분량의 십일조 의무를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는 이스라엘의 시민법(율법)에 따라 출회를 당해 이스라엘 국가 밖으로 떠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이스라엘 안에 살면서 “나는 이스라엘 사람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섬깁니다.”라고 고백하면 하나님께서 그에게 땅을 상속재산으로 분배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레위 지파를 제외한 열한 지파에 속한 모든 사람에게 땅을 공평하게 제비뽑아 분배해 주셨습니다. 가난한 사람의 경우 땅을 남에게 팔 수 있지만 50년이 지나 희년이 되면 그 땅이 다시 그 가난한 사람에게 돌아오도록 해 주셨습니다(레25:8-17).
하나님께서 이렇게 모든 사람에게 재산을 골고루 안배해 주셨으므로 그들은 땅의 소출의 23.3%의 십일조를 드린다 하더라도 특별히 불평할 것이 없었습니다.
바로 이런 특별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모든 가정이 소출의 23.3%를 따로 떼어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는 데 쓰라고 하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