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2030] 시어머니 가게에서 생긴 일
“온누리 되능교?”
“안 됩니다.”
손님과의 대화가 이 정도에서 끝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와(왜) 안 되능교?” “저희는 가맹점이 아니라서요.”
“돈을 안 가(안 가져) 왔는데, 좀 받아 주소!”
손주들 먹인다고 양손에 주렁주렁 비닐봉지를 든 할머니와 몇 마디 주고받자니
깍쟁이 같은 서울 며느리 마음이 약해진다.
“네, 그럼 그냥 주세요….”
그게 실수였다.
다음 손님이 들어와 말한다. “여(여기) 온누리 되지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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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을 앞두고 시어머니 가게 매대에 섰다.
시어머니는 영남의 어느 시(市)에서 떡집을 한다.
명절엔 더 바빠져 설·추석 때마다 찾아뵙고 일을 도와드리고 있다.
그런데 올 설엔 아침부터 밤까지 ‘온누리와의 전쟁’에 시달릴 줄 미처 몰랐다.
문제의 ‘온누리’는 정부가 전통시장을 살린다는 명목으로
2009년부터 발행해온 온누리 상품권을 말한다.
시중은행을 통해 5~10% 할인된 가격에 상품권을 판다.
소비자는 할인가에 물건을 사는 셈이고, 전통시장 방문자도 늘어날 테니
모두 ‘윈윈’ 아니냐는 취지였을 것이다.
”근데 이게 왜 우리한테 이렇게 많이 들어와요? 우리는 가맹점도 아니잖아요?”
며느리의 궁금증에 일을 돕던 시외삼촌이 잠시 손을 멈췄다.
“이번에 좀 마이(많이) 풀렸다.”
시장님께서 작년 말에 큰 결단을 내려 시 예산으로 모든 시민에게 1인당 10만원씩 줬는데
그중 2만원이 온누리였다. 액수로는 220억원어치다.
그러고 보니 여당 소속 자치단체장들이 정부 차원의 ‘일상 회복 지원금’과 무관하게
별도의 지원금을 풀겠다고 했다는 기사를 본 것 같았다.
올해 굵직한 선거들을 앞두고 선심성 현금 뿌리기에 나선 것일 터다.
온누리를 푼 사람들은 “우리 시장을 살리자”며 상품권 사용을 독려하지만,
실제 사용하는 사람들은 시장이 아니라 동네 가게를 찾는다.
동네 가게도 소상공인이니 당연히 온누리를 받을 것이라 생각한다.
“안 받는다”고 하면 대부분의 손님이 “왜 안 받느냐”고 항의한다.
가게에선 어쩔까 고민하다가 하는 수 없이 “이번에만 받을게요” 한다.
하지만 비(非)가맹점이라 곧바로 이를 현금화할 수는 없다.
세금 낼 돈 벌기도 힘든데 ‘가짜 돈’만 차곡차곡 쌓이는 셈이다.
“그럼 우리도 그냥 가맹 신청하면 안 돼요?”
속 편한 며느리 질문에 이번엔 시어머니가 직접 말씀했다.
“전통시장 아니라 안 된다 하대.”
전통시장은 아니지만 그만큼 어려운 이 동네 가게 사장님 대부분이
‘처치 곤란’ 온누리를 그저 모아두고만 있다고 한다.
그럼 전통시장이라도 계획대로 부활했을까.
‘재래시장 심폐 소생’이라는 사명을 갖고 태어난 온누리가
우리 시어머니 서랍에서 고이 잠자고 있으니, 그럴 것 같지도 않다.
현실을 모르는 탁상머리 포퓰리즘에 자영업자만 희생양이 된 것 아닌가.
전통시장이 살아난 것도 아니고, 소상공인인 우리 시어머니가 행복해진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웃는 자는 누구인가. 통 큰 시장님이신가?
고민하고 있는데 또 한 뭉텅이 온누리가 들어왔다.
자영업자에 빙의한 며느리는 결국 냅다 앞치마를 집어던졌다.
“에이, 이름은 온누리인데 온누리에 쓰이는 게 아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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