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공부

[책] ‘신조사 세계문학전집 첫째권 ‘神曲', 죽자사자 달라붙어 읽었다’

colorprom 2022. 2. 5. 13:37

 

[모던 경성] ‘신조사 세계문학전집 첫째권 ‘神曲', 죽자사자 달라붙어 읽었다’

 

[뉴스 라이브러리 속 모던 경성]

1927년 대대적 신문 광고로 日 58만명 예약…조선 지식 청년들의 교양서

 

입력 2022.02.05 06:00
 
 
휘문고보 동기인 안회남과 김유정은 학창시절 수업을 빼먹고 남산에 올라
신조사판 세계문학전집을 읽곤 했다.
1927년 출간되기 시작한 신조사 세계문학전집은
일본은 물론 조선의 지식청년들의 교양을 길러준 필독서였다.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 이연주

 

소설가 겸 평론가 안회남(1909~?)은 소설 ‘봄, 봄’을 쓴 김유정(1908~1937)과 단짝이었다.

1923년 휘문고보에 입학, 같은 반이었던 둘은

걸핏하면 학교 수업 빼먹고 놀러 다닌 ‘문제아’였다.

 

유정과 사귀기는 중학시대였는데

그때 우리 크라쓰에서 결석·지각·조퇴를 제일 잘하는 사람이 둘이 있었다.

그것이 유정과 나였다.

우리는 그때 일주 평균 삼사일은 으레히 학교를 빼먹었는데

유정과 나와는 이것으로 서로 알게도 되었고 나중에 친하게도 되었던 것이다.’

(懷友隨筆 2, 惡童 上, 조선일보 1938년 6월8일)

 

둘은 취운산, 남산으로 돌아다녔다. 무작정 놀기만 한 건 아니었다.

‘그때 신조사 출판 ‘세계문학전집’이 출간되기 비롯한 때였는데,

그러면 우리는 취운산이나 남산으로 올라가서 독서도 하고 운동도 하고

또 뚜하고 점심시간을 알려주면 벤또도 먹었다.’

 

◇작가 지망생의 ‘문학 교재’

 

안회남이 얘기한 신조사(新潮社) 전집

1927년 일본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세계문학전집’이다.

작가 이호철의 문단 회고에도 이 책이 등장한다.

해방직후 소설가 지망생이던 손소희와 만난 김동리

소설공부를 시키기 위해 추천한 책이 바로 신조사 세계문학전집이었다.

 

‘뒤에 동리에게서 내가 직접 들은 얘기이지만

그 때 손소희는 소설을 쓴다고는 했지만 도무지 읽어낸 것부터 너무너무 박약하더란다.

그리하여 자신이 다방 안에서 마주 앉아 문학 공부를 처음부터 다시 시켰노라는 것이다...

세계적인 고전들을 섭렵하도록 이끌었는며 일본 신조사에서 간행되던

37권짜리 세계문학전집부터 우선 사그리 읽도록 했다는 것이다.’

(이호철, ‘우리네문단골 이야기’ 1 102쪽,자유문고, 2018)

 

1927년생 기업인 김정문

‘나는 일제강점기에 태어났기에

일본 신조사 간행 37권짜리 ‘세계문학전집일본 춘추사의 ‘세계대사상전집’도 탐독했다.

이 전집에는 인류문명사 이후 철학 예술 외에 모든 학문 분야의 고전들, 신고전들이

실려 있다’고 회고했다.

 

우리말로 된 변변한 세계문학전집이 없던 시절, 신조사 전집

학생이라면 읽어둬야할 교양 목록이자

상급학교에 진학하려면 독파해야 할 필독서이기도 했다.

 

경성에서 발행된 일본어신문 '경성일보' 1927년 3월1일자에 실린 신조사 세계문학전집 광고.
권당 1엔짜리 엔본전집으로 불린 이 총서는 대량 생산, 대량 선전, 대량 판매로 대성공을 거뒀다.
 

