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포커스] 은행 노조의 ‘기상천외 계산법’
정부가 세금 지원해주면 된다
일 안하는 법만 궁리하다보면 ‘눈물의 비디오’ 또 찍게 된다
평균 연봉 1억원인 은행원들이 일주일에 나흘만 일하겠다고 한다.
그래도 월급은 한 푼도 깎지 않을 수 있는 ‘기적의 계산법’도 만들어 냈다.
정부에서 은행이 낼 세금 좀 깎아주면 된다고 한다.
농담처럼 들리지만, 은행 노조들은 정색을 하고 토론회까지 열었다.
친분이 있는 한 은행 지점장은 “솔직히 이게 말인지, 방귀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한노총 산하 금융노조와 민노총 산하 사무금융노조는 지난달 중순
‘주 4일 노동과 금융 노동자의 미래’라는 토론회를 합동으로 개최했다.
‘월화수목-일일일’은 기본이고,
월~금 중에 각자 나흘씩 골라 일하자는 말도 나왔다고 한다.
‘월화-일-목금-일일’도 가능하다는 뜻이다.
이틀 근무하고 하루 쉬고, 이틀 근무하고 이틀 쉬겠다는 얘기다.
주 4일 근무제 도입 명분은 “은행 일자리를 늘릴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은행은 5일 영업하는데 은행원은 4일만 일하게 되면 채용을 늘릴 수밖에 없다.
맞는 말인진 몰라도 국책은행 포함 국내 17개 은행에서
현 인원의 20%인 2만3088명을 신규 채용할 수 있다고 숫자까지 내민다.
일자리 늘리는 좋은 일이니 정부가 지원을 하는 게 당연하다고 한다.
한 은행 노조위원장은
“정부가 10% 이상 일자리를 창출한 기업에 8%의 면세 혜택을 줘야 한다”고 했다.
이러면 월급 깎지 않아도 주 4일제가 가능하다고 한다.
“우리가 앞장서겠다”고 한다.
앞장은 어렵고 힘든 일을 할 때 쓰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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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노조는 열심히 일한 은행원에게 성과급으로 월급 더 주면 은행이 망한다는
‘기적의 논리’를 내놓은 적이 있다.
7년 전 박근혜 정부 시절 금융연구원에서
‘은행의 바람직한 성과주의 확산 방안’을 주제로 세미나를 열었다.
금융 당국은 은행원 임금에서 성과급의 비중을 높이려고 했다.
그 자리에서 금융노조의 한 간부는
“성과급 확산은 단기 성과에 대한 과당 경쟁을 유발한다.
대출 심사를 보수적으로 하지 않고, 공격적으로 한다고 생각해보라”면서
“은행 망하는 건 순식간”이라고 했다.
은행 망하는 걸 지켜볼 수 없어 반대한다고 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은행원들은
금융권에서도 거의 유일한 연공서열식 호봉제를 철밥통으로 끌어안고 산다.
거기다 이젠 주 4일 근무가 하고 싶다고 한다.
열심히 일해도, 시간만 보내도 다 같은 월급 받고 열심히 일하면
“당신, 회사 망하게 하려고 하는 거냐”라는 손가락질을 받는 직업,
주 4일제로 근무 시간 줄어도 연봉은 한 푼도 깎이지 않겠다고 하는 직업이
또 있을 것 같진 않다.
주택담보대출 이자 수입이 급증해 실적 잔치가 벌어졌지만,
은행들은 최근 4개월간 5044명의 은행원을 희망퇴직시켰다.
온라인뱅킹 등으로 예전처럼 은행원이 많이 필요하지 않다.
최고 7억원 얹어주더라도, 40대 초반까지도 등 떠밀어 내보내고 있다.
이런데도 주 4일 근무할 테니 정부에서 세금 지원 받아 정규직을 2만명 넘게 채용하자고
주장한다.
외환 위기 때인 1998년 당시 제일은행 홍보부에서 25분짜리 비디오를 만들었다.
지점 48개를 한꺼번에 폐쇄한 날, 명예퇴직을 앞둔 한 여직원이
‘남아 있는 사람들이 잘해서 예전의 제일은행으로 살려내주길 바란다’면서 목 놓아 울었다.
‘내일을 준비하며’라는 제목보다 ‘눈물의 비디오’로 불렸다.
다시는 찍을 일이 없다고 장담할 사람이 없다.
은행 얘기를 했지만, 은행만 그럴 리 없다.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뛰었다”고 했던 지난 시절과는 달라졌다지만,
일하는 법보다 일 안 하는 법을 궁리하다 보면 닥칠 일은 한 가지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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