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세상

[책] 레이디 맥도날드, 한은형 지음

colorprom 2022. 4. 2. 16:08

‘허영덩어리’ 노숙자? 존엄을 지켜낸 ‘맥도날드 할머니’

 

입력 2022.04.02 0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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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디 맥도날드

한은형 지음|문학동네|328쪽|1만4500원

 

“그렇게 꼿꼿하게 앉아 죽을 수 있다니. 그건 그야말로 용기 있는 행동이었다.”

 

2017년 2월, 겨울용이라기엔 얇은 트렌치코트를 입은 80대 할머니가 벤치에 앉아 숨진 채 발견된다.

집 대신 서울 정동 맥도날드 패스트푸드점에서 생활한 ‘맥도날드 레이디’, 김윤자였다.

 

문학동네 신인상(2012), 한겨레문학상(2015) 등을 받은 소설가 한은형

2010년 방송에 소개되면서 유명해진 ‘맥도날드 할머니’를 소설 주인공으로 재창조했다.

 

결혼도 안 했고, 집도 없는 떠돌이.

그러면서도 늘 영자 신문을 주워 읽고, 밥 대신 브랜드 커피를 사 마시고,

PD에게는 호텔 밥을 사달라 하는 늙은 여성 노숙자.

 

사람들은 ‘허영덩어리’라며 비웃었다.

 

소설에선 그가 왜 그랬는지를 섬세한 상상을 덧대 팩션(faction)처럼 그렸다.

김윤자는 얼핏 모순적이다.

젊을 때는 남자에게 아양 떠는 여자들을,

지금은 탑골공원 노숙자들이 자신과 다르다며 선을 긋는다.

그러면서도 좋은 남자를 만났으면 삶이 달라졌을까, 지독한 외로움을 느낀다.

 

그러나 그 모순의 속내엔 ‘자신을 자신답게 지키는 방식’이 있다.

어려운 형편에도 ‘공주’ 대접을 받고 자란 그는

“나처럼 희망을 가질 수 있던 인간이 더 비참해진다”고 말한다.

 

몸이 고생하는 것보다 그림자만도 못한 취급을 받는 것이 더 힘들다.

그래서 길거리에 눕는 대신 맥도날드에서 쪽잠을 자면서도 늘 허리를 꼿꼿이 세운다.

산책과 독서, 햇볕이라는 세 가지 습관도 항상 지킨다.

버지니아 울프가 정신건강을 지키려 엄수했던 루틴과도 동일하다.

 

작가는 ‘다음 소설을 낼 수 있을까’ 불안이 닥칠 때마다

‘맥도날드 할머니’가 자신의 미래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따지고 보면 평범하게 살고 싶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김윤자의 말은

자력으로 집 한 채 사기 어려워진 현실 속에서 우리 모두의 마음을 흔드는 메시지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