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공부

[김광일]신년 만가

colorprom 2022. 2. 4. 14:19

[태평로] 신년 만가

 

입력 2022.02.04 03:00
 
 

우리는 희한한 풍경 속에 빠져 있다.

선거 때면 대추나무 연 걸리듯 의혹이 주렁주렁하지만 ‘뒤끝’은 없다.

참 좋다(?).

후보 사퇴든, 무고죄 처벌이든 양단간에 판가름이 날 줄 알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지난 선거 때도 옆 나라에 사둔 집을 팔겠다며 계약서까지 흔들었는데

선거 끝난 뒤엔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다.

 

각 당 대통령 후보들이 3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KBS공개홀에서 열린
방송 3사 합동 초청 TV 토론회 시작에 앞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후보들은 좌우의 다른 후보와 손을 잡는 대신 서로 주먹을 맞대는‘주먹 악수’를 했다.
왼쪽부터 심상정 정의당,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윤석열 국민의힘,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이덕훈 기자
 

불신투성이인데 선택은 해야 한다.

혹시나 했다가 역시나 하기를 벌써 몇 번짼가.

이번에 또 속을 것만 같다.

때론 ‘비호감이냐, 호감이냐’, 이렇게 이분법적인 인간 판단을 내려달라며

여론조사 전화가 걸려온다.

인간이 얼마나 복잡한 인격체인데.

 

대통령이 국민을 걱정하는 게 아니라 국민이 대통령을 걱정한다.

핵탄두에 턱밑이 찔릴 지경인데 대통령은 외려 북쪽에 사귀자고 매달린다.

다들 이상하게 바라본다.

‘이웃’보다 등 돌리는 나라가 불어난다.

쫄지 않으니 핵 위협도 소용 없는 것 아니냐는 그로테스크한 농담을 씨부린다.

대화로 해결하겠다며 국민 홀려 놓고 전제 조건은 전혀 안 갖췄다.

가령 비대칭 핵전력의 해소 같은.

 

미래를 저당 잡히고도 나 몰라라다.

‘황금 알 낳는 거위’를 길러 놓은 사람 따로, 배를 갈라서 먹어치우는 사람 따로다.

고관대작들끼리 누이 좋고 매부 좋고 꿩 먹고 알 먹고, 그래도 무사하다.

 

남에겐 집 사지 말라면서 자신은 악착같이 쥐고 있는 사람들이

부동산 정책을 좌지우지한다.

사실은 그 사람들이 미쳐 날뛴 것인데 집값한테 미쳤다고 한다.

집이 무슨 죄람.

 

세금을 이중 삼중 갈퀴로 긁어가도 광장은 조용하다.

저들은 입으론 원자력 에너지와 화석 연료 시대를 마감하겠다며 호들갑을 떨었지만

손엔 전기료 폭탄을 들고 있다.

 

바이러스한테 맥을 못 추면서도 국가가 역병을 책임지겠다고 후보가 큰소리친다.

 

어떤 과거를 지녔든 유력 후보가 될 수 있는, 참으로 기똥찬 나라다.

정신없이 다이내믹한 나라인지 조용한 아침의 나라인지 정체성조차 모호하다.

 

바닥에 넙죽 엎드려 큰절도 잘하고 오열하듯 눈물도 흘리지만

저 짓도 3월 8일까지란 생각에 입안이 쓰다.

공자는 군주에게 능력보다 도덕성을 우선으로 쳤다는데

인성이 평균의 절반도 안 돼 보이는 사람들이 선두를 다툰다.

내 조국, 내 산하가 또 한 번 갈림길인데 안개는 자욱하고 애만 끌탕이다.

 

곳간 거덜 낼 후보가 당선되면 차라리 이민을 가겠다고 벼르지만

막상 발길은 떨어지지 않는다.

타국에서 ‘애국가’나 ‘아리랑’ ‘고향의 봄’ 말고도

이미자·배호 노래만 들어도 눈가가 뜨듯해진다.

구부정한 소나무 등걸이 정겹다.

 

성묘할 때 아버지 키가 제일 작고, 소풍 갈 때 보면 선생님 키가 제일 작다.

그만큼, 자식 세대를 위해 희생한 분들인데 선거 판에선 뒷전 신세다.

후보 배우자가 법인과 개인의 ‘카드 바꿔치기’로 소고기를 사먹었다는 뉴스에

모방 범죄가 판칠까 걱정이다.

 

“상대 후보가 당선되면 직권남용으로 기소될 게 뻔한” 사람들의 단말마가 들리는 듯하다.

다만 판세를 뒤엎진 못할 것이다.

 

‘사냥개 검사들’한테 승진 임명장을 주면서

“정권만 바라보는 해바라기가 되지 말라” 했다는 장관은

극도로 전도된 가치관의 혼란을 노정한다.

 

누아르 코미디를 보는 것 같다고 꼬집는 것도 하루 이틀이다.

 

화식집에서도 밥 먹기 전에 팁부터 주는 나라다. 선거판 공약 같다.

혹자는 벌써 부정 투표 걱정이 앞선다.

대통령·국회의원·판검사 모두 쉬게 하고 인공지능에게 맡겨버리면 어떨까.

‘포인트 적립’과 ‘2+1′이 우리네 장보기의 표준이 돼버렸다면,

이참에 대통령 후보도 총리·감사원장·검찰총장을 한데 묶어 ‘1+3′으로 고르면 좋겠다.

 

공약 안 지킨 대통령은 국가가 보전해준 선거 비용 500억원을 물어내도록

법으로 못 박아 놓고 싶다.

그래도 수십 조짜리 공약을 막 던지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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