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본질은 현실 속에서 구체적 성과를 내는 데 있어
문 정부 약점은 대북 정책처럼 통치자 주관적 소망을 엄혹한 현실에 앞세우는 것
한국 보수의 침몰도 변한 현실을 외면했기 때문
핵을 가진 북한 유일체제와 국제정치의 장벽을 한국 대통령의 주관적 의지로 넘어서는 데는
이솝 우화의 '허풍쟁이 여행자'가 정곡을 찌른다.
정치의 핵심인 현실은 항상 복합적이고 입체적이다.
한국 보수의 침몰도 현실을 외면한 데서 왔다.
세상은 변했는데 냉전반공주의와 천민자본주의 패러다임에 집착했다.
정의와 공정, 연대와 공존의 21세기 시대정신을 거스른 채 산업화 시대의 박정희 신화에 매몰되었다.
옛것은 사라졌는데 새 가치엔 무관심했다.
보수 일각의 총선 개표 부정(不正) 의혹 제기는 보수의 자폐적 극단화를 가리키는 징후다.
이들은 개표 조작이 불가능하다는 통계 전문가들의 합리적 반론에 대해서조차 격노한다.
환골탈태해야 생존이 가능하다는 자성(自省)의 목소리를 배신자로 매도한다.
보수가 현실감을 잃었다는 명백한 증거다.
현실을 부정(否定)하는 분노만으론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
그러나 보수 정치의 앞날에도 실마리는 있다.
승자 독식 소선거구제에 따른 2배 가까운 의석수 차이와는 달리
전국 253개 지역구 정당 득표율은 민주당 49.9%, 통합당 41.5%로 8.4%포인트 격차다.
득표 수는 243만표 차이다.
비례대표 득표율은 오히려 앞섰다.
보수가 정의와 공정의 시대정신을 담아내고 공감과 연대의 시민적 덕목을 육화해 헤쳐 모이면
차기 대선에서 건곤일척의 승부가 가능하다는 물증이다.
지금 통합당 상태로는 불가능해 보이지만
'살고자 하면 반드시 죽고, 죽고자 하면 반드시 살게 된다'는 것도 한국 정치의 교훈이다.
일본 자민당처럼 정치 지형 변화가 민주당 우위의 1.5당 체제를 공고하게 한다는 가설도
시류에 편승한 담론이다.
노무현 정권이 폐족(廢族)을 자인하고 보수 장기 집권론이 대세였던 게 불과 10년 전 일이다.
1당 장기 집권론은 역동적 한국 민주주의와 정면에서 충돌한다.
현대 정치사가 웅변한다.
앞으로 2년간 한국을 강타할 총체적 경제 위기는 우리 사회 특유의 정치적 가변성을 극대화한다.
차기 대선은 공정과 정의에 굶주린 민심이 호랑이처럼 포효하는 역사의 시간이 될 것이다.
바로 여기가 로도스다.
한국 정치의 기호지세(騎虎之勢)는 긴박한 시대정신에 담대히 뛰어오르는 자의 몫이다.