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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딸 이민아 목사의 ‘땅끝의 아이들'과 아버지 이어령의 유고시집

colorprom 2022. 3. 19. 15:41

“애정표현 서툰 아버지, 내겐 상처” 이어령 딸 이민아 목사 책 보니…

 

마약·술에 빠진 청소년 구제 간증집
지난 10일이민아 목사 10주기 맞아 재출간
”애정표현 서툰 아버지가 평생 내겐 상처”
딸에 대한 미안함 담은 이어령 유고시집도 나와

 

입력 2022.03.19 13:00
 
 
이어령 전 장관의 딸 고 이민아 목사의 저서 '땅끝의 아이들' 개정판 /열림원

 

지난달 타계한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의 딸 이민아(1959~2012) 목사의 저서

‘땅끝의 아이들’(열림원) 개정판이 이 목사 10주기(3월 15일)를 기념해 출간됐다.

 

‘땅끝의 아이들’은 이혼과 암 투병, 둘째 아이의 자폐와 실명 위기,

그리고 큰아이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감당하기 힘든 숱한 시련을 겪으면서도

신(神)이 준 소명을 위해 믿음으로 이겨낸 이야기를 담은 일종의 간증집이다.

 

이 목사는 이어령과 강인숙 건국대 명예교수의 맏딸로 태어나

이화여대 영어영문학과를 조기 졸업하고 결혼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이후 헤이스팅스 로스쿨에서 학위 및 변호사 자격을 취득하고

캘리포니아주 검사로 임용돼 1989년부터 2002년까지 일했다.

2009년 목사 안수를 받고 미국, 아프리카, 남미, 중국 등지를 돌며

마약과 술에 빠진 청소년 구제활동에 전념했다.

 

1981년 이화여대 졸업식장에서 이민아가 아버지 이어령 교수와 함께 찍은 사진.

책에서 그는 털어놓았다.

 

“아버지가 굉장히 저를 사랑하셨지만

스킨십이나 안아주거나 하는 것이 전혀 없는 유교 가정에서 자란 분이시고

점잖은 분이시니까 사랑 표현을 잘 하지 못하셨어요.

아버지가 큰 팔로 저를 꼭 안아주시면

그 따뜻한 품 안에 안기고 싶은 욕구가 제 안에 항상 있었던 것 같은데

그 욕구가 채워지지 않아 어렸을 때 제가 시도를 몇 번 했던 것 같아요.

안아달라고 아버지한테 몇 번 엉겼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아버지는 그것이 익숙하지 않은 데다가 글을 써야 하는데 아이가 귀찮게 하니까

자기도 모르게 몇 번 밀어내셨던 것 같아요.

저에게는 그것이 평생 동안 저를 공격하는 상처가 되었다는 것을 나중에 깨달았어요.”

 

그는 또 말한다.

 

“이 아이들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긴 아이들이거든요.

그러니까 우리들이, 부모님들이 먼저 하나님 앞에 깨어지면서 성령받아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하나님의 사랑을 아이들에게 전해줘야 되는

첫번째 의무가 부모들에게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그렇게 하지 못했기 때문에 아이들이 너무나 많이 망가지고 깨지고,

그래서 아주 산산조각이 난 아이들을 많이 만났어요.

좋은 아버지 밑에서 자랐는데, 사랑하는 아버지 밑에서 자랐는데,

제가 그 중의 하나였듯이.”

 
이어령 유고시집 '헌팅턴 비치에 가면 네가 있을까'/열림원

 

딸의 이 고백이 아버지 이어령의 마음에 평생 상처로 남았다.

최근 출간된 이어령 유고시집 ‘헌팅턴 비치에 가면 네가 있을까’에는

암으로 먼저 간 딸을 그리는 아버지의 심정이 절절하게 담겼다.

헌팅턴 비치는 이민아 목사가 살던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지명이다.

 

이어령은 이 시집에 실린 ‘살아있는 게 정말 미안하다’에서 이렇게 읊었다. ·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

네가 혼자 긴 겨울밤을 그리도 아파하는데

나는 코를 골며 잤나보다

 

내 살 내 뼈를 나눠준 몸이라 하지만

어떻게 하나 허파에 물이 차 답답하다는데

한 호흡의 입김도 널 위해 나눠줄 수 없으니

 

네가 울 떄 나는 웃고 있었나보다

아니지 널 위해 함께 눈물 흘려도

저 유리창에 흐르는 빗방울과 무엇이 다르랴

네가 금 간 천장을 보고 있을 때

나는 바깥세상 그 많은 색깔들을 보고 있구나

 

금을 긋듯이 야위어가는 너의 얼굴

내려가는 체중계의 바늘을 보며

널 위해 한 봉지 약만도 못한 글을 쓴다

 

힘줄이 없는 시

정맥만 보이는 시를

오늘도 쓴다

차라리 언어가 너의 고통을 멈추는

수면제였으면 좋겠다

 

민아야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내가 살아서 혼자 밥을 먹고 있는 것이

미안하다 민아야

너무 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