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4장 17절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영의 사람, 로버트 하디』라는 책을 이덕주 감리교신학대학 교수가 편찬했다.
한국교회의 부흥에서 하디 선교사의 역할은 결정적이었다.
하디는 캐나다 출신 감리교 의사 선교사(1865~1949)로 1890년 조선에 왔다.
그는 선교사, 신학 교육자, 신학 교재 60여권을 쓴 저술가로
평생 한국 복음화에 헌신했다.
그는 특히 1903년 ‘원산 부흥 운동’을 이끈 주인공으로 알려져 있다.
하디는 한국 개신교인들에게 ‘참다운 회개’가 무엇인지를 가르쳐 준 사람이었다.
하디는 1902년 무렵 깊은 좌절감에 빠져 있었다.
한국 선교 13년째까지 성과가 없었기 때문이다.
교인집을 불시에 방문해 보니 술상을 놓고 교인모임을 하고 있었고,
횡령, 사기 사건도 빈발했다.
하디는 이러한 자들을 ‘세레교인’에서 ‘학습교인’으로 강등시키고,
‘제명’ ‘무기한 출석금지’조치도 내렸다.
선교보고서에 ‘원산 교인들의 영적 상태는 대단히 실망스럽다’고 적을 정도였다.
극적 반전이 일어난 것은 이듬해인 1903년 여름,
외국인 선교사들이 원산에 모여 기도회와 성경 공부 모임을 열었다.
최고참 선교사 하디가 설교를 맡게 되었다.
그는 문득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자신이 죄인’이라고 고백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조선교인 탓’을 하던 하디가 ‘내 탓’이라고 고백하자
다른 외국인 선교사에 이어 조선 교인들도 회개의 불길이 번졌다.
모두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나겠다고 다짐했다.
갚지 않은 돈을 갚는 운동이 벌어졌고,
20년 전 본의 아니게 더 받은 봉급을 반환하겠다는 사람도 나왔다.
부흥의 불길은 원산에서 서울, 개성, 평양으로 확산되었다.
그 결과 불과 10여년 후인 1919년 3.1운동 때는
민족 대표 33인의 절반 이상이 개신교인일 정도로
개신교는 이 땅에 거룩한 영향력을 끼쳤다.
코로나19로 어려운 시대를 견디고 있는 한국교회와 교인들은 먼저,
우리의 삶을 돌아보고
하디와 같이 내가 먼저 회개하는 모습이 있을 때 한국의 기독교가 새롭게 될 것이다.
'+ 방선배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잔의 마지막 '5달러의 헌금' (0) | 2021.09.15 |
---|---|
"무엇이든지 구하라?!" (0) | 2021.09.11 |
겸손히 순종하는 것이 지혜다 (0) | 2021.09.10 |
마더 테레사 수녀의 '응답을 미리 말하는 영성' (0) | 2021.09.10 |
칭찬과 격려 (0) | 2021.09.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