◇권당 1엔, 500쪽 고급 양장본

 

함동주 이화여대 교수에 따르면, 신조사 세계문학전집은 일본에서 서양 문학의 대중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함동주, ‘신조사판 엔본 ‘세계문학전집’의 출판과 서양문학의 대중화’, 일본학보 제104집, 2015.8)

1927년 1월30일 도쿄 아사히 신문에 2 페이지 짜리 광고가 나갔다. 신조사의 세계문학전집 예약 출판 광고였다. 1차분 38권, 500쪽 고급 양장본을 1엔 균일가로 예약 판매한다는 내용이었다. 경성에서 발행된 일본어 신문 ‘경성일보’와 ‘조선신문’에도 비슷한 광고가 실렸다.

그해 3월1일 마감한 예약 건수만 58만부. 그리고 바로 ‘레미제라블’ 1권이 첫 번째로 출간됐다. 출판사가 이전에 펴낸 ‘세계문예전집’에 ‘레미제라블’이 포함됐기 때문에 빨리 나올 수 있었다. 번역자는 둘 다 도요시마 요시오(豊島與志雄)였다.

당시 일본에서 단행본 출판은 보통 1000부 단위였다. 4000~5000부가 팔리면 성공이었다. 전집도 1만명 정도 독자를 확보하면 베스트셀러에 들 정도였다. 그런데 신조사 세계문학전집은 단번에 60만 가까운 독자를 예약으로 확보했다. 독자층이 획기적으로 확대된 것이다. 메이지시대인 1896년 설립된 신조사는 잡지와 단행본 출간을 바탕으로 현재까지 성업중인 일본의 주요 출판사다. 특히 1956년 창간한 ‘週刊新潮’는 문예춘추사에서 내는 ‘週刊文春’과 함께 일본을 대표하는 시사주간지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소설가 최일남은 '‘신곡'이 이 (신조사 세계문학)전집의 첫째권이라는 이유만으로
죽자사자 달라붙은 기억이 새롭다.
맛대가리 없는 내용을 모르면 나머지 서양문학의 이해는 가망없다는 각오로 덤빈 것이
차라리 지겹다'고 썼다.
 

◇엔본 시장 선구자, 개조사 ‘현대일본문학전집’

 

신조사의 세계문학전집 출간 직전엔 개조사의 ‘현대일본문학전집’이 있었다. 국판 500~600쪽, 63권으로 일본 주요 문학작품을 망라했다. 1926년 11월27일부터 신문에 예약 모집 광고를 시작해 다음달 첫 번째 배본으로 ‘오자키고요집’(尾崎紅葉集)이 나왔다. 40만 넘는 예약자가 몰렸다. ‘엔본’ 시장을 연 선구자였다.

개조사와 신조사에 이어 다른 출판사들도 엔본 전집 시장에 뛰어들었다. 1930년대 초까지 예약 전집 300여 종이 쏟아졌고, 수천만 권의 책이 출간됐다. 대량생산·대량선전·대량판매로 ‘출판대국’ 일본을 낳은 엔본 전성시대였다.

박완서는 해방 직후인 고교시절 신조사 세계문학전집을 탐독했다.
문학에 대한 갈증때문에 '재미없는 것 몇권빼고 후딱 다 읽어치웠는데도
책에 걸신들린 것 같은 허기증은 나아지지 않았다’고 했다. /주완중기자
 

◇첫권은 ‘神曲', ‘부활’ 등 러시아 소설도 4권

 

신조사 세계문학전집은 1차분 38권(1927년~1930년), 2차분 19권(1930년~1932년), 합계 57권이었다. 1차분에는 단테의 ‘신곡’, 보카치오의 ‘데카메론’, ‘셰익스피어 걸작집’,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밀턴의 ‘실락원’이 1권~5권을 차지했다. 이어 ‘파우스트’ ‘몬테크리스토 백작’ ‘두 도시 이야기’ ‘모파상’과 투르게네프의 ‘아버지와 아들’, 도스토옙스키 ‘죄와 벌’, 톨스토이 ‘부활’, ‘체홉/고르키/고골, 러시아 3인집’ 등 러시아 문학도 4권이나 들어갔다. 60명 넘는 근대 서양문학사의 대표적 작가들을 망라했다.

