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20.05.01 03:16
지난 1년 우리가 겪은 공동 경험… 새로운 '현실파 실용 집단' 잉태
좌우 모두에 파고든 포퓰리즘… 국민이 비난받을 이유는 없다
5월이다. 온 산하가 물감처럼 푸르다.
총선이 끝난 지 보름을 넘겼다. 누가 볼세라 숨죽여 축배를 들었을 '당선자 모임'도 잦아들었다.
집권당의 경제 실정에 제동을 걸겠다던 20대 보수 청년도, 자식까지 설득하려 했던 60대 어른도
당신의 잘못은 아니다.
정치인들끼리 헤게모니 구성체 싸움에서 이기고 졌을 뿐이다.
총선의 여야 득표율 '49대41'을 약분하면 대략 '7대6'이다.
당신은 1점 차까지 온 힘을 다했다.
당(黨)이 졌지 당신이 아니다.
응원하느라 목이 쉬었을 뿐 애국적 가치관은 더 빛났다.
지난 1년 '조국 사건' '감찰 무마 사건' '선거 공작 사건' 같은 불의한 것들을 겪어낸 공동 경험은
지난 1년 '조국 사건' '감찰 무마 사건' '선거 공작 사건' 같은 불의한 것들을 겪어낸 공동 경험은
앞 선거 때 보지 못했던 새로운 대중 그룹을 잉태했다.
이들은 '문빠'도 '틀딱'도 '표류하는 부동층'도 아니다.
집권 세력의 이중성을 단죄하는 것과 자신의 이해득실은 무관하다고 보고,
'100만원' 구호금은 챙겨야겠다고 생각하는 현실파 실용 집단일 수 있다.
분노하지 않는다. 대신 "기득권에 맞선다"는 가식적 좌파 포퓰리즘에는 호응한다.
30~50대까지를 한데 엮는 '광폭(廣幅)의 세대 분쟁론'에는 관심 없다. 그건 여론 분석가의 몫일 뿐이다.
30~50대까지를 한데 엮는 '광폭(廣幅)의 세대 분쟁론'에는 관심 없다. 그건 여론 분석가의 몫일 뿐이다.
그들은 포퓰리즘을 경멸적 용어로 보지 않는다.
'현 상태 유지(status quo)'를 타파하는 것이라면 포퓰리즘인들 어떠랴 싶다.
4월 선거에서는 야당을 찍었어도 5월 코로나 구호금은 기꺼이 받을 수 있다.
4월 선거에서는 야당을 찍었어도 5월 코로나 구호금은 기꺼이 받을 수 있다.
'자발적 기부'는 하지 않겠다고 할 것이다. 작위적이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는 단선적으로 포퓰리즘을 비난하는 일이 얼마나 무용(無用)한지 알게 됐다.
급진 민주주의의 이론가인 샹탈 무페조차 책 '좌파 포퓰리즘을 위하여'에서
"앞으로 다가올 몇 년 동안 정치적 갈등의 중심축은
우익 포퓰리즘과 좌익 포퓰리즘 사이에서 생겨날 것이다"라고 했다.
앞 시절의 신자유주의가 지배했던 헤게모니가 불안정해지면 평등과 대중 주권을 내세운 쪽이 득세할 수 있다. 회사가 나를 붙잡으려면 '연봉 인상'과 '승진'을 약속해달라고 주장하는 젊은 층은
앞 시절의 신자유주의가 지배했던 헤게모니가 불안정해지면 평등과 대중 주권을 내세운 쪽이 득세할 수 있다. 회사가 나를 붙잡으려면 '연봉 인상'과 '승진'을 약속해달라고 주장하는 젊은 층은
투표권을 행사할 때도 같은 태도로 정당을 바라볼 것이다.
샹탈 무페는 이렇게 말했다.
샹탈 무페는 이렇게 말했다.
"모든 것은 (…) 포퓰리즘의 유형들을 어떤 정치 세력이 성공적으로 헤게모니화하는가에 달려 있다."
우리가 낸 세금을 선출직 고위 공무원에게 맡길 수밖에 없는 현 체제에서
'선거 포퓰리즘'은 정녕 불가피한 것인지도 모른다.
중앙 집중 권력의 주변에는 언제나 불의한 사건들이 출현할 것이다.
2년 뒤 나의 선택권을
불의한 것을 응징하는 데 쓸 것인가, 아니면 세련된 포퓰리즘에 기꺼이 포획될 것인가,
이 문제일 뿐이다.
코로나 위기로 촉발된 '국기(國旗) 결집 효과'가 친정부 진영을 뭉치게 했다는 분석은
코로나 위기로 촉발된 '국기(國旗) 결집 효과'가 친정부 진영을 뭉치게 했다는 분석은
당신을 불편하게 할 것이다.
당신은 누구보다 나라를 걱정하며 국기를 손에 들었던 친구 얼굴이 떠오를 것이다.
'보수는 공감 능력이 형편없다'는 말도 동의할 수 없다.
안보와 경제와 코로나 사태의 최전선 일꾼에게 적극 공감한 사람은 항상 당신이었다.
이제 '중도파는 중간에 있지 않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이제 '중도파는 중간에 있지 않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중도'를 위한 나라는 없다.
정치는 선택이다.
한때 어떤 정치인이 내걸었던 '안보는 우파, 경제는 좌파'라는 슬로건이 매력적으로 보이든 아니든
유권자
선택은 늘 양쪽 당파성으로 결판났다.
여기에 좌우 포퓰리즘이 정치적 담론 전략으로 파고든다.
'남유럽'이나 '중남미'로 가는 길목에서 그들을 만류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루비콘강을 건넜다.
관료들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구호금을 배분할 것인가로 잠시 소란스러울 수는 있다.
그러나 시골에 계신 당신은 상대 당을 찍은 자식을 위해 오늘도 묘목을 심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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