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동건목사님

하나님은 세 분이신가요, 한 분이신가요?

colorprom 2020. 9. 4. 12:00

주제: 하나님은 세 분이신가요, 한 분이신가요?

 

<고린도후서 13:1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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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봅.시.다>

 

하나님의 개념에 대해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 모두로부터 자주 질문을 받습니다.

기독교는 다른 종교와는 다르게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신관(神觀)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삼위일체 신앙은 교회에 처음 나온 사람에게는 아주 생소한 것이고

오래 신앙생활을 해온 사람에게도 상당히 어려운 주제입니다.

왜나하면 하나님에 대해서

구약에는 야훼, 엘로힘, 신약에는 예수, 성령 등 다양한 호칭으로 부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세 분의 하나님을 믿는 것인가?”하는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나 세 분의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 다신교가 됩니다.

그렇다면 구약의 하나님만 신이고 예수님과 성령님은 신이 아닌가?”라고 다시 질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구약의 하나님만 신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신약은 분명 예수님을 하나님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모든 종교는 나름으로 신에 대한 인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독교는 기독교의 신관으로 삼위일체 하나님을 고백합니다.

문자적으로 말하자면 세 분이 한 분이라는 말입니다.

논리적으로는 금방 납득이 되지 않는 표현입니다.

모순적으로 보이는 개념이라 타종교에서 교리적으로 문제를 삼거나 비판을 하기도 합니다.

왜 기독교는 이처럼 이해하기 힘든 교리를 가지고 있을까요?

 

삼위일체는 전문적인 신학 개념이기 때문에 설명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여기서는 교리적인 논의보다는

삼위일체가 나오게 된 배경을 중심으로 그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기독교가 왜 삼위일체 신앙을 가지게 되었는지 알아야 합니다.

 

삼위일체는 단순한 이론이나 교리가 아닙니다.

구약 시대의 열조들은 오랫동안 역사 속에서 하나님을 체험했습니다.

그들은 살아있는 한 분 하나님을 역사 속에서 만났습니다.

이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고, 이삭의 하나님이며, 엘리야의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들은 이 분만이 살아 있는 하나님이라는 확고한 체험을 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기독교는 확실히 체험의 종교입니다.

 

엘리야는 홀로 바알과 아세라 신을 섬기는 850명의 거짓 예언자들과

진정한 신이 누구인지 대결을 펼쳤습니다.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왕상18:21)

 

기독교의 하나님은 열조들이 삶과 죽음을 넘나들며 역사 속에서 체험한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런데 신약의 시대를 거치면서 예수님을 통해서도 똑같은 하나님을 체험하였습니다.

한 청년을 통해 다름 아닌 구약의 그 하나님을 만난 것입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16:16)

이것은 참으로 놀라운 사실이었고 놀라운 경험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를 태동시킨 기독교의 토대이고 힘입니다.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을 만난 그들은 그 순간 알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메시아를 기다릴 필요가 없고,

이 예수님이 열조들이 체험한 바로 그 하나님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십자가의 수난을 당하였고, 그 후 부활하시고 승천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무리는 다시금 역사 속에서 홀로 남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자신들의 삶 속에서 그리스도가 그들과 함께한다

또 하나의 놀라운 경험을 했습니다.

 

그분은 눈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육신을 가지고 다시 만날 수 있는 그런 분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의 삶과 공동체 속에서, 어려움과 고통속의 형제들 속에서 함께하신다

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그 분을 성령이라 증언했고, 그들은 신앙의 삶 속에서 성령을 체험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8:26)

 

이처럼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고백은 단순한 교리가 아니라 살아있는 것이고,

역사 속에서 체험한 것이며, 살아있는 응답이었습니다.

 

이 신앙고백이 외부에서 보기에는 기묘할지 모르나,

신앙의 눈으로 볼 때는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하심에 대한 살아있는 체험이며 표현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삼위일체 하나님이 어떤 형태로 하나가 되는지 봅시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다.‘(10:30)라고 말씀하셨고,

사랑하는 제자 빌립에게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14:9)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에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이 ’하나이시다‘는 의미는

삼위 하나님의 독특한 존재 방식을 말합니다.

 

구약에서 성부가 역사하셔도

성부는 홀로가 아니라, 아들과 함께 성령을 통해 역사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성부와 함께 성령을 통해 일하셨고,

오늘 성령께서도 아버지로부터 아들과 함께 역사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령을 체험했다면 삼위일체 하나님을 체험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구체적인 신앙으로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은 서로 안에 거하며 활동하시는 하나님의 존재양식을 통해

분열과 갈등 속에 있는 인간 사회와 세계를 화해로 만드는 역사를 이뤄가야 할 책임을 가집니다.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17:21-22)

 

<묵.상.해.봅.시.다>

 

사도신경을 묵상하면서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나의 신앙을 고백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