2차분은 1차에 비해 상대적으로 인기가 떨어졌다. ‘적과 흑’(스탕달) ‘제인 에어’(샬롯 브론테) ‘로드 짐’(조셉 콘래드)같은 낯익은 작품도 있지만, 상대적으로 덜 유명한 작품들이 많이 포함됐기 때문이다. 신조사 세계문학전집하면, 1차분 38권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았다.

 

◇영국 ‘에브리맨 총서’가 모델

 

신조사 문학전집은 당시 영국에서 출간된 에브리맨 총서’(Everyman’s Library)가 모델이었다. 출판업자 조셉 덴트(Joseph Dent)가 1906년부터 출간한 에브리맨 총서는 권당 1실링, 100권 5파운드에 모든 계층이 세계 명작을 소장할 수 있게 한다는 취지로 간행됐다. 1000권을 목표로 한 이 총서는 5년 만인 1910년 505권을 돌파했다. 그리고 1956년 마침내 1000권째로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이 나왔다.

 

◇'서양 문학작품은 교양인의 필수품’선전

 

신조사는 서양의 대표적 문학작품을 읽는 것이 교양인의 필수조건이라고 내세웠다. ‘세계문학에 친숙해지는 것은 아침에 기차, 전차를 이용하고, 저녁에 활동 라디오를 즐기는 자의 의무다. 옥상에 안테나를 설치하고 서재에 본 전집을 갖추지 않은 것은 치욕이다’(도쿄아사히신문 1927년2월15일자, 함동주 위 논문 재인용)라고까지 선전했다. 이런 선전이 먹혔을까. 중산층 가정에서 엔본 전집 장서를 갖추는 게 일반화됐다.

‘외국 문학은 신조사에서 최초의 세계문학전집이 나왔을 때 익숙해졌다. 도스토옙스키도 그 인연으로 읽게 되었는데, 그중에 끌렸던 것은 포(에드가 엘런 포)였다.’ 훗날 추리 작가로 활동한 1909년 생 마쓰모토 세이초(松本淸張)처럼, 신조사 세계문학전집은 20세기 전반 일본인의 독서 체험에서 빠뜨릴 수 없는 공통 요소가 됐다.

이하윤은 신조사 세계문학전집을 통해
위고의 ‘레미제라블’ 로맹 롤랑의 ‘장 크리스토프’를 읽었다고 썼다.
'아! 내 과연 이들의 장편을 얼마나 감격으로써 탐독하였었는고.
이시대야말로 나의 심금의 현은 쉴새없이 울기를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내 심금의 현을 울리인 작품7. 투르게네프 作 그 전날밤 기타’, 조선일보 1933년 1월25일)
 

◇'시를 쓰려면…신조사 세계문학전집을 보라’

 

1930년대 조선의 문화·예술계 인사가 신문에 쓴 애독서를 보면, 신조사 세계문학전집이 종종 등장한다. 시인 겸 영문학자 이하윤은 투르게네프의 ‘전날 밤’ 등 러시아 문학을 꼽은 뒤 이렇게 썼다. ‘이윽도 내 취미는(물론 당시에 세계문학전집과 그밖에 많은 외국작품의 번역을 간행하던 신조사의 덕(德)이겠지만) 곧 위고의 ‘레미제라블’ 로맹 롤랑 ‘장 크리스토프’로 옮아갔던 것입니다. 아! 내 과연 이들의 장편을 얼마나 감격으로써 탐독하였었는고. 이시대야말로 나의 심금의 현은 쉴새없이 울기를 계속하고 있었습니다.’(‘내 심금의 현을 울리인 작품7. 투르게네프 作 그 전날밤 기타’,조선일보 1933년 1월25일)

1930년대 신문엔 독자 문의에 편집국 기자들이 대답하는 코너가 있었다. 한 시인 지망생이 ‘시를 쓰려면 무슨 책을 읽어야할까’ 물었다. 시를 많이 읽고 깊이 감상하라는 얘기와 함께 이런 답변을 실었다. ‘시집으로서는 세계의 시인들을 다 각각 단행본으로 보기는 어려우니 신조사출판인 ‘세계문학전집’가운데 ‘근대시인집’(반가1원)이란 것이 있는데 이 책에는 세계 각국의 시인들의 시를 몇편씩 발췌해 모아놓은 것이니 이 책을 읽는 동안에 자기의 개성이나 취호에 맞는 시인이 있거든 다시 그 시인의 전작품을 통독하고서 사숙하는 것이 좋겠습니다.’(‘시를 쓰려면’, 조선일보 1935년 4월25일)

 

◇'한 질만 있으면 원이 없을 줄 알았는데...’

 

신조사 세계문학전집의 영향력이 얼마나 컸던지 ‘신곡’은 전집 1권에 수록됐다는 이유로 더 주목을 받았다. 1932년생 소설가 최일남은 유소년 시절 신조사 세계문학전집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그 다음에 읽은 것이 일본 신조사판 세계문학전집이었는데, 단테의 ‘신곡이 이 전집의 첫째권이라는 이유만으로 죽자사자 달라붙은 기억이 새롭다. 맛대가리 없는 내용을 모르면 나머지 서양문학의 이해는 가망없다는 각오로 덤빈 것이 차라리 지겹다.’(‘책 어떻게 읽을 것인가’, 137쪽, 민음사, 1994)

1931년 생 소설가 박완서도 이 세계문학전집 마니아였다. ‘고등학교 졸업반 무렵이었다. 문학에 대한 채워지지 않는 갈증에 시달릴 때였다. 그때는 나도 일본 신조사에서 나온 38권짜리 세계문학전집을 가지고 있을 때였다. 그것 한 질만 있으면 원이 없을 줄 알았는데, 재미없는 것 몇권빼고 후딱 다 읽어치웠는데도 책에 걸신들린 것 같은 허기증은 나아지지 않았다.’(‘노란집’ 86쪽, 열림원, 2013)

박완서는 해방 이후 고교를 다녔다. 그때도 일역(日譯) 세계문학전집의 힘은 여전했다. 학생이 있고, 형편이 좀 살 만하면 집집마다 이 전집 한 세트 정도는 갖췄던 모양이다.

신조사 세계문학전집은 해방 후 출간된 우리 세계문학전집에도 뚜렷한 흔적을 남겼다. 100년전 신조사 리스트가 요즘 출간되는 세계문학전집에도 ‘정전’(正典)의 굳건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얼마 전까지도 서양 문학작품 번역서 상당수가 일역본을 베꼈다는 조사 결과가 잊을만하면 나왔다. 일제 잔재 청산만 외칠 게 아니라 우리 지성사의 뿌리가 어디서 유래하는지부터 제대로 살펴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조선 뉴스라이브러리 100 바로가기

※'옛 기사보기’와 ‘뉴스 라이브러리 바로가기’ 클릭은 조선닷컴에서 가능합니다.

 

◇참고자료

함동주, 신조사판 엔본 ‘세계문학전집’의 출판과 서양문학의 대중화, 일본학보 제104집, 2015.8

박숙자, 속물교양의 탄생-명작이라는 식민의 유령, 푸른역사, 2012

천정환, 근대의 책읽기, 푸른역사, 2003

박완서, 노란집, 열림원, 2013

이호철, ‘우리네 문단골 이야기’1, 자유문고, 2018

 

#김기철의 모던경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